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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45)

by 김형효 2012. 12. 29.

잃어버린 고향을 걷듯 네팔 시골길을 걸었다

 

비케이 집, 그리고 비케이가 태어난 마을에는 한국 사람으로는 기자가 처음 찾았다고 한다. 나는 지난 2006년 비케이 집을 찾은 후 네 번째 방문이다. 처음으로 대절한 택시가 비케이가 태어난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많은 동네 사람들이 경이로운 눈빛을 보였다. 깊은 눈은 더욱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시골 마을 사람들이 도회지 사람보다도 더 정적이란 사실은 어느 나라에서나 하는 이야기다.

처음 동행이 되어 비케이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고학생이었다. 간판공장에서 일하던 그가 외국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소식을 안고 부모님을 찾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당연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설레었을 것이다. 그의 표정에서도 나타났다. 오늘은 마을에 접어들어 길가에 노점에서 바나나를 샀다.

과일을 골라보자는 마음으로 마을 입구에 자전거 바퀴를 잇대어 만든 과일 가게를 찾았다. 사과를 좀 샀다. 그리고 망고 바나나라고 하는 보통의 바나나에 두 세배 크기의 바나나를 샀다. 여행 중 간식거리를 충분히 준비한 셈이다. 낯선 여행길 히말라야 등성을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듯 달리는 차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지치고 허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때 맞춤한 간식거리는 여행의 맛을 더한다. 그것도 현지의 입에 맞는 간식거리는 두 말할 나위없다.

마야데비 생가터에서 만난 깊은 눈을 가진 네팔 아이들, 오래전 마야데비가 저런 눈빛을 가졌을까?


 

우산을 양산처럼 쓰고 논에 김을 매는 농부들



달리는 차안에서 지나는 풍경을 놓치기 쉽다. 초행인 두 여행자는 그 모습을 놓치기 아까워 안타까워 했다.
당연히 예정된 시간을 넘겨 비케이 집에 도착했고 비케이는 몇 차례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점심을 준비해놓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아들의 손님, 그것도 다른 나라의 시인과 그들의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잔칫집 분위기다. 만나지도 않았지만 비케이와 부모님의 전화통화를 듣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늦은 걸음이지만 비케이 집 앞에 차를 대자 그의 부모님과 동생들이 마당 앞에서 반긴다. 반가움을 표현하는 데 서툰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이미 화가 비케이와 몇 차례에 걸쳐 통화하며 일행이 언제 도착하는지를 물었던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두 여동생은 기자를 보자 오빠라고 하며 나마스떼!라 인사를 했고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내게 오빠라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나이차가 있다. 그들의 아버지와 내가 동갑내기다. 그러니 그들은 딸이나 다름없다.

네팔에서는 누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지 누구의 친구인지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 그의 오빠를 통해 알게 된 기자는 그녀들에 오빠 친구일 뿐인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다 알고 있던 일이다.
평소 기자는 비케이에게 항상 나는 너의 친구다. 때로 선생이고 아버지다. 웃으며 말하고 그를 격려해왔다.

네팔인들의 주식인 달밧이다. 달은 녹두죽 같은 음식이고 밧은 밥을 말한다. 곁들여진 특식도 있다.


 

오래된 고향길을 걷는 듯하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김판용 시인이다.



낯선 나라의 멀고 먼 시골 마을에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농촌 풍경이 아늑하게 펼쳐지는 그곳은 오래전 잊었던 고향, 잃어버린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마음 안의 박물관과도 같다.

집안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행을 안내한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네팔 남부 시골마을이다. 한창 벼농사가 한창이다. 주방에 병환을 앓고 있는 비케이의 할아버지가 누워있다. 그 곁을 무문토기가 지키고 있다. 곡식을 보관한다고 했다.
이미 여러 차례 보아온 풍경인데 일행이 놀라워한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가 구석기 시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정도로 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마존 밀림속의 부족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럴 일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발전만을 바라볼 일이 아니다.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을 함께 비교하고 또 삶의 질과 환경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궁핍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빼면 그 무엇도 아쉬울 일이 없고 인간으로서 그들이 주고받는 풍성한 본성의 미학이 우리를 깨우치기도 한다. 강한 채찍처럼 와 닿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람, 가족, 자연,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그리움들이 인간을 살리는 길이란 사실을 보게 하는 것이다.

비케이의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함께 준비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강한 햇빛과 무더운 바람에 견디기 힘든 일행은 길을 재촉한다. 곧 비케이 가족을 위한 기념촬영을 하고 이웃에 사는 비케이의 큰어머니 가족도 불러서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 속의 주인공 한 사람이 기자가 이글을 쓸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몇 차례 온 가족을 불러 얼굴을 보고 이승과의 작별의식을 잘 마쳤다는 일은 고마운 일이다. 아픔에 겨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잃고 차분하게 떠나간 그의 영혼을 향해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