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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사람보다 바람이 앞서 사람을 반긴다

by 김형효 2012. 12. 29.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48)

 

히말 가까이 다가서면 사람보다 바람이 앞서 사람을 반긴다. 때로는 사납고 때로는 부드럽다. 그렇게 바람이 다가와 말을 건다는 느낌이 들 때면 한 걸음씩 히말의 품안으로 들어설 때다. 사람은 모두 드넓은 평원에 선다. 어쩌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그 순간이 아득한 평원 같은 세상과 만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안녕을 기원하며.

좀솜 공항에 도착하고 하늘에 선 웅장한 히말과 계곡의 깊이를 본 일행은 묵묵히 걸음을 옮겨 딛는다.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어려운 것처럼 걷다가 바람을 비켜 산중에 사람을 만났다. 잠깐의 사색을 즐기고 있을 즈음이다.
네팔 사람들은 우리네 막걸리와 가장 닮은 티벳에서 유래되었다는 '창'이라는 술을 마신다. 특히 산골의 몽골리안들의 전통주로 산속의 대표적인 몽골리안들인 라이족도 타망족도 구릉족도 즐겨 마시는 술이다. 한 여성이 애기를 등에 업고 누룩을 말리고 있다. 닮아 있다는 것은 긴장을 풀어준다.

좀솜 공항에 도착했다. 성백선 형님이 소형비행기를 내려서고 그 뒤를 람타다가 따르고 있다.


 

쉐르파 여성이 새알같은 누룩을 말리고 있다. 아이를 업고 일하는 모습이 우리네 어머니를 닮았다.



닮아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것도 아득한 세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히말라야를 소형비행기로 넘어와서 만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만남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라 한 것이었나? 호기심이 관심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더욱 더 반갑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다.
우리는 이제 사람과 사람 속에서 사람에 질린 사람들처럼 가까이 있는 인연조차 멀게 한다. 내 앞에 사람, 나를 아는 사람, 나를 반기는 사람, 그들과 강한 긴장 속에서 만난다. 그러지 말자 그것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다.

걷고 걸으면 깊어지는 것은 사색이다. 드넓은 평원의 여유로운 걸음도 깊은 계곡과 천길 낭떠러지 험난함도 걸음은 여유를 준다. 사색의 여유는 명상으로 이어진다. 아니 그저 옮겨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사색이 옥죄어 오듯 명상을 강하게 요구한다. 그래서 절로 인생을 관철해 보게 하고 스스로를 관망하게 한다.
그것이 기자가 경험한 수많은 걸음들 속에서 체득한 오묘함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걸음의 길이만큼 사색도 깊어진다고, 그것이 인생을 오래 살아온 수많은 인생 선배들, 어머니, 아버지의 철학적 자산이 된 이유인지도 모른다.

히말라야를 넘어 평온한 길을 걷다보면 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평화를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는 개도 새도 사람도 서로를 우러른다. 살아있는 그 어떤 것도 경배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소통한다. 마주대하고 바라보지 않고서도 그런 오묘함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옷깃을 만지작거린다. 새가 길을 열며 액운을 잠식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하늘을 난다. 산중에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개가 앞서서 길을 인도하기도 하고 멈춰서 사색하기도 한다. 어쩌면 산중에서는 그 무엇도 스스로 주인이 아닌 것은 없다.

한 자매가 자갈을 나르고 골라내는 일을 하다 잠시 쉬고 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린 어머니도 홀로 앉은 이모도 버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수투파, 삶을 넘어선 사람들의 흔적이다. 저 멀리 길 위의 또 다른 주인들이 보인다.



모두가 주인인 길을 걷는다. 사람은 그 얼마나 걷고 걸어야 모두가 주인이라 믿을 수 있을까? 일행의 한 걸음과 나의 한 걸음이 길 앞에서 만나고 다시 길 뒤에서 기억된다. 사진 한 장, 추억의 노래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인생이 험했다 해도 거친 바람이 불어도 그 길을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후세의 사람에게 일러준 낯익은 순리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순리에도 허덕인다. 왜일까? 멈춰서 사색하지 못하고 멈춰서 기다리지 못하고 멈춰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일행은 태어난 곳에서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걷고 있다. 다시 돌아와야 할 길이다. 그런데도 자꾸자꾸 걸음을 옮겨 딛고 있다. 인생은 둥그러진다. 그렇게 멀어지고 멀어지다보면 더 큰 진리에 다가서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바라보게 된다.
더 먼 곳에서 더 절실해지는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한 걸음에 충실하게 멀고 먼 걸음을 옮겨 딛다 지쳐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몇 년 전 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히말 계곡의 집터들만 남았다. 마치 꿈이라도 꾸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