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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고전을 통해 보는 우리사회의 성찰과 전망

by 김형효 2008. 1. 13.
 

 

'고전을 통해 보는 우리사회의 성찰과 전망'

지난 12월 8일 '신영복 선생 초청강연 및 2004년 언론광장(대표 김중배) 회원 송년의 밤' 행사가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열렸다. 신영복 교수는 이날 '고전을 통해 보는 우리사회의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주역과 논어 등을 통해 우리의 당면 문제들을 비추어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4년 언론광장 송년의 밤과 신영복 선생의 강좌를 알리는 펼침막.     © 김형효

 

신 교수는 먼저 사적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연결된 자신, 그리고 한글세대인 자신이 어떻게 고전(古典)과 접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지 못한 세대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고전을 공부하게 된 것은 감옥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대학 2학년 때 4ㆍ19혁명을 맞았고 대학 3학년 때 5ㆍ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4ㆍ19에서 5ㆍ16까지 1년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세대는 식민지배, 가난, 부정부패, 서구문화의 영향 등으로 우리 것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극심했다. 5ㆍ16 직전, 나는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감옥에서 비로소 이어졌다.”

숙명여대 강사이던 신영복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게 1968년. 20여년의 감옥생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당시는 수형자들에게 한 번에 책 3권 이상이 반입되지 않았다.

신 교수는 중국 고전이면 책 한 권으로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아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는 신영복 교수는 “그 많은 무기징역의 세월 동안 고전에 대한 관점을 키웠다”면서 먼저 '신문과 관련된 쓰라린 추억'의 일화를 소개하며 언론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상방연대는 권력 연습과 다름없다라며 우리 시대의 현재의 발전을 위해 하방연대의 필요성 강조하시는 신영복 교수     ©김형효

 

'신문지'와 관련된 교도소의 쓰라린 추억은 흡사 무용담을 듣는 것처럼 긴장하며 아픈 과거를 되씹어 보게 하였다.

이는 신 교수 스스로가 바로 보는 언론의 책임과 기능을 압축하여 설명하는 좋은 기제인 듯했다. "70년대 초반, 교도소 공장에서 작업재료를 포장했던 신문지를 몰래 방으로 가져와 보다가 교도관한테 발각되어 보안과가 출동해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신문지를 찢어 먹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제일 마지막 사람에게 남은 양이 많아 그 나머지를 화장실에 들어가 처리하고 나왔는데, 이튿날 화장실의 내용물을 운동장에 다 퍼서 깔자 씹다 만 신문이 나와서 굉장히 경을 쳤다"며 신문에 대한 아픈 추억을 전했다.

그러나, 이 '신문과 관련된 가슴 아픈 일화'는 신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감옥 안에서는 “한정된 정보가 오히려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며 문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감옥 밖에 나와서는 와이드한 정보 때문에 핵심을 놓치게 된다“며 기자들이 보여주는 취재의 일상이 놓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움직이지 않는 역사'의 모습 속에 실체적 역사가 있다.

山不動 水無常 道無水有(산부동 수무상 도무수유). 바다의 맨 아래에는 '움직이지 않는 역사'가 있고 그 위에는 '완만한 리듬을 가진 역사'가 있으며 맨 위에는 '표면의 출렁거림'이 있다. 출렁거림에 시선을 뺏기지 말고 바다 제일 아래 구조를 중시하자.

山不動 水無常 道無水有를 풀어갔다. 바다의 심부, 맨 아래에는 <움직이지 않는 역사>가 있고, 그 위에는 <완만한 리듬을 가진 역사>가 있으며 맨 위에 <표면의 출렁거림>이 있다.며 인류사는 구조 변화의 역사, 국면 변동의 역사 그리고 사건의 역사가 층위를 이루고 있다.

정치사는 변덕스러운 역사적 사건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표면의 출렁거림을 국면변동과 구조에 위치시키면 그것은 더 이상 먼지처럼 떠다니지 않는다. 법칙적 인식은 중기적인 국면변동보다 장기적인 구조변화를 더욱 중시한다.

