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정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네팔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히말라야는 알고 있을까? 수많은 신들의 주거지이거나 수많은 신이기도 한 네팔의 히말라야는 현재의 불안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어쩌면 수많은 자연 현상같이 무심한 변화로만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방인의 안타까운 시선은 허망한 질문을 하게 된다.
2006년 4월 왕국은 몰락했다. 그것은 270여년 이어져온 절대 권력의 몰락을 의미했다. 그때만 해도 현대적인 의미의 권력 분산이나 정치질서의 재편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변모를 네팔인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그런데 마오이스트의 정치 참여 공간 확보를 위한 투쟁은 현실 정치세력과의 수많은 불협화음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이상과 현실간의 격차로 인식되고 있다. 한때 마오이스트는 현실 정치 공간에 7개 연립정당이 권력을 장악한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제8의 정당의 역할을 갖고 참여했다. 상당한 진통을 겪으며 현실 공간에 진입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한 동거는 기존 정치인들의 안일한 현실인식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더구나 마오이스트의 도덕적 결함은 네팔인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으로 분란의 소지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현실의 이 복잡함을 마오이스트들은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자신들의 성공이 왕국 몰락을 촉진시킨 힘의 원심력으로 작용했음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런 내재된 결함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2007년 3월 19일 네팔의 한 호텔 사장 하리 쉬레스타(Hari Shrestha)에게 거금의 투쟁자금 혹은 정치자금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마오이스트의 한 지도자인 산토시 라이(Santoshi Rai)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이마와 눈두덩에 큰 상처를 내는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네팔의 경제인들의 분노를 샀다. 네팔의 경제인들은 대기업가와 중․소 상공인은 물론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들까지 분노하게 했다. 바로 세금을 내는 모든 사람들의 분노로 이어져 그들이 상점의 문을 닫고 대규모 시위행렬에 참여하게 했다.
3월 20일 네팔의 뉴로드 근처인 바산트푸르(Basantur) 광장에서는 작은 구멍가게 사장부터 주요 상공인과 무역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파업과 함께 상점이 문을 닫고 집결하여 가두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날 시위는 네팔의 주요 언론사들은 일제히 긴급뉴스로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요 텔레비전 방송사 네팔 텔레비전과 이메지, 칸티푸르 방송국 등에서 생방송으로 그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는 환율변동의 격랑으로 이어졌고 현재의 정국은 그 갈피를 찾지 못하는 양상이다.
네팔의 경제인들은 이런 형태로 마오이스트들의 횡포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모든 정치세력에 정치자금을 동결하겠다며 자신들이 지불한 그 수많은 돈들이 어디에 쓰였는가? 공개질의를 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기부한 정치자금과 세금이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네팔인들이 불편을 겪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단전과 단수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어 생활의 불편을 겪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들은 이어 주요 도심으로 행진을 하였다. 이때 어쩌다 문을 연 상점이 있으면 시위대들이 몰려들어 상점 문을 닫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네팔 정치인들은 어떤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확실한 정치세력을 갖지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마오이스트와 경제인 모두가 현재의 네팔 상황에서 주요한 역할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중재하거나 통솔할만한 리더쉽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없고 모두가 불신의 대상인 것이 큰 문제이다. 이어지는 정치인들에 대한 압박과 마오이스트들에 대한 압박은 별 효과가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다음날 네팔 주요관광지인 타멜에서는 마오이스트들이 경제인들의 상점철시에 대항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시각 네팔의 졍제인들과 상점주들은 여전히 전날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런 불안 속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항공편을 알아보느라 인터넷을 하기 위해 PC방으로 몰려들었고, 카트만두 외곽의 관광에 경계령이 내려진 거나 다름없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의 지인들은 랑탕 히말을 트레킹하려는 나에게 몸조심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바로 일년전의 이런 정황들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 네팔 정국이다. 불과 3개월 전쯤 마오이스트들은 현실권력의 분출구인 제8의 정당의 위치에서 스스로 벗어나 다시 게릴라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실권을 지고 있는 구왕정세력인 기리자 프러사드 코이랄라(Girija Prasad Koirala)의 과거 세력 옹호정책과 보수적 정치성향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전히 그는 왕정시대의 인물이고 최근에는 자신의 딸을 장관에 임명하는 등 친정체제 구축에만 신경을 쏟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마오이스트들은 반인권적인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네팔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생필품의 조달마저 어렵게 하는 등 불안이 가중되어 가고 있다. 여전히 불안한 네팔의 미래는 과거 왕정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개혁없이 그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형국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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