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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랑탕 히말라야 6박 7일의 기록

랑탕(l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6)

by 김형효 2008. 2. 24.

- 무너질 것 없는 삶을 위해 영혼을 맑히고 산다.


히말라야 아래를 걷다보면 하늘아래 사람은 다 같다는 신의 말씀이 들려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검게 탄 얼굴에 맑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들의 모습과 티 없는 웃음을 보면 만년설에 덮힌 히말라야의 한 점 티 없이 맑은 신의 얼굴을 대하는 듯하다. 거침없는 웃음은 무더운 여름 찌뿌둥한 기분을 말끔히 씻어 내주는 소낙비처럼 후련하다. 그것은 이곳 사람들의 위대하고 훌륭한 무기이다. 그들의 무기는 낯선 여행자를 위로하고 안정감을 찾아주기에 충분한 웃음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사람을 편하고 안정감 있게 해준다는 것은......, 우리는 그런 말들을 순수라는 말로 포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위로받을 만한 고단함이 없다면 그들의 모습이 순수로 보일 것인가? 고단하고 피곤에 찌든 우리에게 그들이 아픔이 위로를 대신해주는 그런 여지를 주고 있기에 가능한 순수이리라. 하지만, 그런 차원의 순수라면 우리 스스로 입산의 의미를 새겨보듯 자신의 삶을 되돌아 사색에 잠겨볼 일이다.


한국에서처럼 당일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산과 다른 점이 좋다. 그것은 하루 이틀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아닌 히말라야를 바라보면서 걷는 산행을 통해 얻는 기쁨이다. 그러다보니 딴사람 같은 사색에 빠져들 수 있다.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얻기 위해 삶을 탕진한다. 아니다. 그 탕진이 삶의 이유가 되어가고 있고 그것을 일반화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함정을 파고 있다. 날마다. 사람답게 살기위해 사람과의 관계가 몰염치한 관계로 더 나아가서는 경쟁의 일반화로 인해 배신과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거짓은 능력이 되어가고 사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해석해도 되는 것이 되고 있다. 산중에서 길을 걷다보면 절로 맑아진다는 느낌에 취하게 된다. 일상의 뉴스에서 멀어지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돈과 명예와 사랑이 착취와 억압과 거짓으로 포장되는 현실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히말라야 산행으로는 짧은 산행이다. 당초 일주일 계획이었으나, 사정상 가능한 무리를 해서라도 일정을 당기기로 했다. 그래서 이틀을 앞당기느라 고다다벨라에서 하루 쉬었다가 다음날 랑탕(3,430미터)마을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었다. 그러나 일정을 조정하여 라마호텔에서 랑탕 마을까지 다녀와서 고다다벨라에서 묵기로 했다. 걸음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지는 않았다.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랑탕 마을은 3,430미터의 고도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고산 지대치고는 제법 넓은 평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탈진 산기슭에 돌무더기를 쌓아올려 담을 쌓고 그 안에서 감자를 캐는 아낙들 그 곁에서 감자를 줍는 아이들이 보인다. 랑탕 히말라야(7,234미터)를 오르려는 산악인들과 강진곰파(3,730미터)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묵어가는 곳이다. 필자는 그 높이에 얽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면 더 올라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만년설의 히말라야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가졌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산행이었다.


급한 길이었지만, 하산길이 조급하다. 깊은 계곡 속으로 저 멀리 여행 떠났던 구름들이 모여든다. 그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인다. 높은 산봉우리 넘어 보이지도 않던 구름들이 새떼처럼 깊은 계곡에 잠자러 온다는 것을 몇 번의 산행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을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노을과 함께 그 속도가 빨라지며 어둠도 그만큼 빨라진다. 그러니 발걸음이 바빠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 바쁜 걸음 중에도 볼 것은 다 보고 싶은 것이 나그네의 태평스런 욕심이다. 나는 그 깊어가는 어둠과 섞이는 구름새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를 썼다. 욕심이다. 신의 음성이 들려오는 산동네에서 나그네의 허망한 욕심인 것이다. 버리러 떠난 여행에서 또 다른 업을 축적하려는 습관적인 업이다. 그러니 사람은 이미 습관의 노예가 되어버린 욕망덩어리인지도 모르겠다. 가고 가다보면 뜻한 바가 이루어지듯 이루어지리라. 무소유의 덫에 걸려들고 싶다.


금방 검은 어둠 속에 검은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깊은 어둠에 주눅든 나그네의 기우에 불과한 일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고 늦은 시간에 고다다벨라 타망족이 운영하는 산장에 도착했다. 낮에 익혀놓은 얼굴들이라 곧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급하게 씻고 저녁식사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산중에 타망족 사람이 한 명 더 합류했다. 그들과 창을 마셨다. 저녁은 네팔사람들의 주식인 달밧으로 먹었다. 우리네 한식과 같은 개념의 네팔사람들의 주식이다. 식사 후 찌아를 마신 후 곧 숙소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 사색에 잠겼다. 잠시 후 낮동안 무리한 탓에 곧 잠에 들었다. 몇 차례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새벽별은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전날의 라마호텔에서 보았던 별자리보다도 더한 별밭에 취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급하게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얼마나 많은 별들인지 그저 칼퀴로 긁으면 그 별들이 꽃사태처럼 내게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새벽바람은 매서운 추위를 느끼게 했지만, 눈으로 보이는 별들의 따뜻한 속삭임이 날 견디게 했다. 멀고 먼 별들을 일반 사용자용 카메라에 담아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별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