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5] 폴란드 끄라코프에서 오시비엥침 ②
평화를 염원하는 평범한 세계인들이 찾는 곳이 오시비엥침이다. 수많은 전쟁의 상흔 앞에 엄숙히 고개 수그리는 수많은 세계인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분쟁과 분열은 대개의 경우 권력자들의 일이다. 그들 대부분이 대의 앞에 고개 수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쳐들고 야만적 욕구 충족에 혈안이다. 세계의 권력자들이 자국 국민들의 평화롭고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는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그 어떤 이념과도 무관하다. 그들은 그저 자기 욕심을 채울 생각뿐이다.
필자가 찾은 오시비엥침은 평화롭고 평화로웠다.
핏빛으로 물든 인류 역사의 흔적을 자연은 망각의 생태적 사슬로 바꾸어 놓았다. 만약 이곳이 2차 대전의 역사와 무관했다면 많은 가족단위 여행객이 여행을 왔을 법한 곳이다. 연인들은 한가롭게 강가를 거닐었을 것이다. 그저 그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자연의 위대한 복원성을 보여준 비수아강과 오수아강가를 거닐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그저 잊으라한다. 그냥 그렇게 살라한다. 상처 위로 풀과 나무가 자라고 강이 흐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아픔을 기억하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를 믿고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며 평화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세계는 평화로운가? 사람들이 좋은 말을 무수히 많이 알고 좋은 행동에 대해 알고 있다. 이미 어른이 되기 전 그런 말들을 배웠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알면서도 평화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갈 길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평화와 조화로운 일상은 없다.
지금 세계의 모든 권력이 길을 잃은 양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배우지 못해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닌 인간들처럼, 알지 못해서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할 때, 인간이 스스로의 욕심을 향해 들지 못하는 채찍은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다시 실천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오시비엥침은 과거 유대인 뿐 아닌 유럽 각국의 민족과 러시아, 공산주의자 독일 민족이라해도 나치즘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가차없이 살육한 현장이다. 결국 오시비엥침을 찾아온 사람들, 과거의 상흔을 찾아간 그 모든 곳에서 세계의 권력자들이 동의할 목표지점을 향해 함께 길을 나서야한다. 세계 권력기구 연합체라 할 수 있는 유엔에서 조차 응징을 말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며 또 다른 무력을 사용하려는 권력으로는 인류에게 평화를 찾을 길은 없다.
인류의 또 다른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동족에게도 더 없이 소중한 가치다. 평화로운 방법이 아닌 주먹질과 우격다짐의 논리로 어떻게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가? 작은 갈등에도 인간은 분노를 일으킬 때가 있다. 하물며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로 평화를 입에 담는 것은 저주다.
오늘 필자와 인사를 나눈 어린 아이들과 그 아이의 부모들은 내 동족이다. 그들은 포즈난에 살고 있는 한국 상사 주재원 가족들이었다. 아픔을 함께 하는 세계인들 속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다. 그런 우리가 우리 민족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함께 아파하고 있을지···. 또 한 번 멀고 먼 역사의 흔적을 쫓아 사색의 그림을 그려본다.
귀하고 귀한 한민족 수난의 과거와 현대사를 생각하며 속울음을 운다. 통곡하고 통곡해도 상처 없이 다시 올 수 없는 내 민족의 과거의 역사! 그러나 앞으로는 더 이상 상처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 남북은 모두 자각을 잃고 자학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침통하고 침통하다. 아이들의 미래에는 자각없이 자학하는 역사가 다시 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기도한다.
하늘도 맑고 아이들의 웃음도 맑다. 그렇게 세계 인류의 미래도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내 민족의 미래가 그렇게 맑았으면 좋겠다. 기차가 도착한 오시비엥침 역은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결코 인류의 재앙이 일어났을 법한 그런 장소란 생각은 떠올릴 수 없었다. 사전지식이 없다면 일상 속에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찾아온 비수아강과 소우아강을 고즈넉이 걸어보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굽이굽이 말없이 흐르는 강물은 역사의 흔적을 안고 흐르지만, 평화롭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메시지라도 던지듯 말이다. 유유하고 도도한 그 흐름에 인간이 평화를 배우고 얻어 그처럼 살아도 좋을 것을, 아직 멀었는가? 오시비엥침은 비수아 강과 소우아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수용소 안에서는 갖가지 유물과 참담한 과거의 기억을 곱씹게 하는 현장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동족의 아이들을 만났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충격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왕에 벌어진 판이란 생각으로 일제시대를 이야기하고 말았다. 인간이 갖는 지성의 힘은 때로 흔적만을 제시해도 원망과 저주와 공격성을 담는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안타깝다. 내 입으로 말하고 내가 안타깝다. 평화를 이야기하며 어쩌면 다른 아픔을 말함으로써 다시 분쟁의 심지를 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인류가 남긴 재앙 오시비엥침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남기지 않았거나 없었으면 좋았을 그런 유산이다. 오시비엥침은 폴란드의 철도 연결지이자 공업 중심지이다. 1940년에 세워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오슈비엥침-브제진카)는 나치 강제 집단 학살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독일명 아우슈비츠로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슈비엥침에 국립박물관을 세웠다.
드보리 죄수들이 세웠던 화학공장은 전쟁 후 재건되어 지금은 주요공업시설로 꼽힌다. 12세기에 요새 부락으로 시작되어 13세기에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1307년 보헤미아와 동맹을 맺은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으며 1457년 폴란드에 합병된다. 다시 1772년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가 1918년 다시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공업단지가 들어섰고 현재도 역사적 건축물이 일부 남아 있다.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자리다. 그 자리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된 안내책자도 잘 구비되어 있었다. 안내 책자를 팔고 있는 구내 서점에서 "중국인인가? 일본인인가?" 묻다가 한국인이라 했더니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다시 몇 장의 엽서를 기념품으로 샀더니 이번에는 "THANK YOU!"는 어떻게 말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 대화할 수 없어도 서툴러도 그렇게 인사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는 인사가 있다면 우리에게 아직 평화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닐까? 기대하고 기대하면서 저문 해를 쫓아 끄라코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픔만 탓하다 세월 다 보내지 말자. 우리 싸움 뒤에서 승냥이가 먹이를 뜯듯이 우리를 뜯어먹고 잡아먹고 있는 강대국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제 삼존마애불 같은 웃음을 찾아 길을 가자. 한반도, 내 조국, 내 민족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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