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
그리고 속없이 웃게 해줘서 고맙다.
어린 동자승 같은 영혼을 가진 듯한 청소녀 중학생들......,
난 어린 나무에 초록잎 움을 트듯
해맑은 영혼의 가녀린 손등을 가진 아이들을 청소녀로 부르기로 했다.
대전역 앞에서 택시에 오른 여중생 둘!
교복집에서 만나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무작정 극장엘 간단다.
그런데 돈 1,000원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탔다는 그들이 너무 우습다.
가까운 극장은 6,000원 하는 영화가 택시를 타고 가서 보는 데서는 5,000원이란다.
그런데 택시비가 5,000원이 넘게 나오는 거리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이쿠 왜!
이렇게 머리가 안돌아가지!
다음에 지하철 타면 될 걸 왜 택시를 탔냐고 했더니,
다시 왜 이렇게 머리가 안돌아가지!
천진난만에 순진무구......,
그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 청춘의 꽃등불이 밝아져 오고 있다.
나는 그들의 무계획한 날이 가고 가다보면
그들도 오늘의 기억을
그들 청춘의 끝자락에서 빛날 오늘의 추억이었음을 알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전한 나의 이 말에 우리는 기억하기 싫다고 말하는 그들......,
볼 살이 포근포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간난 청소녀 들이었다.
그들의 미래에 밝은 꽃등이 켜지기를 기원해 본다.
삶의 여정에서 숱한 일들을 떠올리고 되새김질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길의 끝에서 길이 만나 새로운 날을 기약하듯 사람도 겹겹이 새로운 길들을 만난다.
그것을 혹자는 위기라고 하고 혹자는 기회라고 한다.
길은 항상 갈림길의 의미를 동시에 부여한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알리라.
그래서 자신들의 나이테에 맞게 살아가야할 책무도 쥐어지게 되는 것이 불혹의 나이가 아닐까?
중년 여성이 차에 올랐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눈부신 아름다운 미시로 보였다.
그런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안타까운 그늘이 여름날의 녹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오는 공허감이 그를 엷은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안타까움이다.
어렵게 말문을 열고 내 시집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장거리 가는 손님이니 지금부터는 문화카페입니다.라고 말한 후 내가 원하는 대화들을 진행했다.
시를 좋아하십니까?
한 때는 좋아했지요.
삶에 따라가는 것 같아요.
막힌 말문이 트이는 것처럼 말문이 열린다.
무엇인가에 막혀있던 것들이 풀려나오듯 자연스럽다.
하나 있는 아들을 키우느라 바쁘게 보낼 때는 바쁘지만 사는 것 같았는데
군대를 가고 대학을 다니느라 서울에 가 있는데 이제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동생들이 있는 곳에 소일하러 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 있단다.
그러나, 동생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면 여전히 허전한 마음이 안타깝다는 그녀!
나는 수명이 길어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여가를 보낼 법을 따로 갖지 못하면
삶의 의미가 갈수록 허망해질 것이라며
산행을 즐긴다던가? 코스여행을 즐긴다던가?
아니면 다른 문화활동 공간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권했다.
가능하다면 문예학교도 소개할 수 있다며 원한다면 후일 홈페이지 방문을 권했다.
삶의 권태란 마음안에 것이니
그가 아름다운 외모의 사람이던
그가 외형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룬 것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청한 것이니 친구들도 후일을 위해 무언가를 모색해 나가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
거리가 비틀거리듯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다.
새벽 시간 귀가하는 여대생과 남대생......, 함께 택시에 오른
그들의 대화가 물방울 튕기듯 탱탱하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모처럼 시를 좋아한다는 여대생을 만났다.
그때부터 탱탱하던 둘의 대화는 멈추고 말랑말랑한 여대생이 생기를 찾는다.
나의 택시드라이버 이야기에 꼭 자신도 써달라는 청탁(?)을 잊지 않는다.
그런 대찬 모습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청소녀!
그런 젊음의 윤기가 부럽다.
그는 뮤지컬(?)학과인가 오페라(?)학과인가 라는 곳엘 다닌다는 데
그런 대찬 아름다움을 소유한 그라면
다양한 양식을 섭취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건강한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듯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면적인 양식을 다양하게 섭취하라고 권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서울 나들이가 있었고
지난 14일에는 김천교도소를 방문
제소자들을 위한 시낭송과 시에 대한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전했다.
한 사람의 가수와 네 사람의 시인이
희망을 찾아가는 시작의 노래 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나는 나의 제3시집 <사막에서 사랑을>에 수록된 "아픔"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아프다고 아프다 말하고나면/ 아픔은 더 큰 아픔이 되어오고
/기쁨도 기쁘다고 말하고 나면/ 더 큰 기쁨이 되어 온다//""는 의미의 시이다.
나는 300여명의 제소자들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사회가 낳은 병자들일 수도 있고
이 사회가 병들어 그들을 양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기있는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나는
300개의 사슬에 내가 묶이는 느낌을 가졌다.
그들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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