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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안나푸르나 12박 13일의 기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2)

by 김형효 2008. 3. 16.

- 시(꺼비따)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를 만나다.

 

2월 21일이다. 산장 에베레스트에서 간단한 스프로 아침을 대신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곧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층층 계단을 내려가듯 계단형 논밭을 지나 걷고 있는데 멀리 어린 소녀가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짐 가방을 들었는데 어깨에 메기도 하고 그냥 들고 걷기도 한다.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보니 많이 힘든 모습이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슬리퍼를 신고 걷고 있었는데 아주 어린 학생이었다. 애처로워 보였다. 

 

꺼비따 리말(kabita Rim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로 11살이며 네팔 6학년이란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 보는 사람은 안타깝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했다. 그는 맑고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쉬어갈 겸 그와 함께 편안한 자리를 잡고 앉아 계속 그에게 질문을 하였다. 어디 가는가? 몇 살인가? 마을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꺼비따 리말(kabita Rim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로 11살이며 네팔 6학년이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스니커즈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걸 먹으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당나귀에 가득 짐을 싣고 한 행렬이 지나갔다.


그 뒤를 꺼비따와 우리는 동행이 되어 걸었다. 15분 정도 길을 걸었을까? 그때 내가 들고 가던 그의 짐을 달라고 하였다. 왜 그러는가 했더니 집이 그곳이란다. 꺼비따는 길가에 오두막을 가리키며 다 왔다고 하였다. 집 마당에는 꺼비따가 오기를 기다리던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나와 있었다. 다와와 나는 함께 그의 집에 갔다. 기념사진을 찍고 그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플러스 펜을 전해주었다. 약간의 먹거리와 함께......, 그의 밝은 모습에는 전혀 힘들거나 고통스런 모습은 찾아볼 길 없는 무한대로 뻗은 편안한 숲 길 같은 모습이 비쳐졌다. 그의 이름은 네팔말로 꺼비따이다. 꺼비따는 시(詩)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이름이 시(詩)인 것이다. 네팔 사람들의 이름에는 주로 힌두 신의 이름이 많다. 그 다음으로 천지자연에 대한 이름들이 많다. 나의 가이드를 맡아준 다와 쉐르파 역시 다와(DAWA)란 이름을 가졌지 않은가? 전제했듯이 다와란 달(MOON)이란 뜻이다.

꺼비따의 집 앞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우리는 첫날 벨루띠(Balluti)를 지나 쿠디(Khudi), 달루블루드헤(Thalubhululdhe), 갤링(Gharaling), 그리고 나디(Ngadi)를 지나 바운단다(Bahudanda)까지 8시간 15분만에 도착하였다. 아마도 중간에 많은 휴식시간을 생각하면 다섯 시간은 걸었다. 나디에서는 다와 친구가 운영하는 피상피크(Pisang peak)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벼운 낮잠을 청했다. 첫날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서 바로 이웃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네팔인 가이드로 보이는 친구와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사람으로 보이는 친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전에 꺼비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우리를 앞질러 길을 가던 친구들이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로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말문을 텄다. 그런데 바운단다에서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다. 이미 인사를 나눈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으니 매우 편안할 수  밖에......, 이후에는 스스럼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양 사람은 벨기에에서 온 26세의 마르틴(Martin)이라는 친구였다. 네팔인 가이드는 33세의 어르준(Arjun)이라는 친구다. 나는 마르틴을 통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벨기에 사람들은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살기 때문에 일인당 세금을 45%이상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수의 유입을 막는 일이 국가 안보를 위해 가장 큰 일인 것이다. 또한 최고로 높은 산은 700미터 정도라는 사실에도 놀랐다.

벨기에인 마르틴(26세)과 함께


고행(Taphas)


산이 높고
협곡이 깊고
낮은 산도 높고
높은 산도 낮고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오는
네팔 사람의 삶처럼
한없이 오르고 내리며
걷고 걷는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나 있다.
길과 길이 나란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듯
포개지고 또 이어지며
천지간을 오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이어주고 있다.


바운단다는 네팔 시인 마답 쁘라싸다 기미래(Madap prasad ghemere)가 살던 곳이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곳이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살다가 지금은 카트만두에 살고 있다고 했다. 바운단다를 오르는 길에는 수많은 천상의 계단들이 있었다. 네팔에서 흔하게 보는 천상의 계단이란 산의 경사를 유지하며 계단형으로 일구어 놓은 논밭을 이야기한다. 다랑이 논밭을 일구는 농부들, 농사짓는 어머니, 아버지 곁을 지키는 아이들, 돌을 깨며 일상을 사는 아이들과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아파한 내가 25kg 정도 되는 무게의 배낭을 메고 쩔쩔매는 꼴이 가엾다. 그것도 지적욕구, 지적인 수련을 충족시키기 위해 찾은 것 아닌가? 그런 내가 허덕이며 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지적허영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들의 일상의 궁핍을 보면서 그것이 상대적인 것이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곧 잊어버릴 과거가 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네팔 시인 마답쁘라싸다기미래도 저 아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공부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마답쁘라싸다기미래의 고향마을

멀리 제트기 발톱자국이나 손톱자국처럼 히말라야의 눈길이 보인다. 어떤 아이들은 산길을 뛰며 달리고 어떤 아이들은 노래하며 길을 간다. 안나푸르나의 눈이 녹아내리는 물줄기가 좋은 소리가 되어 흐르고 그 소리는 나의 심장을 울리고 새 울음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천상과 지상의 조화를 이어가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절벽을 오르는 수많은 당나귀 행렬을 보며 살아있는 네팔을 실감한다. 저 깊고도 고난이 가득 들어찬 듯 보이는 협곡 어딘가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신호! 바로 당나귀 발걸음은 그들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가는 길마다 당나귀 똥냄새가 지긋지긋하다. 사실 당나귀 똥을 밟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곳도 갈 수 없다. 그런데 당나귀들을 보면 참으로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찬찬히 당나귀의 눈을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눈 뜨고도 보이지 않을 것처럼 초점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멍청한 눈빛이다. 마치 넋 잃고 막연한 허공을 산책하는 혹은 응시하는 네팔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쉼 없이 간다. 주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며 공백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