인간의 삶에 장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구조>이다. 사회적구조, 경제적인 구조, 문화적 구조, 정신적인 구조, 나아가 정치적인 구조도 구조 개념에 포함된다.  

이는 급박한 사회를 다루는 언론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지 않을까." 이러한 구조가 인간의 삶에 장기적이고 반복적으로 구조변화를 일으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판단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실체에 대해 즉흥적으로 결론내림으로서 실체를 못 보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며 그런 현상은 언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실체에 접근된 관점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며 박괘를 풀이하다

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盧 象曰 君子得无 民所載也 小人剝盧 終不可用也(주역, 山地剝卦)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 주역의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구절을 풀이하며 언론의 역할에 대하여 처절한 자기 갱신을 요청했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빼앗긴다' 상구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여(上九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라는 구절을 들어 절망의 괘가 희망의 괘로 읽히게 되는 경과에 대해 풀이하고  언론이 사안만 뒤좇다가 사회가 가지는 잠재적인 역량에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본다며 우리 사회의 역량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신 교수는 이 대목에서 되풀이 "가을에 잎사귀 다 떨어진 감나무의 '씨 받는 과실'(碩果)은 먹지도, 먹히지도 않는다"며 "거품인 잎사귀를 다 떨어내고 남은 알몸, 즉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언론의 기능으로서 역경의 시기를 희망의 시기로 바꿔내는 지혜로운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런 기반은 어떻게 다져지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거품을 다 떨구고 뼈대를 보자. 우리 사회의 뼈대는 대단히 허약하다.

우리 현실의 바탕을 직시해야 한다. 다 떨어진 낙엽으로 뿌리를 덮어 거름이 되게 해야 한다. 어려운 때는 허위의식을 청산하고 기본적인 바탕을 직시해야 한다. 선생은 현재의 우리 삶의 저간에 대해 특히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란 점을 반영하듯 “우리는 때로 와이드한 정보 때문에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화두로 운을 뗐다.

진정한 知란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가치의 중요성을 바로 아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논어, 顔淵편) 仁(인)이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愛人)이다. 앎(知)이란 물건, 동물, 아파트 시세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다. 진짜 知(지)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다.

자본주의 200년은 BIG 5의 해결에 실패하였다. 인류의 5대 공적인 빈곤, 무지, 질병, 오염, 부패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였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풍요의 역사였다는 환상을 청산하여야 한다. 하루 5만명씩 굶어 죽는다.

여기서 묻고 싶다. 정말 무지(無知)를 해결했다고 보나? (지금 우리 시대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어느 시대보다 천박하다. 사람 보는 눈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무지하다.

한국사회는 작은 톱니바퀴이다. 한국사회는 정치적 주체적, 경제적 자립성 문화적 자존이 결여된 사회이다. 세계경제질서의 중하위에 종속된 작은 톱니바퀴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이다. 상품사회의 知는 상품생산에 유용한 知만이 평가된다. 팔리지 않는 상품에 투입되는 지는 무가치하다. 그러한 지의 소유자도 무가치하다. (顔淵)

상품사회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소멸한다. 쌀 1가마=구두1켤레. 이 등식은 상품사회에서 가치표현의 가장 간단한 형태이다. 가치는 상품이 지닌 사회적 속성이며 서로 다른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 즉 교환관계를 통하여 나타난다.

쌀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나타낼 수 없으며 구두의 도움을 빌어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상대적 가치형태이다. 구두는 쌀의 가치표현 소재로서 쌀과 동등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즉 등가형태이다. - 상품사회는 인간관계를 황폐화한다.

진전된 역사의 길, 흡수합병에서 상호 인정하는 세계로 열려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라는 논어 구절을 들어 신 교수는 자본운동논리에서 평화공존논리로 나아가자고 제언했다.

개인, 집단, 국가가 타자에 대하여 지배적인 위상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근대사회의 존재론적 구조이다.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는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이행이다.

