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역사가 짧게는 30년 길게는 50여년이 넘는 이곳 예빠토리야에 고려인 협회가 만들어진 것은 올해로 5주년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낯선 곳에서 서로를 위로할 수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필자는 지난 12일 예빠토리야에서 시청문화국에서 주관한 소수민족들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의 모임에 참석하였다.
오는 23일 예빠토리야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언어경시대회와 관련한 준비사항을 듣고 서로 상견례를 갖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독일어, 폴란드어, 터키어, 아르메니아어, 러시아어 선생들이 참석했다. 물론 필자는 한국어 선생으로 참석했다. 강한 사명감을 요구받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구성은 대개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아픔인 침략의 역사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 어쩌면 유일하게 고려인의 경우는 예외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불편하게 말하면 흘러들어온 민족이다. 어찌되었든 지난 1월 있었던 소수민족문화경연대회에 필자에게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자랑스런 모습으로 참여했다. 물론 한복을 입고 나선 모습에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동요 부르는 솜씨도 좋았다.
이번 2월 11일 새 학기를 맞아 한글학교 개학식이 열리고 23일에는 소수민족언어 경시대회에 고려인들은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다. 사실 예빠토리야에서 고려인들은 이런 행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조상의 언어를 배워본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곳에 와서 발견한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모르는 우크라이나의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필자가 이곳에 오기 전처럼 여전히 한글선생이 없어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지난 2009년 10월 인근 도시인 헤르손이라는 곳에서 열렸던 고려인축제에서 만난 고려인 중 비교적 규모있는 도시인 도네츠크에도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며 애걸처럼 말하던 부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도 달려가서 한글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이런 필자의 마음보다는 그들의 아픈 마음이 몇 배는 더하리라.
뒤늦게 알게 된 조상의 나라! 이제 익숙하게 뉴스에서도 다루어지지만, 자신들에게는 낯설고 멀기만 한 나라!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이 낯선 땅에 오게 된 것인지 몰라, 필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중년의 남성에서부터 그들의 아들, 딸들인 어린 학생들까지......, 더군다나 필자조차 임기가 끝나고 나면 이곳에도 다시 예전처럼 한글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게 된다. 코이카도 내년 8월 이후 우크라이나 봉사단 활동을 종료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얼마 남지 않은 일 년을 효과적으로 보낼 방법을 찾아보지만 이곳 사정이 소홀치 않아서 어려움이 많다. 언어에도 집중하기가 어렵고 문화에 대한 관심도 깊지 않다. 아는 만큼 욕구도 커지는 것인데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여러 가지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들을 찾지만, 휴일이 다반사로 이어지는 생활행태로 수업이 맥이 끊기는 경우가 또한 다반사다.
설날이라는 명절에 대해 아는 부모들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서커스단 관람표를 끊어서 시간이 되는 두 아이와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가 함께했다. 사실 며칠 전 낯선 음식이라서 제대로 먹을지 몰라 먼저 고려인 어른들을 초대해 떡국을 끓여 대접하였다. 환갑이 되어 처음으로 떡국을 드시는 아르춈(61세) 이라는 분이 연신 맛있다고 하신다. 참 맛있소. 그 곁에 이랴라는 여성분도 연신 흥미로운 맛이라며 맛있게 드셨다.
지난 추석 송편 만들기에 이어 우리의 민속명절에 대해 또 하나를 새롭게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광주에 떡집(무등떡 방앗간)을 경영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떡국 떡을 국제우편으로 받았다. 상할 것을 염려해 음지에 말려서 보내준 떡국 재료가 좋은 상태로 도착했다. 그 고마운 마음을 나누자고 청해서 집에 찾아온 네 분과 맛을 보았는데, 모두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권하려는 것이다.
설날을 맞아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필자의 아파트로 초대해서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나서 윷놀이를 하고 다시 세배하는 법을 가르쳤다. 세뱃돈 대신 한국에서 카페회원이 보내준 공책을 선물로 전했다. 지난 달 가르쳐준 윷놀이를 하자는 말에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 마음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이란 것이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오늘도 그들과 나의 길은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 길 위를 함께 걷고 있다. 아쉬움이 기다리고 있다하더라도 지금 충실한 한 걸음 걸어보자고 설날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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