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보름 넘게 묻어둔 고백, 스파이(?)로 오인 받다.

by 김형효 2009. 6. 23.

한창 여름이다. 한국에서 처음 올 때의 우크라이나는 북방의 혹한지대로 여길 만큼 추웠다.

소문대로구나! 정말 만만치 않겠구나? 그런데 요즘 같으면 한국과 전혀 다르지 않은 날씨다.

그래서 잠에서 깰 때는 한국인 줄 착각할 때도 있다.

날씨도 그렇고 내 사는 분위기가 한국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 그도 그럴 일인 것이다.

그러나 창을 열고 밖을 주시하면 금세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나는 이곳에 온 후로 가장 많이 하는 다짐이 한국에 가면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이곳 사람들의 늘씬하고 훤칠한 키처럼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모습은 몇 번을 말해도 지나침이 없는 부러움에 대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다차밭 가는 길에 핀 찔레꽃......, 하늘이 가을 하늘처럼 푸르기만 하다.

 

문화의 차이로 인해 겪는 일 때문에 감옥 아닌 감옥 생활로

한국의 소식만 보며 지내는 처지가 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때는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있었고 별로 바깥출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던 때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데도 가기가 싫어졌다. 물론 이도 곧 극복해야할 일이고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그러나 크게 당한 격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성실한 근무 태도로 모범을 보이겠다며 업무가 아직 주어지지 않은 학교에

꼬박꼬박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했다. 아뿔싸~!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항상 노트북을 소지하고 또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그들은 날 스파이(?)로 오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본부(키예프 사무소)에 문서로 보고가 되었다 한다.

필자에게 아무런 문의도 없이, 왜?라는 질문도 없이, 어이가 없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도무지 본부에서도 나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고, 본부에서 대학 관계자들이 하는 말을

그냥 믿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괜히 그렇게 말하겠는가? 의구심을 가졌다.

필자야 두 말 할 나위 없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음료나 맥주를 마시고 난 플라스틱 병을 이용해 만든 울타리가 정겹다.

 

다행인 것은 그로부터 2~3일 후 본부에 행정원이 찾아와 학교 당국자들을 만나고 나서 오해가 모두 풀렸다.

나의 성실한 태도는 그들이 짜 맞춘 각본에 너무도 잘 들어맞는 스파이(?)였던 것이다.

아무 일이 없는 데 출근을 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철저히 개인 생활의 보호를 받고 그렇게 익숙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수업이 없는 날은 평일에도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눈에 외국인 한 사람이 와서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인터넷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교수이지만, 사무실에 하나의 컴퓨터를 업무에 한하여 제한된 범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한국어 강사란 사람은 인터넷만 보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었다.

필자는 인터넷을 통해 교재를 개발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한국의 모습도 보여주며

러시아어 강의를 듣는 것도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이상하기만 했던 모양이다.

 

이집트에서 봉사활동 중인 단원들이다.

안부 메일을 보냈더니 보내온 사진이다. 신나 보이고 멋진 사진이다.

 

이러한 사실이 본부에서 와서 대화를 통해 해명되었다.

물론 내게 너무나 상냥했고 호의적이었기에 설마 하고 의문이 갖지만

필자를 스파이로 까지 생각했던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그런 의심까지 하고 내게 일언반구 없었던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앞으로 생활하면서도 자유롭지는 못할 듯해 부임지를 옮겨줄 것을 본부에 요청했고

본부에서도 그렇게 판단했다. 서글픈 일이다.

성의를 다하고 열의를 다한 일에 의해 호되게 배반을 당한 느낌으로

나를 공격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방학기간인 오는 8월 말까지 독수공방하며

모자란 현지어 공부를 하며 새로운 임지가 정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기력을 느낄 만큼 답답한 일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저 멀리 피라미트가 하늘 길에 닿을 듯하다.

 

그런 일상은 보름을 넘겼다.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하루하루 가까운 공원과 근처의 가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산책하는 거리를 멀리하며 움직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의자에는 두 할머니가 언제나 앉아서 도란거린다.

날마다 그 분들과 마주치는 일이 아늑한 평화를 준다.

사람이 사람과 만나는 것은 꽉 막힌 공간에서 밖으로 나설 때

마주하는 맑은 공기 같은 것임을 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다.

오늘은 그 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드리려고 사왔는데 웬일인가?

오늘은 어디 가셨을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지!

그분들도 조금 먼 마실을 가신 듯하다. 사람이 그리운 날들,

조국의 모든 사람들이 갈등을 잊고, 그 갈등을 넘어 가득한 그리움이 되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