관계론적 질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자에 대한 관용에 의하여 가능하다. 주체와 대상이 맺고 있는 관계를 자기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성찰적 노력이 전제되어야하며 사회적으로는 자기증식논리의 전형으로서의 자본논리가 공존과 평화의 사회원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상으로서의 관계론과 실천으로서의 연대론에 담긴 문명사적 의의이다.

신 교수는 특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구절을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고 읽는 것은 동양의 대(對)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화(和)란 나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평화공존 하는 것인데 반해, 동(同)은 자기 것으로 동화해야 하는 것이고 흡수합병과 지배통합을 뜻한다. 자본의 운동논리인 동이 콜럼부스로 부터 이라크까지 계속돼왔다. 이제는 화의 논리가 세계와 한반도 통일의 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신뢰 집단이 있는가?

신 교수는 논어 중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족식(足食), 족병(足兵),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之)이다. 자공이 묻기를 이 셋 중에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병을 버려라(去兵). 나머지 둘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식을 버려라(去食).

사람이란 죽지 않을 수 없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

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자공문정 자왈 족식 족병 민신지의.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삼자하선? 왈 거병. 자공왈 필부득이이거, 어사이자하선? 왈 거식. 자고개유사 민무신불입)는 구절을 전하며 신뢰의 근간이 무너진 우리 사회를 해부했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자부심이 결여되어 complex가 결정적인 판단을 좌우한다. 그래서 그런 사회는 합리적인 목표설정이 불가능하게 된다. 겸양은 기본적으로 불신의 언어로서 만남이 없는 사회에서 통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회에선 겸양은 통하지 않는다.

억압받는 계층인 물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연대뿐이고 물처럼 下方연대를 해야한다. 보다 더 진보적인 사람이 덜 진보적인 사람에게 다가가 연대해야 한다. 고생해보지 않은 사람이 보수주의자가 된다.

선생은 어떤 사회든 신뢰집단이 무너지면 내부소모의 과정을 거친다면서 선생의 눈으로 현실을 볼 때 현재의 우리 사회에는 신뢰집단이 없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리를 함께 하는 기자 모두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신뢰집단이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과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등 전 분야에 걸쳐 “내가 신뢰집단이다”고 인정할 만한 집단이 있는가? 반문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방연대의 필요성과 실천의 방법

신 교수는 노자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매우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古幾於道 夫唯不爭 故無尤(노자 8장)

물은 진리다. 물이 다투지 않는다는 뜻은 산이 막으면 돌아서 가고 바위가 있으면 갈라져서 가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 가고 절벽이 있으면 용기있게 뛰어내린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은 낮은 곳이다. 물은 지형지물을 감안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를 만들어낸다. 제일 낮은 물이자 제일 큰 물이 바다가 아닌가.

오늘날의 미학은 상품 미학에 기반한다. 유용성은 잘 팔리기 위한 것에 종속되어 있다. 잘 팔릴 수 있다는 것에 유용성은 종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자본주의 속성을 보여주는 표현법이기도 한 것이다. 모른다. 모름다움에서 오는 알고 있다. 알게 된 아름다움으로 상품적 가치는 탄생한다는 개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력도 변화도 외부에서 온다. 축적된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가 있고 우리는 그렇데 미래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기억투쟁이라는 것, 이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의 역설에 언어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知)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사람을 바로 아는 것만이 참된 앎이다. 여기서 상품과의 대별성이 드러난다. 상품은 스스로 가치를 드러내 표현되지 않는다. 등가적 형태의 성립을 통해서만 가치가 평가된다. 현대사회 인간의 가치가 올바로 정립되지 못한 무지의 사회다. 움직임의 논리, 동의 논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은 없다. 자본은 자기 종식의 논리 속에 존재한다. 자기를 종식시켜가며 자본은 성장한다.

