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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사람들

1998년 겨울 화가 두시영 선생님과의 만남~!

by 김형효 2009. 11. 4.

나는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을 본 후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아마도 일주일 내로 있었던 일일 것이다.

정확하게 날짜를 정리해놓지 않았고

그럴 경황도 없이 쓸쓸하고 을씨년스런 초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하루 3시간 정도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이 전부였다.

정말 문학에 투신하고 투신한 삶이었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전에는 당시 후배가 영업소장으로 있던

교보생명의 영업 사원으로 일을 시작해서 근 1년여

초임자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좋은 실적을 쌓아나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보험대상에 나올 정도의 그런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한 것도 같으나 정확히 기억이 없다.

 

하지만 페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도 그때다.

상념에 잠기며 소설 속에 또 문학사에 나오는 전설(?)적인 작가들의 면면이 떠올랐다.

그 대가들의 이력에는 한결같이 폐결핵이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

마치 대가의 전설(?)같은 느낌으로......,

하기는 그런 서정상태에서는 상념이 깊고 깊어져서 자책스러운 술잔도 그리웠다.

그래서 그 상념이 젖어들면서 아마 상념에 잡아 먹히면 죽고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는 것 같다.

 

2007년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쨰 시집에는 표지 그림을 사용했다.

첫 번째 시집은 판화가 남궁 산 선생의 판화를 두 번째는 두시영 선생님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시집(사막에서 사랑을)은 출판사에서 자체 디자인을 했다.

출판 기념회에 두시영 선생님은 나의 시를 읽은 소감을 그림으로 대신했다.

고마운 선물, 잊을 수 없는 선물로 지금도 난 이 파일을 품고 다닌다. 

 

마치 그때 우연한 출판 제안이 들어왔다.

사실 문학적 열정을 쏟았던 시기에 첫시집이 나오고 일년이 막 지난 상태에서 신명이 났다.

하지만 한국문단의 씨스템 안에서는 이렇다할 자랑스런 등단이 못되는 추천 등단이다.

 

물론 추천해주신 선생님의 명망으로 그 누구보다 당당한 작가의 길을 가리란 다짐과 호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호기로 출판사의 제안에 응하면서도 철저히 요구조건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엉뚱한 호기가 발동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출판 조건으로 책을 250권 인쇄 후 지급해 줄 것,

엽서를 인쇄해 줄 것,

그리고 인쇄는 15%를 지급해 줄 것 등이다.

 

어쩌면 그때의 그 호기가 지금도 남아서 자존심 강한 시인으로 살고 있는 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콧대 센 작가의 출판에 응하는 태도로 

어찌된 형국으로 출판이 성사가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후 오래 동안 그 책이 출판 코너에 꽂혀 있었던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해당 출판사 사장에게도 진정 고마운 인사를 해야할 조건이었다.

그렇게 출판이 결정되고 원고를 넘겼다.

 

출판사에서는 편집 작업을 시작했고 나는 그 다음 날

아는 동생이 원무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강북하나의원이라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때의 기분은 꼭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서 쓸쓸함이 더했고 입원한 다음 날 평소 자주 갔던 인사동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원치료를 받고 약을 좀 받은 후 낙향을 할 생각이었다.

그 낙향이란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이른바 폐결핵 환자의 요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는 쓸쓸하게 눈이 내리는 어느날 대개의 주인공들은 세상과 작별을 했다.

 

나도 속으로 그런 그림을 그리며

다시는 ㅇ니사동에 못 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인사동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고

쓸쓸한 발걸음에 쓸쓸한 상념의 한 덩어리인 채로 길을 걸었다.

아마도 긴 바바리 코트도 입었던 기억이 난다.

여지없는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인 겨울 나그네였다. 

 

안쓰런 눈빛으로 인사동의 기억을 되살리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갤러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끔씩 인사동을 찾아 갤러리를 드나들던 버릇 그대로였다.

 

그때 지금 기억으로는 <선>갤러리인 듯하다.

화가 두시영 선생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고 그림에서 느껴지는 흙내음에 반했다.

