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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42)

by 김형효 2012. 12. 29.

사람은 사람을찾아 살고 죽는다

 

사람은 사람을 찾아 살고 죽는다. 우리는 신을 찾는다고 신을 위해 손을 모으지만 우리가 우선 할 일은 사람에게 손을 모으는 일이다.
내 눈 앞에 사람들에게도 손을 모으지 못하고 경배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어떤 대상에게 손을 모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신이 그 너머에 있다면 그 신도 인간이 인간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본다면 감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잃어버리고 인간이 인간을 경멸하거나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신도 그런 인간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경멸하리라. 그것이 기자의 생각이지만, 세상은 너무나 멀다. 너무나 멀리 인간의 길을 벗어나가고 있다.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뜬금없이 난 내 동족의 현재를 본다.

이제 반년이 지난, 지난 겨울날의 유럽 여행이 떠오른다. 잠이 든 채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사는 땅을 넘나들던 유럽이다.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이다.
난 그들이 과거 서로 물고 물리던 전쟁을 치렀던 역사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지금 그들은 공존의 길을 걷고 있다. 가고 있다.

오랜 동안 머물렀던 우크라이나에서도 여행 중에도 또 다른 나라에서도 남한에서 온 사람인지 북한에서 온 사람인지를 물어올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이미 한민족이 하나라는 것 그리고 분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묻는 것 아닌가? 우리는 내 앞에 내 동족에 손을 모으는 것보다 이민족의 종교에 더 몰입해있다. 그것은 인간이 갈 길은 아니란 생각이다.

맑고 맑다. 호수 안에 불상이 맑은 호수에 비친다.



 

석가모니 탄생 장소가 저 박물관 안에 있다. 카빌라성의 기둥으로 쓰였던 벽돌들도 주춧돌도......,



한국에 엉뚱한 논의구조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기자가 국수주의자라는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가족, 지인, 그리고 사회, 국가 그리고 민족, 모든 생각은 내 발 앞에서 부터 내 현실에서부터 나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분단은 발 앞에 떨어진 불같은 것이란 사실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했으면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상의 것, 모든 바쁜 것들을 핑계로 가장 시급한 것을 외면하고 있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참 안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어렵게 찾은 유럽 땅에서 그리고 룸비니에서 교과서에서나 사색하는 조국분단을 생각해야하는 사람이다. 자손만대 자랑스러운 유산이 아니라면 현재의 태평성대에 현혹되어 사는 것은 바른 일은 아닌 듯하다. 어서 떨쳐 내버릴 일이라는 것이다.

궁리하는 것을 귀찮다고 떨쳐낼 일이 아니라 궁리를 통해서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후손들에게 핑계거리나 장황하게 늘어놓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드넓은 평원 가운데 룸비니 동산을 돌아보다 저 멀리 북쪽 하늘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히말라야를 보았다. 정말 쉽게 볼 수 없는 룸비니에서 보는 히말이다. 어쩌면 착시일지도 모르겠다. 경이로움에 보고 다시 보았다.
일행의 눈 그리고 네팔인 비케이의 눈에도 히말라야라는 답을 얻었다.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나무다. 그런 한국에서 아는 보리수와는 다르다.
마야데비, 석가모니 어머니 박물관에 한 순례객이 흰 옷을 입고 손을 모은 채 걸음을 옮겨딛고 있다.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 박물관을 둘러보고 곧 성자의 어머니를 모신 마야데비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한 순례자가 마치 환생한 석가모니의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마야데비 박물관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일정한 공간을 오가며 굳게 입을 다문 채 곧은 자세로 걷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흰 옷을 입은 채 말이다.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으로만 멈췄다. 어느 날 한 번은 그 어느 곳에서라도 그처럼 걸어보고 싶다. 지상의 모든 평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면 아니 그런 지상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 염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기로 한다.

신을 믿을 만큼 충만하지 못해서 난 그저 사람을 믿기로 하고 사람 속으로 걷고 걸을 수 있다면 난 행복하다 믿기로 하고 발걸음을 마야데비 생가로 옮겼다. 여행 중 딴 생각 같은 조국분단에 대한 사색도 나를 따라 옮겨질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나를 구성하는 사색의 한 중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