우리에게 하방연대야말로 진정한 연대란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상방연대 즉 상부사회 혹은 상류계급과의 연대의 추구는 일종의 권력연습에 가까운 것이다. 개별적 영역에서 부문의 영역까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상위 조직화된 노조는 하위조직과 연대하고 조직화된 노조는 비조직화된 노조와 연대하며 조직된 집단은 비조직된 집단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단히 오랜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모든 변혁의 시작은 사상투쟁에서 시작되고 사상투쟁에서 끝난다. 그것을 추동할 구심이 바로 언론이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했다. 신 교수는 1963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1965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5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신 교수는 20년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등을 강의해왔으며 1998년 3월13일 사면 복권됐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사색>(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1, 2>(1998)가 있으며,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1991), <노신전>(1992, 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1994, 공역)이 있다.
인터넷홈페이지 http://shinyoungbok.pe.kr.


언론광장 대표인 김중배 전 MBC사장

송년회의 자리를 빌어 송년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었다. 일제시대부터 위정자들은 한해를 몽땅 잃어버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해 동안의 일들을 집단적으로 기억되기를 원치 않았던 그들에 의해 망년회라 불렸는데 이제는 송년회라 불린다.

지금은 보내는 해, 한때 몇몇 분들에 의해 상년회라 불리기도 했다. 1년의 소중한 기억을 상기하자. 망년회란 집단 기억상실을 요구하는 입장이었다. 또 다르게 명년회라 불리기도 했는데 명심하자! 한해의 기억을 명심하자! 무거운 함축성을 갖는 언어다.

선생은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 축사를 통해 과거를 묻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과거를 묻히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더욱 강조하여 과거를 파묻히게 하지 말 것을 간곡하게 청했다고 말씀 하셨다. 오늘날 매스컴 매스미디어가 만연하는 풍토에서 매스가 안 들어가는 미디어 즉 칼을 붓으로 치는 미디어가 없다는 말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셨다.

이럴 때 일수록 문제의식을 더욱 철저히 강화시켜갈 것을 주문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처럼 구조의 바닥을 향하여 새해를 가자. 미래를 가는 데 우리에게 치밀하고 정밀한 방식의 접근이 요구된다며 우리가 가야할 목표를 위해 구조의 바닥, 신뢰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새 시대 미디어의 종사자로서 기자적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거대언론 지배세력의 일부가 기자이기도 하고 모든 시민이 기자라고도 하는 이때 진정 기자란 무엇인가? 기자란 누구이고 리포터란 누구인가? 어느 날 방송대상에서 리포터가 방송대상수상자로 나오는 것을 본적이 있다. 정리되지 못한 기자의 영역에서 정리가 필요하다. 미정의 언론 환경 속에서 활자화되고 방송되는 상황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하다.

나는 70이 넘을 때 까지 후배들에게 지지 않느라고 술마시느라고 사흘 동안 입원하고 나왔다며 마신 술로 인해 광범위한 건강문제가 발생하였다고 그러나 이제 굳건히 일어났으니 함께 새해부터 다시 본론으로 가자! 인터넷 환경에서 그 다음을 어떻게 당위적으로 세워갈 것인가? 전파와 활자 양대 축을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 것인가? 언론이 지배적 권력의 본산이어서는 안 된다는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자본에 대한 언론의 대항력을 키울 때다.

김학천 교수(건국대 신문방송학과)

보수 언론은 이미 기자들에 대한 작업을 끝냈고 현재는 논설위원들에 대한 작업 중이다. 그들은 현재의 개혁 입법안으로는 지금 자신들의 아성을 지키려는 데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말하며 내년이면 모든 준비가 완료된다. 절대 권력과 그 외의 요소에 의한 언론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며 이런 때 언론의 주체인 기자가 주도함으로서 언론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는 실용주의 노선을 두고 이상주의자라 하더니, 요즘 어느 신문에서는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가 다 필요하다고 한다. 세상은 이상주의자가 바꾼다. 어떻든 세상은 비분강개 잘하는 사람이 바꾼다. 비분강개를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본문은 폴리티즌과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진보와 정론의 인터넷마당 대자보'(www.jabo.co.kr)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