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10] '프라하의 봄'에서 '벨벳혁명'까지
체코인들의 역사적 전통을 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헝가리나 폴란드에서 보았던 것처럼 오래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가득한 나라였다. 프라하 시내를 걷다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마다 체코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역사가 있었다.
프라하 본 역을 빠져 나오자마자 왼쪽 편에 오래된 국립오페라 극장이 있다. 바로 본 역 앞으로 내려서면 오래된 교회당과 전차가 다니는 길 양편으로 오래된 교회당이 있다. 바로 그 앞에는 무하 박물관이 있었다. 다시 왼쪽 편으로 돌아서 10여 분만 걸어가면 바출라프 광장이 나온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바로 그 광장의 한 가운데는 국립박물관이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와 다르다면 시민이나 관광객 모두가 접근이 용이한 곳에 광장이 있고 박물관이 있었다. 외진 곳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박물관의 광장이 곧 시민광장인 것처럼 자유로웠다. 날이면 날마다 체코인들과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혼잡하다하리 만큼 넘쳐났다.
폐쇄 사회란 인식을 갖고 찾은 동유럽 각국들의 분위기는 우리보다 더 자유가 넘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눈에 서울 시민들이 워낙 바쁜 일상에 서두는 모습이 더 익숙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국립박물관 앞에 얕은 내리막길과 함께 바출라프 광장이다. 그 광장을 걸어 10분 정도 정면으로 걸어가면 프라하의 옛 시청사 광장에 가닿는다. 그곳을 지나다보면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본 듯한 건물들이 보인다. 영화 앵글 속에서 무언가를 감춘 듯 비스듬히 비추어지던 교회당들의 모습도 눈에 띤다.
탱크 한 대가 질주해 오자 길이 가득차던 그 길에서 쫓기던 프라하 시민들의 발걸음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탱크가 질주해 오던 좁은 골목 양 옆으로는 오래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던 모습이다. 그렇게 이루어 놓은 것 때문에 더욱 현실이 답답해 보이던 프라하다. 그래서 <프라하의 봄> 이전의 세월이 안타까워지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체코인들은 그 속에서 아름다운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
골목골목마다 다양한 박물관들이 즐비하다. 필자는 스탈린을 소개하는 '블랙 라이트 시어터(Black Light Theatre)'에 코뮤니스트(Communist, 공산주의자)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는 관광 안내책자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았으며 관람객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남녀노소를 맞이하고 있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체코의 매력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다. 남녀노소 모두를 충족시키며 평범한 관광객들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름난 작가의 고향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름난 음악가들의 고향이며,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용기를 주는 놀이동산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마리오네트 인형박물관이나 밀납 인형박물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어른들에게는 고즈넉하고도 깊은 고대 건축물을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한 번쯤 귀에 익숙한 음악이 있고 문학이 있으며 거리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많다. 더구나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교회당들이 있다.
앞서 선보였던 구시청사 옆 건물의 천문시계 앞에 인파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어디선가 보았으나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는 곳이 체코인 듯하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쳐온 것이 체코 예술인들이었다.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악가들이다. 시간이 모자라 그들 이름을 딴 박물관을 세세히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며칠은 머무르면서 프라하 역사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행인 것은 동유럽 국가 중 헝가리나 체코, 루마니아 등은 물가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중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현대사에서 우리가 독재에 시름하고 있을 때 그들은 공산정권에 의한 압제 속에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과 그들이 이룬 민주화의 역사가 가까운 시기라는 점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그들의 자유로운 문화 예술의 역사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앞서 있다는 현실이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민주화는 아직도 멀고 먼 여정을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외세의 힘에 의해 짓눌린 조국,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이다. 그러니 사슬에 묶여 있는 국민이 아닌가? 우리 스스로 속박이 없는 자유로운 국민, 주권국가의 국민이라 어느 누가 단호히 말할 수 있겠는가? 광복 65주년을 말하지만, 여전히 전시에 필요한 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나라의 국민이다. 문 밖에서 안을 보면 더 잘 들여다 보인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한다. 나라 밖에서 내 나라를 보고 내 민족이 처한 현실을 보는 눈길은 날마다 샛바람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맞는 것처럼 시리다.
이제 체코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압제자 차우세스쿠의 나라 루마니아로 간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체코인들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에 그 결실을 이룬다. 이때의 무혈혁명의 성공을 '벨벳혁명'이라 칭한다. 1989년 11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데모를 발단으로 공산당 정권이 붕괴되었다. 이는 '프라하의 봄'을 경험하고 함께 투쟁했던 극작가 바출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그 성공을 이룬다.
바출라프 하벨 대통령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도덕적인 정치에 대한 그의 해석에 대해 부패하고 탐욕적인 정치가들이 교과서로 삼아 배울 일이다. 아무튼 벨벳혁명의 성공은 전적으로 체코인들이 경험했던 '프라하의 봄'의 진정한 자유의지가 승화 발전된 것이다.
우리가 1980년 '서울의 봄'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또 다른 독재자 전두환의 압제에 시달렸던 것처럼 그들도 20여 년을 압제 속에 살았다. 우리가 '서울의 봄' 후 민주정부를 맞은 1998년까지 18년을 불편한 민주화 과정을 겪었다. 체코인들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시작으로 1989년까지 민주화 의지를 다졌던 것 같다.
한 나그네의 여행길이 마치 역사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거운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태어난 시점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나라들이라서 더욱 그런 듯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독재자의 그늘 속에 살면서 자유로운 나라라 배웠다. 그러나 후일 알았다. 내가 살았던 그때는 자유를 요구할 것도 필요한 것도 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동유럽이 공산정권이었다 해도 내게는 상관없었던 일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많은 시간 공산정권에 대해 비난해 왔다. 그러나 그 시기 내 조국에서 행해지던 독재에 대해서는 양비론의 사슬에 묶여 혼돈 섞인 논쟁을 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억압하던 인간의 자유로운 생활에 위해를 가하는 방식의 통제는 안 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상에서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내 나라에 통제와 억압의 조짐이 느껴질 때 반드시 인식해야할 역사다. 언론을 통제하거나 왜곡하기 위한 온갖 정치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도 포함해서다.
아무튼 체코인들의 투쟁은 훗날 동유럽의 자유화 의지에 불길로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 악명 높던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공산정권의 몰락으로도 이어진다. 우크라이나로 귀로하는 길에 육로를 이용하기 위해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경지역인 오라데아로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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