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5)
산행중에 만난 산중사람들과 만남보다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곧 3800미터 묵디낫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미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고 있다.
일행은 과연 어떤 것들을 호흡하고 산행을 했을까? 무엇을 비웠고 무엇을 채웠을까? 공(空)한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깊은 영혼을 간직한 눈빛으로 여행자를 대하는 네팔 사람들이다. 보이지도 담기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같은 몸에 같은 마음으로 읽은, 히말라야 산중의 기억은 가득 담았을까? 한 걸음 한 걸음 그 어떤 순간보다 가고자 한 길에 다다른 후 되돌아서는 걸음은 언제나 평온함을 준다. 산중에서 바라본 평온과 내가 가져온 마음에 평온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사색은 사색의 꼬리를 붙들고 끝 모르고 이어진다. 현대사회의 질병은 신체의 질병보다 앞서 마음의 질병이 더 극심하다. 따지고 보면 그 마음의 질병의 근원은 질문이 없는 삶 때문은 아닐까? 삶의 매순간을 질주하듯 살다보면 사색도 질문도 다 불필요한 것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히말라야를 찾고 길고 긴 시간을 걷는 것은 사색의 끝없음, 그리고 그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다. 절로 깊어지는 사색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 살 수 있는 것도 그냥 쉽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와 문명은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은 아닐까? 주제넘은 생각을 해보게 된 것도 모두 히말라야가 날 품으며 건네준 선물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선물'하면 커피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선전되고 광고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 올레 길의 아름다움과 더 많은 길이 선전되고 광고되는데 왜, 히말라야의 산행에 대해서는 광고되지 않는 지 의아심도 갖는다. 길과 길의 사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인류의 역사적 흔적도 함께 우리의 마음을 붙들고 사색을 종용하는 곳이란 생각 때문이다. 느림을 강조하지만 서두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란 생각이다. 올라선 길, 묵디낫까지 4시간 30분 다시 되돌아서 내려오는 동안 3시간 합하여 7시간 30분이다. 우리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사색에 머물렀다. 아마도 한국에서 한 달을 살아도 가져보지 못한 사색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에도 일상이 내린 저주로 우리는 그런 사색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사색을 멈추라는 명(命)을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회, 조국, 그냥 자신에까지 소홀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과연 나만의 사색일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란 생각이다. 단발적인 사색이 아닌 깊고 차분하고 잡념 없는 사색을 말하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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