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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인들(15) 동기춘 시인- 조국이 무엇이기에 청춘을 바쳤더냐!

by 김형효 2009. 6. 14.

- 이민족과 우리 민족의 이익 동시 실현불가!

 

아까운 청춘 시절 넘기고

 

나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철없던 시절이었다. 16세의 나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상이란 것이 도대체 내게 무슨 의미인지, 그저 사람이 태어나서 죽고 살고 가족과 혈연관계조차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에 깊이 슬퍼한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사색의 이유가 되었다.

 

어린 시절은 갔는가? 세상 사람들이 다 배워야 산다는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자신이 희망하는 삶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간단명료하고 바른 도덕적 규범을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던 중 나는 조국과 민족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여지도 없이 병역의 의무에만 집착하여 지원 입대를 하였고 30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였다.

 

그렇게 나의 20대의 아까운 청춘 시절은 중반을 넘겨 버렸다. 훗날에 뒤돌아 볼 세월이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자괴는, 그로부터 한참 후인 30대에 들어서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지금 현실에서 내가 살아갈 미래를 개혁하며 살던지 아니면 그대로 인정하면서 숙명론자처럼 살아야 한다.

 

그랬다. 그것이 내게 부여된 내 삶을 결정 할 수 있는 주요한 방편이었다. 그렇다. 그렇게 무력한 10대 혹은 20대의 삶을 다 보내고 30대에 들어서 내 자신에 대해 뒤늦게 각성한 덜 떨어진 인간. 그러나 이제라도 내 지난날의 후회를 접으려면 그만한 세월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리라. 내가 있고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다는 인식아래 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조국과 민족 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결국 그것이 내 자신의 피를 올바로 돌게 하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르렀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연변조선족 시인협회 기관지 발간식에 갔다가 길림에 북녘 동포 식당" 용악산"에서 <반갑습니다>를 합창~!'

 

나는 오늘 북녘 동포 시인 동기춘의 시 <인생과 조국>을 대하면서 다시 한 번 삶의 의미를 새김질한다. 그럼 시(詩)를 감상해 보자. 분단된 조국 산하에 나의 의식의 분단과 단절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자.

 

인생과 조국

 

동기춘

 

제 명을 다 살고 간

그런 사람이 렬사릉에 있던가

병으로 생을 맺음한

그런 사람도 여기엔 그리 있던가

 

10대에 20대에

피줄조차 못남기고--

그래도

아끼던 생을 아끼지 않았던...

 

조국은 무엇이여서

이런 청춘들을 바쳤더냐

조국이란 무엇이기에

이런 희생을 치뤄야 했더냐

 

조국은 물건이 아니건만

역신들은 뒷거래로 너를 팔았다

한세상 살다 그도 죽고 말

개 같은 명줄의 향락을 위해

팔던 땐

몇 놈이 부귀영달과 바꿨건만

찾을 땐, 오! 찾을 땐

민족이 피를 바친 조국

 

조국이여, 너는 무엇이기에

이같이 모질었더냐

그처럼 모질지 않으면

안되더란 말인가

 

예나 제나

사람은 살고

꽃도 피고

냇물도 흐르건만

 

자유가 없인

차라리 죽음이 나았으니

조국은 다만 땅이 아니라

그 자유 했어도 주작봉마루에 서니

찾은 값이 너무 비쌌구나

이 아까운 사람들과 바꾼 땅을 딛고

분함에 억한 가슴을 두드리는 마음아

 

혁명렬사릉 여기선

누구든

인생과 조국

이 엄숙한 물음 앞에 서지 않는가

 

릉을 찾은 사람들이여

렬사들이 지켜보는 눈앞에

조국을 책임진 맹세로

목숨같은 꽃묶음 놓으시라

 

-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 이 시는 1986년에 쓰여진 북녘 땅의 한 시인이 쓴 시이다.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조국을 이야기하다

 

인생과 조국을 이야기하는 북녘의 동기춘 시인은 단순하게 인생을 조국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민족이란 이름 앞에 숨져간 젊은 넋들에 혼령을 바친다. 자신의 인생을 비추어 보고 조국의 의미 너머에 있는 살과 피가 섞인 땅을 읽어낸다. 우리들의 땅이란 단순히 갈라진 조국(남과 북)으로 일컬어지지 않는다.

