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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神을 만났다

by 김형효 2012. 12. 29.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1)

 

 

흘러간 바람처럼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온 각배니의 명상이 깃든 집들을 본다. 영화 벤허에서나 보는 오래된 성(城)이 있었다.
그야말로 한자어 성(城)의 생김 그대로 흙으로 빚은 성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의 기억을 함께하고 있다. 그때 처음 대한 각배니의 성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성과 성으로 이어진 미로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지나 한 바퀴 돌아서면 제자리다. 그러나 또 어떤 길은 뻥 뚫린 하늘 길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대로 세월을 거슬러 온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 마치 산 사람처럼 살아서 걷고 있는 것 같이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각배니라는 마을은 아직도 고대를 간직한 아름다운 생명처럼 살아있다. 오래된 사원은 그들의 정신적 자산이었다. 그들을 받쳐주는 기둥인 것이다. 지난 2006년 8월에 이곳에서 토종닭을 잡아 게스트하우스 사장과 네팔인화가 한 사람의 한국인 그리고 기자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오래된 성이 오랜 옛날을 기억하는 퇴적층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월의 결이 자연 깊이 스며들어 있다.

산 깊은 사막 안의 강줄기, 오아시스를 이룬 각배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이유다.


자연이 무엇인지, 자연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냥 보면 그대로 알 수 있었다. 설명이 지나쳐 원래의 가치가 희석되는 세상을 살다가 그런 실재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사실 현대인들의 불행 중에는 놀라움을 경험할 일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형용이라는 것도 이미 규정되어 연출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경험을 살려 같은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 부탁해서 토종닭을 수소문했다.
한 사람의 티벳인의 집을 찾았다. 그들의 집에는 인근 사찰의 라마승 셋이 함께 앉아 공을 들이고 있었다. 닭을 사간 후 요르를 맡겼다. 그리고 그 정겨운 분위기에 일행과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묻지 못하다가 나중에 찾았을 때 젊은 아들이 죽어서 복을 빌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 안타까움에 목에 치미는 슬픔을 느낀다.

초면의 사람이 전하는 아픈 사연인데,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우리를 맞으며 찌아를 대접했다. 우리는 그 아픈 사연을 듣고 안절부절 못해했다.
잠시 동안 황망한 마음을 다잡은 후 고인을 향해 향을 올리고 적은 금액이지만 복을 비는 마음을 담아 상(床)에 올렸다.

어린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젊은 부인이 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기나긴 세월을 견뎌온 깊은 주름과 나뭇결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부드럽고 깊고 온화한 내면의 풍요가 있었다. 그 어떤 거친 것에도 노출되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기자의 사색으로 그들은 이미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신이거나 혹은 자연이었다.

세월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만 같은 산 사람의 여유가 느껴지는 걸음걸이 그의 슬리퍼에 문명을 안고 사는 내 발걸음이 부끄러워졌다.

흑백을 기억하고 싶다. 자연을 이루는 조화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고 미안한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만남이 오랜 것은 아니지만 깊은 만남을 가진듯하다. 그리고 오래된 인연을 떠나는 것처럼 시린 마음을 품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인연은 어쩌면 골목길 하나 돌아서는 것처럼 간단하면서도 시린 것이란 생각이다.

난 그곳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축복이다. 사람이라는 증거는 그런 마음으로 확인된다. 그런 마음 때문에 사람에게는 수없이 많은 의미들이 깃들어 온다는 생각이다. 살아있음이 행복해지는 의미도 그중 하나다.

함께 길을 걷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동행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가? 동행, 침묵을 공유하기도 하고 뜻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를 위한 동행이 있다면 나는 타인을 위한 동행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은 의무이기도 하고 자연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하늘아래, 살아있는 땅, 그 길과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가는 길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영글 준비를 하고 그 기대로 설렘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도 꿈도, 나라와 가정과 민족이 가고자하는 길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갑자기 각배니의 서늘하고 찬바람에 백두산 천지가 떠오른다. 밤을 안고 잠이 든다. 내일은 3800미터 인도와 네팔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묵디낫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