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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네팔 문화예술인들과 떠난 2박3일의 비라트나가르 여행

by 김형효 2012. 12. 29.

네팔 시인 음악가와 함께 한 여행

 


지난 20일 기자는 네팔문화예술협회 초청으로 네팔의 시인과 음악가를 동반한 여행을 떠났다.
당초 예정은 3박4일이었다. 그들과 동행이면서도 도착지에 대한 정보와 이번 행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떠났다. 단지 시인과 문화예술인들의 만남을 가진다해서 네팔어로 번역된 기자의 시를 준비했을 뿐이다.

20일 이른 아침인 다섯 시 잠에서 깨어 바삐 준비를 하고 일행을 만나기로 한 카트만두 아트카운실을 찾았을 때는 6시 5분이었다.
한 사람의 여성이 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안면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여행을 떠나려는 채비를 하고 나온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시인이었다. 잠시 후 또 한 사람의 남성이 역시 가방을 들고 여성시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기자도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일행을 기다렸다.

20분이 지나도 기다리는 다른 일행들이 오질 않아서 조금은 불안해졌다.
네팔사람들의 시간이란 말이 있다. 흔히 네팔리타임이라고 부른다. 그걸 감안하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행사를 시작하거나 약속을 하고도 잘 지키지 않는 시간개념 때문에 생긴 말이니 그만큼 늦다는 소리다.
그래도 아침 6시 약속하고 20분 동안 세 사람뿐이니 좀 이상하다. 그래서 다른 일행에게 전화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곧 전화를 했는데 장소가 좀 다른 곳이란다.

처음으로 네팔 국가가 불려지는 행사에 함께했다. 네팔국가인 우리들의 꽃무리(sayo thunga phool)를 부르는 행사 참가자들, 어느 자리나 국가가연주되거나 노래불려지는 자리는 엄숙한 것 같다.


곧 옮겨간 장소는 먼저 만난 곳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미 7~8명이 둘러앉아 찌아(네팔 전통차)를 마시고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다른 일행들이 속속 모였다. 곧 행사를 총괄하는 모밀라(Momila)라는 네팔 여성시인이 왔다.
그리고 모두에게 아침 간식거리인 쩌나(콩과의 작물로 콩과 맛이 비슷함)와 언다(계란), 비스켓 두 세 개를 찌아와 곁들여 상이 차려졌다. 아침 이른 시간의 식사로는 훌륭하다는 느낌이다.

네팔에서 이른 아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간식을 먹는 것은 처음이고 그들이 시인과 음악가들이다. 새로운 설레임도 있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을 다수 함께 만나는 긴장감이 더해진 것이다.
아침 7시 20분 네팔예술협회와 행사 장소가 쓰여진 펼침막을 대절한 버스 앞에 부착하고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며 자리를 잡은 20여명의 일행들과는 이미 인사가 끝나고 이동 중에 무슨 프로그램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3~4시간을 달려도 아무런 일이 없다. 그저 1리터 물을 한 병 손에 쥐어주었을 뿐이다.

기자는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는 시인이자 교수인 꾸마르 고이랄라(Kumar koirala, 55세)와 함께 앉았다. 여행 중 그를 통해 네팔 제2의 도시인 비라트나가르(Biratnagar)라는 곳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카트만두 시외곽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쳐 잠이 들거나 물결처럼 오르내리는 네팔의 산하를 바라보곤 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기자나 그들이나 매한가지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 홀로 흥미롭다. 꾸마르 고이랄라 선생은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나치는 도시 혹은 민가가 모인 곳들에 대해 설명하고 버스 기사에게 길을 안내하고는 했다.

데우라 깃이라는 형식의 노래를 부르는 디헨드라~! 그는 행사가 끝난 날 밤에 문화부차관과 함께한 자리에서 네팔의 지도자는 made in india라는 데우라깃을 불렀다. 문화부차관도 웃으며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유가 이런건가? 사색하며.....,

네팔말을 하게 되고 처음으로 직접 쓴 네팔어로 쓴 시를 낭송하고 있다. 왼쪽 끝에서 두번째가 현 문화부 차관이다.


다섯 시간을 내달린 버스는 네팔 남부의 주요관광지 중 하나인 치트완에 도착해서 멈춰 섰다.
그곳에서 달밧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찰나같은 휴식을 취했다. 1시 30분에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곧 이어지는 네팔 남부의 색다른 풍경들은 지친 버스 여행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살다온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을 연상할 만큼 드넓은 평야, 가끔씩 스쳐가는 밀림, 끝없이 이어지는 강, 벼농사가 한창인 들판이 펼쳐졌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네팔의 또 다른 풍경이다.

한참을 달리고 달리던 버스는 어둠을 달렸다. 그렇게 달려온 버스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 9시 20분 카트만두에서부터 정확히 14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카트만두의 겨울초입의 날씨가 무색한 이곳의 날씨는 열대의 무더위다.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짐을 풀고 급하게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다. 지친 한 여름날의 하오를 보낸 것처럼 개운한 아침이다. 그런데도 무덥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침 식사를 하고 곧 일행이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무모한 유혹이 있었다. 기자가 네팔 말을 잘하니 인도국경을 함께 넘자는 제의를 한다. “당신은 쉐르파와 인상도 닮았으니 함께 가자!” 누가 보증할 것인가? 난 그냥 국경 근처에서 머물기로 하고 함께 동행했다.

구미 당기는 유혹이었지만, 무엇 때문에 불편을 겪을 일을 감행한다 말인가? 홀로 읆조리며 국경을 살펴보고 있었다.
네팔 국경수비대원이 기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난 그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불과 이틀 전 혼인신고를 마친 나의 동반자와 같은 고향 출신의 라이였다.
그는 다른 대원과 바나나를 먹다가 내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바나나를 함께 먹었다.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수월한가? 그저 대화할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선의를 간직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인도로 간 시인들 그리고 기자는 네팔과 인도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고 또 보았다.

문화부 차관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상하고 있는 기자, 그는 표창을 하며 앞으로 다섯 편의 시를 꼭 써야한다며 밝게 웃었다.


난 사람이 갈라놓은 국경을 넘을 때 땅만 보고 걷는다면 국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국경 안의 네팔을 살피고 또 살폈다. 내 안의 것과 내 밖의 경계를 살피듯이 그러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카트만두에서 행사 참석를 위해 온 문화부 차관을 만났다. 그는 지난 2007년 만해문학축전에 초대된 적이 있는 디네스 아디까리다. 나는 그와 친분이 있고 조만간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모르던 내게는 뜻밖의 일이고 반가운 일이었다. 오후 12시 30분부터 시작한다던 행사는 13시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5시 30분에야 끝났다.

행사에서 기자는 즉석에서 네팔어로 쓴 두 편의 시를 낭송하고 2008년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를 등반하고 나서 쓴 '사가르마타'라는 시를 읽었다. 네팔어로 낭송한 첫 번째 시가 되었고, 세 편의 시를 읽었다.
행사가 끝나기 전 나는 네팔문화예술협회가 주는 표창장을 현직 문화부차관으로부터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단한 상이 아니라도 한 나라의 문화부 차관으로부터 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영광은 분명하다. 마치 혼인신고의 고생을 보상받고 축하를 이렇게 받는가 싶었다.

행사를 마치고 난 다음날 아침 일행이 찾으려던 더란(Dharan)으로 가는 길이 사고로 운행중단 상태란 뉴스를 듣고 곧바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