 

동기춘 시인에게서 <땅은 민족, 민족은 땅>으로 명명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성체 같은 존재는 사적인 인생과 조국을 뛰어 넘어 민족의 대오인 땅을 통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데로 그 의미가 확대된다. 그러니 한민족에게서 사적 인생과 조국과 민족은 하나의 성체다. 개별적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숙명적 존재들로 묶여지는 것이다.

 

순교적 운명에 대한 탄식

 

동기춘 시인은 그 젊은 혼령들의 피를 바친 순교적 운명에 대해 탄식하며 안타까워한다. <이 아까운 사람들과 바꾼 땅을 딛고/분함에 억한 가슴을 두드리는 마음아> 이제 우리가 분함에서 억한 가슴을 두드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민족이란 틀 안에서 대동단결하여 조국과 민족의 의미가 이분법적으로 분화되어 해석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조국이 남과 북으로 독립적이어서는 안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대립적으로 해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이익과 이민족(특히 미국과 일본)의 이익을 동시에 실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미래는 퇴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백두의 품은 민족의 이름으로 땅이면서 그 땅은 또 민족이다.

 

아래의 시 [백두산 위에 눈보라 칠 때]의 한 구절 <오, 그 순간에 심장을 치는 생각/이렇듯 백두의 품이/그 언제나/우리 운명을 안고 오지 않았던가>처럼 우리네 성산인 백두가 그저 자연적인 힘으로 우리를 지탱해주는 그 힘만으로 생존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자족의 틀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에게 통일과 민족자존의 틀이 온전하게 닦여진 그날, 우리는 이 시를 다시 회고해도 되리라.

 

백두산 위에 눈보라 칠 때

 

눈보라...

해는 저만치 하얗다

해는 저만치 뿌연 동그라미

금시 머리 위엔 시꺼먼 우주뿐

사방 얼음 조각들의 아우성소리

귀뿌리를 스치며 흩날리는 조약돌

 

광막한 공간에

한 몸 모래알처럼 뿌려질 듯---

쓰러지는 순간에 바위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든든해졌다 몸도 마음도

사라지리라 지독한 광란이여

너는 하루살이 떼 구름 같은 것

 

눈보라...

해는 저만치 뿌연 동그라미

해는 저만치 하얗다

꿈결인양 씻은 듯 파란 하늘

견뎠구나 기쁨에 넘쳐 돌아보니

백두산이 나를 안고 있었더라

 

오, 그 순간에 심장을 치는 생각

이렇듯 백두의 품이

그 언제나

우리 운명을 안고 오지 않았던가

 

*필자는 지난 2001년 5월 25일 - 북한의 서정시인(1) 김상오 시인 편을 시작으로 2001년 8월 23일 북한의 시인들(14) 한원희 시인까지 14차례에 걸쳐 북한 동포 시인의 시 해설을 본지(오마이 뉴스)에 연재해왔다. 당시는 6.15선언이 있고 난 후라서 외적 환경이 좋은 탓(?)이었다. 필자는 일본 동포 시인들과 연변 동포 민족 시인들의 시를 아울러 가면서 해설을 써오다 중단했다.

 

다시 민족의 앞날이 백척간두로 치닫는 이 안타까운 시절에 우리 민족 시인들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란 마음으로 또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연재하고자 한다. 단 한 걸음도 우리 민족끼리의 단일 대오가 형성되지 않고 가는 걸음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이제 21세기에는 결단코 우리 민족의 걸음으로 미래를 향해 걸어가야 하리라. 마음 깉은 곳에서 부터 가슴 저미는 눈물이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역류하듯 솟구치는 안타까움으로 쓴다.

 

 '용정에 민족의 숨결이 흐른다. 윤동주 시인 생가 마당에 흑판에 낙서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