그런데 그 흙의 온화함 속에 철학적 사유와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는

조화로울 것 같지 않은 간극을 좁혀 하나로 해석해내는 작가의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황토흙에 유화를 섞어 만든 채색이 마치 구들방에 들어앉은 느낌으로 평온했다.

마치 순간 병이 다 낫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 실험적인 작품으로

전두환의 5.18을 풍자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비추어주는 설치작품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간극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신기에 가까운 조화였다. 

 

그후로 선생님의 전시회가 열리면 고정출연을 시작했으며, 덕분에 그림공부도 조금은 하고 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지난 2006년인지 2007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예술의 전당에서의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에도 네팔로 출국하기 전에 전시회를 찾아 인사를 건넸던 듯하다.  

 

그리고 갤러리를 나오려다가 두시영 선생과 마주쳤다.

그 중 떡시루 그림을 보았고 내게 각인되었다.

오방색이거나 무지개색으로 내리는 눈발도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는 정말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안녕이라 인사를 한 후 문을 열고 나왔다.

 

그날 저녁 병원으로 눈을 맞으면서 돌아온 나는 병실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신세 한탄이 뒤섞인 한숨을 늘어지게 쉬면서

두시영 선생님의 그림 이미지를 떠올리며 시詩를 짓기 시작했다.

<꽃새벽에 눈내리고>꽃은 아름답고 새벽은 희망이고 다시 눈도 길조吉兆다.

어쩌면 스스로 나의 질병을 낫게 하려는 주문처럼 그런 시詩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외출 허가를 받았다.

 

고민없는 걸음으로 작심하듯 두시영 선생님을 찾았다.

곧 어제의 갤러리로 들어갔다.

마치 두시영 선생님은 자리에 계셨다.

그날이 이틀째 되는 날이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사정과 사연을

난생 처음 본 화가 두시영 선생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했다.

그리고서 인사에도 안맞고 도리에도 없는 맹랑한 청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여간 당돌하고 대책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 떡시루 그림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 병상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시를 지었다.

그리고는 시집이 곧 출간될 예정인데 어젯밤 쓴 시를 표제시로 쓰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그 그림을 표지 그림 이미지로 사용할 수 없겠는가?

 

사실 결론은 다 홀로 내린 후 청을 하는 무례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초면이나 다를 바 없는 화가에게......,

글을 쓰는 작가로서 예의도 없고 도리에도 안맞는 짓을 한 것이다.

그런 화가 두시영 선생님과의 만남은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지금도 내 삶에 한 자리 그리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시다.

 

천상의 인연처럼 소중하고 그래서 때로 변화가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사실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해석이 달리지고

모든 것들이 농익어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누구라고 변화를 탓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 긴요하고 순정한 인연의 사람이라면

그 어떤 변화조차 사랑의 눈으로 보고

그렇게 느끼고 인정할 수 있는 내 눈을 밝혀야 할 일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리운 선생님에게 그 동안의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고

또 앞으로 소중한 인연의 동산을 잘 가꾸어 가도록 노력하겠다는 고백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후 저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고

머뭇거리던 세상에 대한 도전적인 삶도 활기있게 살아내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작가는 아니라도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는 살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갖을 만큼은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는 자평을 해봅니다.

 

아래는 그때의 詩

 꽃새벽에 눈 내리고
 

어머니는 죽어버린 오감으로 차오르는 육감, 알을 잉태하고 껍질로 남은 어머니가 씨앗을 생각할 때에도, 썩어 씨앗이 되고 알이 되고 정화수 깊이 빠져든 초생달이 꽃새벽 문열고 이슬되어 올 때에도, 초겨울 새벽열고 오는 이슬 눈이 되어 내리네.

 

아직, 아직이라 하는 사이 안으로부터 잉태되었던 꽃새벽에 눈 내리네. 그 안 깊이 빠지고 깊이 솟고 순백으로 드러눕는 그림자 생각할 때에도 눈은 내리네.

 

그렇게 깊이 높이 차오르는 정화수 안의 그믐달처럼......, 꽃새벽에 눈 내리네. 돌부리에 걷어 채이고 돋아 오르던 살기 안에서도 깊이깊이 차오르며 살아나는 꽃새벽에 눈 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