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광복이 우리의 아픔도 기쁨도 재단해버린 것은 아닐까?
5월 8일, 한국은 어린이날 축제에 이어 어버이날이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필자는 한국의 부모님들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했다. 카네이션 하나 제대로 달아드리지 못하고 두 해를 보낸다. 토요일 한글학교 수업을 마치고 시내를 돌아보았다.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는 우크라이아 전승일인 일요일 한글학교 학생들의 수업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수업도 없고 해서 자주 가는 흑해 바닷가를 산책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경찰이 행사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자주 가는 노점에 가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전승기념일 전야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행사는 저녁 8시부터 진행된다고 했다. 이곳은 늦게까지 밝다. 밤 9시 30분은 지나야 짙어가는 어둠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전승기념일은 외국인인 내게는 위험한 외출이 금지된 날이기도 하다. 필자는 날이 밝은 시간에 행사의 시작이나 보고 귀가할 생각으로 커피를 마시며 행사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사실 올 초부터 군데군데 전승65주년 입간판을 여러 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5월 9일 전승기념일 전날에는 상가가 문을 닫고 다음날 승전일의 의미를 새기기 위한 움직임이 낯선 이방인도 쉽게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두드러졌다.
우크라이나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전승 기념탑과 각종 조형물들을 보면서 뭐가 이리도 많은가? 홀로 의아해하면서 질문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승전기념일을 보면서 이제야 눈이 뜨이듯 이해하게 되는 것이 있다. 가혹한 아픔을 벗어난 기쁨이 이리 표출되는 것은 얼마나 정상적인 일인가? 국권을 잃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기억, 그리고 그 불행한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쁨을 찬양 고무하는 일이 아닌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격려하는 아름다운 날인 것이다.
그제야 필자는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찬란한 찬양 고무의 날이 없는가? 우리에게도 독립기념일이 있는가? 광복절이 있는가?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우리에게도 광복절이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들처럼 기쁘게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광복절은 없을까? 우리에게는 아픔도 기쁨도 재단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적당히 기뻐하고 적당히 슬퍼해야 한다고 강제해 버린 것은 아닌가? 무한히 기뻐하고 무한히 슬퍼할 수 있는 자유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음 순간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다.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우리에게는 민족 구성원 모두가 정말이지 삼각산이 춤을 춘다 할 만큼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광복절이 없지 않은가? 그래 그래서 그렇구나. 이제야 정신이 난다. 통일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통일만이 남은 희망이구나. 그래 우리에게도 저들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눈빛으로 찬란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날, 그날은 오직 통일뿐이구나.
통일의 그날이 와야만 우리는 계층과 이념과 남녀노소 불문하고 서로가 서로 격려하고 사랑스럽게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구나.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연이은 축제를 보며 단 한 번도 축제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스스로가 작아지고 서글퍼졌다. 연이틀 침묵하며 먹먹한 가슴을 다독여보았다. 그리고 홀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입 노래를 불러본다.
전승기념일인 5월 9일 네다섯 시간을 홀로 예파토리야 시내를 걷고 또 걸으며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헤매었다. 그리고 거리의 표정을 살피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 아이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 먼 훗날이 아닌 가까운 날 우리에게 예비된 통일의 날이 오면 좋겠다고 속으로 소원하고 소원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꽁꽁 언 땅만 보인다. 꽁꽁 얼어붙어가고 있는 남북만 보인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하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기억속의 유일한 축제, 2002년 월드컵 때가 떠오른다. 온 국민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하나였던 때다. 낯설게 만난 내 나라 사람들 그 누구도 서로를 격려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남북도 서로를 사상 최고로 사랑스럽게 알아가고 있었던 시절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서 춘삼월 들판의 들꽃과 산야의 개나리 진달래처럼 활짝 웃는 내 나라, 내 민족의 봄날이 왔으면 좋겠다. 낯선 나라의 전승기념일의 찬란한 축제가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워 눈시울이 붉어진다. 통일아! 어서 와서 우리도 한 번 두 번 세세 년년 대동춤판 한번 벌여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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