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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44)

by 김형효 2012. 12. 29.

부처님 어머니의 생가 데바더흐에 가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데비 생가가 있는 마을은 룸비니를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늘면서 새로 조성되고 있었다. 성자를 낳은 어머니 마야데비다.

네팔 말 그리고 인도말로 마야는 사랑(=다솜)이다. 기자는 마야라는 말을 이해하면서 네팔 말 마야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부처님 어머니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많은 네팔 말은 석가모니 시대의 말들이 스며있다. 석가모니 시대의 많은 이야기들이 말로 된 것은 아닌가하는 그런 궁금증도 있다.

룸비니에서 데바더흐 가는 길에 한국의 어느 시골 풍경처럼 논에서 김을 매는 농부들을 볼 수 있었다.


큰 도로에서 20분 이상 달렸다. 좁은 농로 넓은 농토가 있었다. 네팔의 전체 쌀 생산량의 대부분은 네팔 남부인 룸비니 인근에서 생산되고 있다. 네팔 영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히말이다. 4~5000미터의 산이 무수히 많아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행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산을 바라보며 수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들의 깊은 심성은 작은 일에도 반응을 무디게 하는 것 같다. 초월한 신령같은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나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물과 현실에 대응하는 모습과 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한국인이 지극히 인간적이라면 그들은 초자연처럼 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의 대응은 너무 빠르고 그들은 너무 느리다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른다. 그것은 지극히 소망하는 나의 모습을 투영한 바람일 것이다. 우리는 곧 바야데비 생가 마치 작은 공원이라 할만하다.

공원과 다르다면 팔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펼친 마야데비가 있을 뿐이다. 마치 내 아들이 최고라 표현하는 듯한 행동인데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동상을 중심으로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그 앞에 서서 경배했다. 손을 모으고 잠시 사색도 멈추고 경의를 표했다. 모든 어머니가 함께 그 자리에 다 모인 따뜻한 동산이란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네팔에는 오래된 나무에 사원처럼 조성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의 시골 마을에 풍경처럼 말이다.

마야데비 동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아담한 동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은 어머니 상이다.


그 동안 네팔을 찾은 것이 여덟 번 째, 룸비니에 세 번째다. 마야데비 생가는 처음 찾았다. 룸비니를 찾고 불교와 좀 더 가까워진 그런 막연함도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성자도 인간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들을 따르고 그들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도 지극히 인간적이길 바란다. 그런데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보거나 그들이 마치 신인것처럼 행동하려는 기도를 본다. 헛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네 현실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았다. 그런데 그 교육받은 사람들은 무지에 가득한 사람처럼 그 길에 함께하고 있다.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가끔은 기자가 많이 모자라서 그런 대열에 다가가지 못하는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할 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

현실에서 겪거나 경험하는 낭패감을 달리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극단적 선택이다. 물론 나는 그들만큼 다가서지 못한 것이 무언지 몰라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신이 곧 인간이라는 전제로 살아도 보통의 인간을 신격화하고 살 것인가?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상이 전지전능의 대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란 생각이다.

네팔 화가 비케이가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그는 마야데비 생가에서 30분 정도 거리에서 태어난 화가다. 그는 석가모니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김판용 시인과 함께


그들이 믿는 대상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종교의 자유를 좀 더 폭넓게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든 우리가 믿는 모든 신은 인간이 기르고 따뜻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자란다.
그렇기에 신을 믿고 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도 좀 더 따뜻해졌으면 한다. 사실 요즘 신은 너무 차갑다. 가혹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종교와 관련된 범죄와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들도 그 차갑고 싸늘한 것들이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듯 마야데비 생가에서 떠났다.
곧 화가 비케이의 집을 향했다. 너무나도 닮은 시골길, 좀 더 오래된 지난 날 한국처럼 도로에서는 흙바람이 날렸다. 버스도 오토바이도 가끔씩 택시도 자가용도 그 길을 비켜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