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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전설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길을 걸었다

by 김형효 2012. 12. 29.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0)

 

한 걸음 한 걸음이 경이로운 길이다. 몇 번 쯤 낯선 길에 나를 맡기고 정말로 낯선 곳의 주인이었다. 히말을 걸을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거리와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삶의 인연이었던 수많은 기억의 공간 그리고 거리가 날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금 나는 떠나왔지만, 그 기억은 나를 꼭 붙들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자의가 아닌 나의 기억 안에 그 인연의 거리와 공간들 말이다.

그곳에 날 바라보고 애타고 안타깝던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내가 간절했던 것들, 내가 소중히 하던 것들이 있다. 사람, 물건, 거리와 공간들이다. 그런 일상의 것들이 나를 살렸고 그 중심에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다. 때로는 풍경처럼 사라져 가버린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난 더없이 슬펐고 더없이 애틋해졌다. 그런 것들로 나를 반추하고 일어서고 주저앉기도 했다. 이제 많은 무익한 것들 속에서도 유익을 보기도 하고 또 무익하다고 본 것들이 꼭 무익만도 아니었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애시 당초 유익만 추구해본 적도 없어서 유익과 무익을 잘 구분도 못하는 것 같다. 돌아보니 그런 것 같다.

진한 허브향을 내는 산 위에 핀 꽃이다. 진하게 땅을 끌어안고 풍기는 꽃향이 지친 발걸음에 힘을 돋는다.

거친 강물에 주인이 말을 불러본다. 그러나 거친 강물에 말은 꿈쩍하지 않고 주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가도 길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불혹의 거리와 공간의 사색을 한참 넘어선 나이에도 삶이 너무 아득하기만 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모하고 맹목인지 모를 삶을 체념없이 가야한다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길을 걸으면 절로 길을 보게 된다. 길을 가다 멈춰서 사색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마음 안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의 선지자들은 사색을 언제나 벗처럼 다정하게 품어 안고 살았을 것이다. 진한 사랑처럼 그렇게 사색하며 자신을 끌어안았으리라.

길은 밖을 향하기도 하고 안을 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강짜를 부리며 몸부림하던 수많은 길은 밖으로 향할 때였다. 그때 길은 자신을 해소시켜준다. 고통을 알고 자신의 고통을 볼 때 그 해결책은 대부분이 자신 안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가 너무 버겁고 버겁다. 밖으로 길을 내는 것보다 안으로 길을 내는 것에 대해 어려워했다. 그러나 그것이 참 쉬웠음을 이제 겨우 알듯하다. 그리고 자신 안으로 걸음을 옮겨 딛는 수련을 이제 시작한다.

응고된 기억의 절정 같은 히말라야, 그리고 그 히말을 받쳐주는 계곡, 자연의 이치가 인간에게 와닿는다.
히말과 한 몸인 아니 히말의 사지육신 쯤 될 낮은 등성이들에서 그 결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온몸을 휘감은 퇴적층들이 지구의 역사를 말하는 듯하다. 아주 오래된 시간 히말은 바다였다고 한다. 1억 5천만 년 전이란다. 기자는 2006년 네팔 포카라에 산악박물관을 세세히 살피며 그 역사를 보았다. 자연의 퇴적을 보듯 히말을 걸으며 시작된 사색이 퇴적되어 층을 이루듯 끝없이 이어진다.

산 위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산 아래로 운반하고 있다. 말과 사람이 함께 가지만 말안장에 짐과 사람이 함께다.

산 중에 노점이다. 검은 돌멩이들이 암모나이트 화석이다. 기원은 거리의 상점에도 애틋하다.


몽골리안의 기원이 에베레스트로 알려진 사가르마타(8850미터)에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모든 몽골리안의 조상이라는 대체(Daeche) 신(神)의 발자국이 사가르마타에서 발견되었다는 설과 그 실제 발자국이 보존된 산악박물관은 나를 놀라게 했고 또 그럴 만큼 잘 갖추어진 네팔 역사박물관이었다. 그 사실을 100%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도 내 눈으로 그것을 다 고증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추측조차 할 수 없던 하나의 중요한 소재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수많은 퇴적과 분화의 과정이 연속된 지구의 역사다. 히말 등성이들에서는 그런 것들이 쉽게 눈에 띤다. 눈을 뜬 자리면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것들이 발견된다. 바닷가에 파도소리의 은은함을 더해주는 몽돌들과 수많은 탄화석들이 그렇다. 때로는 히말 자체가 그런 모습을 연출한다.
2000미터가 넘는 사막의 물길을 따라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의 이주경로를 따라 퇴적이 반복된다. 각배니(Gagbeni)의 강줄기를 따라 길을 걷다보면 거리의 장사꾼들이 암모나이트 화석을 팔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 티벳 쪽에서 물길을 열고 이곳으로 흘러온 강줄기인데 각배니 강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것들이다.

각배니는 수많은 까마귀가 일시에 몸을 적셔 검은 강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흐르는 강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두 줄기 강물이 만나는 곳이란 뜻을 지닌다고도 한다. 우리네 양수리(두물머리)와 같은 뜻이란다.
네팔을 여행하며 묻고 듣는 이야기들은 참 많다. 말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서 어떤 이야기가 정설인지 혼돈스럽다.

그러나 현지의 이야기꾼들의 말이니 들은 대로 믿어보기로 한다.
아무튼 네팔에서 까마귀는 길조로 통하고 까마귀가 몸을 적셔서 흐르는 강이라니 그들에게는 길한 징조의 강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흘러온 강으로 그들을 살리는 생명수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저런 머물 것 없는 사색들을 안고 그렇게 길을 걸었다.

머물지 않는 사색 때문에 또 다른 사색이 넘쳐나는 곳이다. 히말을 넘어온 산중에서 첫날밤을 맞는다. 그곳이 각배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