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
새벽녘, 날이 밝아오자 난 달리고 있죠.
태양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아래에서
태양이여,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민국에 드러나지 않도록
내 마음에 느끼는 이 고통은
사랑으로 상처 받은 거예요.
난 당신과 당신의 품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의 입맞춤과 애정을 기다리면서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건가요?
희망을 찾는 것이 내 바램이에요.
난 혼자가 되어버린 거죠. 혼자가 되었어요.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요.
곧 당신은 돈을 받을 거예요.
당신을 내 곁에 가까이 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일 때문에 시간이 버겁지만
난 당신의 웃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당신 사랑 없이 사는 건 의미없는 삶이에요.
도망자처럼 사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건가요.
희망을 찾는 것이 내 바램이요.
난 혼자가 되어버린 거죠. 혼자가 되었어요.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건가요.
희망을 찾는 것이 내 바램이에요.
난 혼자가 되어버린 거죠. 혼자가 되었어요.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나는 탐입니다. I AM TOM.
나는 김형효 입니다가 아닌 나는 탐입니다라고
난생처음 영어라는 것을 낯설게 접할 때,
바로 그때 이후 나나무스 쿠리의 돈데보이를 뜻 모르고 따라 불렀었다.
곡조가 내게 딱 맞아 떨어진 구슬픔이었기에 그렇게 와 닿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돈데보에 돈데보이라고 불러대던
그 노랫말을 의미를 불혹의 나이가 되어 알게 된다.
그래 내게 저 구슬픔이 잠재해 있었기에
낯선 도시의 생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도 사막에서 쫓겨다니는 노동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유전자가 반응한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새삼스러운 반응이다.
오늘 나나무스쿠리의 그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돈데보이 돈데보이(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우리 모두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