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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쓰는 시

하느님 아버지 좋은 말로 할 때 저들을 거두어 주소서!

by 김형효 2008. 8. 30.

아장걸음의 아이처럼 가는 겁니다.

저들은 멋모르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얼"찬 아이의 가는 길을

저 "얼"빠진 꼴통들은 알지 못하겠지요.

 

스멀스멀 노을이 바다에 잠기듯

저는 어둠을 밝히는 날

빛을 발하는 촛농처럼

촛불속으로 흘러듭니다.

 

처음은 방심한 탓에

저들이 우리를 향하여 겨눈

칼끝, 창끝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거짖과 참이  켜켜로 얽히면서도

겹겹이 거짖과 참인 것들이 선명해집니다.

 

저들은 저들끼리 나라를 나누어 먹기 위해

민영화한다고 합니다.

재벌 몇명이서 나라를 나누어 먹겠답니다.

 

가엾이 못가진 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나누느니

차라리 외국자본에라도 넘길 태세입니다.

우리의 권리나 우리의 자존은

그들의 권리와 그들의 자존 앞에 무의미합니다.

 

처절이 그들을 흥미롭게 웃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절을 딛고 일어나

저들의 교활을 보고 웃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멋없이 아우성치며 절규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못된 신문사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저들을 꺾어보려고 애쓴 적도 있었습니다.

때늦게 촛불과 함께 타오른 언론소비자주권 모임이

뒷불처럼 왕성하게 타오르길 기대합니다.

 

광화문을 애끓게 달래던

조선일보 반대 일인시위의 추억!

오늘 아장걸음의 아이가 되어 뚜벅뚜벅 걸음 걸어 갑니다.

 

모자란 듯 가득찬 듯

우리는 서로가 서로 부둥키며 가는 겁니다.

광야의 독립지사처럼

지사를 요구하는 이 시대의 거친 벌판을

고구렷적 말타고 광야를 호령하던 고구려 장수처럼 말입니다.

 

멈칫 멈칫 뒤돌아 보기도 하지요.

멈칫 멈칫 뒤돌아 보게도 되지요.

하지만, 우리는 느린 절망감으로

거친 광야에서 마지막 남은 털끝조차

우리를 위한 위로이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동토의 하늘과

동토의 거리와

동토의 미친 벌판입니다.  

 

그런지도 모르거나 그런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궤도 속에 깊이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저는 외로이

저들을 거두어주기를 시시때때 기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좋은 말로 할 때

하고 많은 기도 중에 그런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좋은 말로 할 때

인간을 억압하는 저들을 거두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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