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2)
by 김형효
2012. 12. 29.
사람은 자기 의지가 향하는 방향을 찾아 살아간다
묵디낫은 세 번째다. 첫 번째는 2006년 2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가장 긴 베시샤하르부터 나야뿔까지 이어지는 15박 16일 코스였다. 그때는 해당 코스 중 가장 높은 5416미터 토롱라파스를 올랐다가 곧 3800미터인 묵디낫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2006년 8월 한국의 한 지인, 그리고 네팔 화가와 함께였다. 이번은 한국의 김판용 시인 그리고 성백선 신한은행 전주지점장 한 사람의 네팔 화가와 함께다.
직업이 다르고 나라가 달라도 사람이 오랜 시간을 걸으며 순백의 히말을 보고자 하는 마음 안에서 사색은 동질성을 갖는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히말이 내게 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벌써 아홉 차례 히말의 품속을 사색하며 걷는다.
이미 이 산행기를 쓰는 동안 두 차례의 한국 산악대원들의 조난사가 있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은 오래 기억될 사람들이다. 그러나 난 그들의 아픔 이면에는 일상의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단순히 취급될 일도 아니고 그들의 열정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그 어떤 도전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안타깝다. 물론 난 그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너무나 평범한 사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자기 일에 사명을 부여하고 산다. 결국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사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바라보며 나를 다시 보기도 한다. 난 목숨을 걸만큼 도전해온 일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다.
사실 기자가 처음 네팔을 찾고 나가라곳이라는 곳에서 맛을 보듯 처음으로 히말의 우듬지를 구경했을 때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왜? 등반가들은 저곳에서 죽어오기도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나를 안내했던 네팔인이 히말이 보인다고 말할 때 기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선에도 경계가 있어 구름 아래만 응시한 기자의 눈에는 히말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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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히말 계곡의 집터다. 저곳에 살던 산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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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와 산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 마치 주인을 안내하는 듯 야크가 길을 앞서 걷고 있다. | |
5분에서 10분 동안 한 방향을 가리키며 히말이 있다고 했지만 보지 못했다. 그리고 5분 후, 10분쯤 지난 후 히말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난 그 경이에 놀라 “나 알겠네. 왜 그들이 저 히말을 오르다 죽어 오는지, 나도 저 곳에 갈 수 있다면 죽어도 좋겠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9년이 지난 지금 난 목숨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할 것이라 믿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내 목숨은 바치고 싶지 않다.
사실 이미 아홉 차례 히말의 품을 걸은 경험으로 그 바닥은 느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은 모두 자기 의지가 향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등반의 욕심이나 새로운 루트 개척의 의미나 의지보다 평안한 삶이 우선시되기를 바란다.
조용히 걷고 걸으며 말이 줄어든다.
2600미터 2800미터 고도가 높아지며 호흡이 조금씩 힘들어진다. 그러나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말이 줄어들고 걸음걸이가 늦어진다. 때로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는 자리 그리고 놀랄 만큼 경이로운 풍경들을 각자 다른 의미와 다른 상징으로 기억에 담고 있다.
그렇게 걷는 길에 낯설게 다가오는 말 탄 사람이 쏜살처럼 달려간다. 그 길 멀리서 다시 트렉터가 달려오고 지프차가 달려온다. 그 뒤를 다시 야크 등에 짐을 실은 산사람이 걸어온다. 조금은 황망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낯선 풍경이다. 바람은 깨끗한 서늘을 안고 온몸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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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 산사람이 쏜살같이 3000미터 고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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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미터가 넘는 산마을에서 산사람들이 활쏘기 시합을 하고 있다. | |
예전에 네팔의 산길을 걸을 때도 나는 마치 오래된 옛날을 걷고 있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오늘 다시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 기자의 마음을 북돋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앞에서 활쏘기를 하는 청년들이 눈에 띤다. 그들은 한결같이 몽골리안들이었다. 그래서 마치 전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가가 말이라도 걸고 싶었고 그들이 마치 우리네 조상이 살아서 다시 고대를 재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으며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생각의 갈래가 내 마음의 길을 열며 내게로 다가온다. 겁 없이 내게 스며든다. 그리고 난 그것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걷는다. 모두가 히말의 품을 오랜 시간 걷다보면 성자의 걸음이나 성자의 마음의 결을 따르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그때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