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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3)

by 김형효 2012. 12. 29.

네팔의 산길은 걸으면 사원을 걷는 느낌이다

 

넋 놓고 길을 가다가 가끔은 지친 몸이 자각을 불러온다.
다시 오래된 왕국의 흔적이 눈앞에 나타난다. 단지 전설이 아닌 현실로 확인되는 옛이야기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 난 길에 한 노인이 돌부처처럼 쪼그려 앉아있다. 그가 하나의 자연이 되었거나 수많은 사람의 염원이 담긴 돌담에 새겨진 조각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고 조심스럽다. 무언가를 훔쳐내듯 사진 한 장을 찍는 내가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현실에서 느끼는 욕심의 사슬에 묶인 사람처럼 사진을 찍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옮겨 딛는다. 일행 모두가 그런 마음일 것이라 여기며 길을 걷는다.

모두가 말을 줄이는 시간에 사색은 더 깊은 강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깊어지고 깊어진다. 그리고 속없이 하늘을 본다. 저렇게 높은 하늘이 이렇게 높은 산에서도 살아있구나? 경이로움은 또 다른 경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속절 모르고 드넓은 시야에 오래된 흔적들이 손을 잡아끄는 느낌이다. 눈앞에서 산으로 오르는 블랙홀 같은 끌림 현상이 일어난다. 아래로 잠기는 의식이 아니라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의식적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사정없이 무너지는 의식으로 더 깊은 사색을 하게 된다. 자아는 무지에서 오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다. 처연히 펼쳐지는 눈 앞 풍경에 압도되다가 낯설게 다가선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2006년 기자가 넘어선 토롱파스(5416미터)넘어 마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돌들로 마을 입구에 돌담을 쌓았다. 기원이 담긴 돌들에는 부처님 상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불심이 깊은 산사람들이 돌담을 쌓았고 수많은 염원들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낯선 염원과 상관없이 우리는 축복받은 느낌이다.


그들의 많은 수가 갤룽(Ghalung, 스님)으로 사는 구릉 족들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갤룽(Ghalung, 스님)으로 사는 종족은 라마 족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자이며 스님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들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부처님을 향한 기원은 지워질 수 없는 표신 같은 것이다. 네팔의 산길은 부처님의 사원이라고 형언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평소 사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사원을 걷는 사람처럼 경건한 발걸음을 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산에서 만난 코가 큰 사람들도 낯설게 만나는 산사람들도 모두가 향기 나는 웃음을 주고받는다. 거리낌 없고 거절할 것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다. 그래서 웃음이 인간을 지배하는 네팔의 산을 세상 사람들이 찾아서 깃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히말을 넘어선 경이가 네팔의 산에는 아직 존재한다. 그렇게 저절로 깃들어 속물근성이 넘쳐난다는 현대문명의 곳간을 잠시 벗어나도 좋다. 무엇인가 채워갈 수 있는 여지로 가득 찬 네팔의 산이 아직도 많은 사람을 부르고 있다. 어쩌면 산사람들이 부처님의 자애로움을 머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동행한 네팔화가 람타다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마낭에서 온 여인이다. 동행이 되어준 그녀 그리고 일행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처럼 즐거운 대화가 산길을 더욱 즐겁게 했다.


사람이 깊은 산중을 오르고 내린다. 높고 낮은 산 구릉 어디를 가도 겁 없이 느껴지는 사람들도 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산이 되어있다. 그러니 문명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명이 질렸거나 찌든 사람들은 그들과 빨리 동화되기 쉽다. 그들이 이미 사람의 모습을 한 산이 되어 살고 있다. 그렇게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은 네팔이라는 자연사 박물관 혹은 도서관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바람도 사람을 데리고 가고 구름도 사람을 불러오는 곳이 네팔의 산과 히말라야다. 일행과 나누는 이야기가 사라진 후 만난 마낭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넉넉하고 품이 넓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동행이 되어 걷는 그들의 깊은 마음이 우리의 거친 그 모든 것을 다 품어주는 것만 같았다. 웃음과 향기로 가득 찬 산길을 걷는 풍요로움이 육신의 지친 발걸음에 힘을 돋운다. 해발 3200미터를 넘고 곧 3800미터를 넘는다.

그때 한마디 네팔어를 하지 못하는 성백선 형님이 그들과의 대화를 주도한다. 짧은 만남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활기를 보인 적이 없는 분인데 일행에 발걸음에 힘이 되는 웃음과 대화로 즐거움을 더해준다.

2600미터 전후의 각배니에서 3800미터 묵디낫까지 당일 행은 조금은 무리다. 왕복길이기 때문이다. 고도 1200미터를 처음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사람들의 유쾌한 웃음과 함께 한 발걸음은 모든 어려움을 잊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