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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룸비니 동산 앞 십자가 어찌볼까?

by 김형효 2011. 10. 10.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39)

 

룸비니 공항의 뙤약볕은 말 할 수 없이 강했다. 전하는 말로는 석가모니 탄생 당시에는 이토록 무덥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확인할 길이 없다. 미리 화가 비케이의 지인을 통해 택시를 대절해 두었다. 도착 후 택시는 20분 정도 늦게 공항에 왔다. 네팔 사람들의 네팔리 타임(네팔사람들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굳어진 느린 시간개념을 이르는 말)으로는 비교적 빠른 시간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에서 약속의 무의미함을 경험한다고 한다. 네팔도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겪는 정도는 아니라 한다. 곧 일행은 태시에 올랐다. 룸비니 공항에서 일행이 머물고자 하는 룸비니에 있는 한국 사찰인 대성석가사까지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가는 길에 낯선 풍경이 일행을 반긴다. 여행 동안의 낯설음이 더하면 할수록 여행의 묘미는 커가는 것이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룸비니 일대의 초원에는 벼가 자라고 있었다. 가끔씩 무더운 날 동안의 노동을 위해 펼친 우산 속에 농부들이 보인다. 뙤약볕의 세기를 강하게 이겨가는 농부 몇몇은 사리를 휘날리며 논에 김을 매고 있었다. 아이들이 길을 지나며 고단한 이곳 사람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는 이의 감상일 뿐이다. 네팔인 누구도 고통을 고통스럽게 알리지 않는다. 초연한 선인의 모습이 그런 것일까 싶다.

한 동안 속도를 내며 달리던 차량 사이로 교회 십자가가 보인다. 바로 룸비니 동산 앞이다. 괘씸하다는 생각이다. 난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이고 불교도적 전통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예의라는 것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예루살렘에 예수 탄신지에 부처님을 모신 절을 세웠다면 그들은 어찌했을까? 아니 이슬람 사원 앞에 그랬다면 어찌했을까? 아찔하다. 그러면서도 순간 부처님의 무념무상이 떠오른다. 그래 부처님이니까? 저런 짓(?)도 허용했으리라. 대체 누구의 짓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조금 더 가자 아이들이 부처님을 모신 대형 불상 앞에서 놀고 있다. 초롱한 눈망울이 일행의 발길을 붙잡는다. 순박한 아이들이란 표현조차 미안할 정도로 자연인 아이들이다. 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어 서로를 떠난다.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떠나고 우리는 아이들을 떠난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인연일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밝은 웃음을 맑은 눈망울에 담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룸비니 동산 입구를 찾았으나 자동차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룸비니 동산 인근에 불상이다. 바로 그 곁에 교회의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하늘을 휘감는 구름과 달이 조화롭다. 환상은 그 어디에도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늦은 길이지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안다고 간 길 우리를 안내한 현지인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화가 비케이의 안내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정도를 간다는 것은 이럴 때도 필요하다. 아무튼 아직은 늦지 않은 시간이다. 대성석가사에서는 저녁 공양이 한창이었다. 방이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공양을 마친 후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독일, 중국 등 외국인들이 저녁 공양 대열에 함께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숙박비를 받지 않았으나 요즘에는 저렴한 비용을 받고 있었다. 여행객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며 저녁 공양과 아침 공양 그리고 며칠을 머물러도 밥값을 받지 않으니 한 동안 쉬어가기에는 맞춤한 곳이다. 저물녘의 날빛이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하다. 현지인들이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듯도 하다. 공양을 마치고 정해준 방에 짐을 풀고 산책을 하였다.

늦지 않은 시간인데 어둠이 깊다. 한 시간여 산책을 하고 곧 숙소로 돌아와 씻고 이야기를 나누다 깊은 잠을 청했다. 드넓은 평원에 쏟아질 듯한 별빛을 볼 수 있는 밤을 놓친 채 아침을 맞았다.

일행 중 한 사람, 신한은행 지점장이신 성백선 형님은 새벽 별을 보았단다. 다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는 정성 탓이다. 성자의 땅 룸비니에서 그것도 성인을 향한 108배의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다. 기자는 세 차례를 찾았지만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룸비니 동산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 강변에서 노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처님 탄생의 순간부터 이어져왔다는 불이다. 사실은 너무 생소한 이야기라서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또한 인간의 모자람에서 온 조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갈래를 연 성인이던 그를 향한 경배하는 마음을 한번쯤 가져보는 것은 좋은 일 같다. 예수,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아니 그가 누구라도 말이다. 아니 그 자리에서 바라본 인간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