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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고려인 한글학교의 특별한 과외 시간

by 김형효 2010. 4. 25.

 고마워요, 예쁜 한복 자랑하고, 기쁨으로 태권도를 배우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입니다.

 

한동안 침울에 가까운 마음으로 지내야했다.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 사는 고려인들의 생활문화 때문에 그랬고 고려인협회 창립 일에 한 학생이 한복을 입고 부른 일본가요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며 우리 말을 배우려는 열의가 모자라다고 마음 아파했다.

 

지난 주 한국에서 동생이 찾아왔다. 바쁜 일상 휴가철도 아닌 동생은 필자의 부탁으로 온 것이다. 사실 물류비용이 부담이 되어 물품을 전해주시는 분들에게 경비부담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의 순천향대 전영숙 선생님과 이소영 선생님께서 함께 보내주신 한복 그리고 필자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학용품과 이곳 고려인들을 위한 또 다른 선물을 대신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 고려인의 한복 자랑 한복을 입은 두 고려인 여성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한복을 자랑하고 있다.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보이며 연신 크라시바야, 크라시바야(아름답다. 아름답다),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최용섭단원과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복을 전하러온 아우 김현남(38세)이 흐뭇해하고 있다.
ⓒ 김형효
고려인의 한복 자랑

  
▲ 한복, 보고 또 보고 우크라이나의 두 여성에게 자랑하던 한복, 우크라이나 여성 둘이서 한참 동안을 보고 또 보고 하며 20여분이 흘렀다. 정말 아름다운 자랑이었다.
ⓒ 김형효
한복, 보고 또 보고

필자는 이곳 고려인협회장인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56세)에게 동생이 온다는 사실을 전하고 수도 키예프에 가서 동생을 만나 함께 왔다. 동생이 오는 길에 마침 휴가를 맞이한 키예프 군사학교의 태권도 사범인 코이카 최용섭(36세)봉사단원과 만나 함께 오게 되었다. 최용섭 단원에게 태권도 기초를 가르쳐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지도를 요청했다. 최용섭 단원은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9일 오후 예빠토리야 한글학교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먼저 한국에서 보내준 한복을 입는 행사가 열렸다. 아이들보다 먼저 들뜬 사람은 김플로리다와 이강산(47세)이라는 여성분이다. 둘은 낮부터 나와 오늘 수업을 위해 교실 청소와 실내장식을 하였다. 그들과 한국에서 온 아우 그리고 최용섭 단원이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한국에서 보내온 한복을 입기 시작했다.

 

  
▲ 이산하(4세)의 한글 솜씨, 장기자랑 한복을 잘 차려입은 이산하가 자랑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 동안 배운 한글로 똑똑하게 동요를 구연해주고 있다. 아우와 최용섭 단원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 김형효
이산하(4세)의 한글 솜씨, 장기자랑

  
▲ 동요 합창 우리 노래 잘하지요. 한복도 예쁘고 잘 어울리나요? 고려인 한글학교 아이들의 솜씨자랑.......,
ⓒ 김형효
동요 합창

한복을 입은 두 사람이 곧 교실 밖으로 나간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고 지켜보았다. 잠시 후 아파트 지하의 다른 방에 세들어 의복을 만드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가서 느닷없이 우리 한복의 옷맵시를 자랑하고 오는 것이다. 잠시 후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함께 왔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경탄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들 사이에서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당당해하는 그 모습을 보고 짠한 기쁨에 우리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세월 속에서 흔적을 잃고 살아야했던 조국이 자신들의 내면에 가득 차는 느낌, 아니 자신의 민족 정체성이 환희로 벅차오르는 느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기쁨을 조국에서 온 아우와 또 다른 단원 그리고 필자와 느끼며 이 나라 사람인 두 여성에게 보란 듯 자랑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오자 잘 들어맞지 않는 옷을 아이들에게 꼭 맞다고 말하며 한 치수, 두 치수 넉넉하거나 모자란 느낌의 한복을 입히려고 했다. 보기 좋은 수고를 보는 듯하다.

 

이어서 한국에서 네팔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네팔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무역을 하는 박춘건이란 분이 보내준 학용품과 티셔츠, 그리고 아우가 준비해온 선물들을 전하고 아우와 최용섭 단원, 필자가 함께 준비한 간단한 다과회를 열었다. 다과회가 끝난 후에는 그 동안 아이들이 배운 한글 동요 구연과 아리랑, 나리 나리 개나리, 둥글게 둥글게, 산 바람, 강 바람, 고향의 봄 등의 솜씨자랑이 열렸다. 자랑스러운 아이들의 눈빛에 활기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몇 주 동안의 안타까운 불안은 모두 일거에 씻겨가는 느낌이다.

 

 

 

  
▲ 고마워요. 한복입은 모습 예쁜가요. 모두가 화색이다. 봄날의 아름다움이 교실에 가득한 느낌으로 함께했다. 한복 보내주신 선생님, 선물과 학용품 보내주신 선생님 모두 고맙습니다.
ⓒ 김형효
고마워요. 한복입은 모습 예쁜가요.

  
▲ 우리 모두 다함께 태권도! 오른도 아이도 태권도! 민족의 국기 태권도를 배우는 열의가 대단했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아이들도 어른들도 즐거운 시간이었고 행사를 계획한 필자도 진행하는 사범도 배우는 아이도 모두 즐거워했다.
ⓒ 김형효
우리 모두 다함께 태권도!

다과를 마치고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기념촬영을 마쳤다. 1부 수업을 마친 셈이다. 곧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책상과 의자를 한 켠으로 치운 후 대열을 정비했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그 동안의 안타까움은 모두 사라지게 했다. 하나, 둘, 셋, 넷......, 태권도의 기본 동작들을 하나 하나 배워가며 힘을 얻는 그들을 보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전 처음이다. 필자가 수업 시간에 몇 차례 기본동작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태권도 사범이 직접 와서 지도해주는 시간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힘을 얻고 자신들이 중심이 된 것처럼 보였다.

 

예파토리야에 어둠이 내리고 수업이 끝났다. 그들이 오늘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필자와 아우, 최용섭 단원도 오늘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날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했다. 즐거운 하루 보람된 하루, 한민족임을 자랑하는 낯선 나라의 두 고려인 여성들과 우리도 함께 자랑스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민족의 앞날에도 자랑스러운 일이 어서 와서 하나된 그날에 더욱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