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수원에서 만난 네팔 시인을 카트만두에서 재회하다.

by 김형효 2011. 8. 4.

 

 상그릴라(SHANGRI-LA)의 땅, 네팔에서(22)

 

그는 크리스나 쁘라싸이(54세)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이다. 
기자의 안내로 화성을 함께 걷기도 하고 수원의 시인을 만나기도 했었다. 수원 시청을 방문한 적도 있고 이미 본지에 소개된 적도 있다. 기자가 그를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한국어 네팔어 번역 시집을 받아본 때문이다. 

그의 시에 나타난 네팔인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이 갖는 감성과 현재 네팔사람들의 고뇌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제목 없이 쓰여진 그의 시들은 짧은 생각들을 나열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생각을 멈추고 사색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만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으로부터 크리스나 쁘라싸이, 기자 쉬리옴 쉬레스타, 네팔의 한 출판사 사장

솔직히 말해서 그를 알고 지낸 것은 오래지만, 그와 내밀한 만남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네팔의 한 시인이고 자신을 잘 드러내려는 특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조금은 거리감을 두고 좋은 인상을 갖고 웃으며 볼 수 있었던 사람이다. 

말도 되고 서로 술잔을 기울인 횟수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어려움은 많았다. 모두가 활달한 그의 성격 탓일 수 있겠다. 물론 내게도 그런 부분이 많다. 

아무튼 아래 시는 네팔의 현실을 잘 반영한 시다. 얼마 전 두 차례 네팔의 저명한 시인 럭스미 쁘라싸다 데보코타의 저작에 나오는 두 주인공 무나, 마단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지금 네팔의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발걸음을 하는 현실이다. 아래 시는 그런 점에서 외국인이고 네팔을 이해하는 기자에게도 쓰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한다. 

크리스나 쁘라싸이의 시집이다.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된 네팔인의 첫번째 시집이 아닐까?


제목없이 쓰여진 시라서 편의상 숫자로 번호를 매겨 표시한다. 
1번 시도 그렇고, 2번 시도 모두 현재의 네팔인들의 현실을 참 잘 반영한 시인 듯하다. 물론 현대인들 일반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 듯도 하다. 

1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들이
낯선 나라로 멀리 떠났을 때
잎사귀 없는 나무처럼
내 나라의 봄은 시들었네. 

2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계속 지폐를 세었다. 그러나
훗날 그가 입은 수의 어디에도
주머니는 없었다.
-네팔 시인, 크리스나 쁘라싸이

위의 시(2)를 읽으며 기자는 곧 김준태 시인을 떠올렸다. 반사적으로 떠오른 시다. 굳이 기자가 시에 대해 평하거나 수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독자들이 비교해서 읽어보면 유사한 느낌과 감성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한 소설가의 책을 받았다. 그녀는 영문번역서를 내서 네팔 아카데미에서 작가들의 축하를 받았고 기자를 아는 지인이 초대해주어 함께 참석했다.

한국에서 공부한 텐징 쉐르파의 딸이다. 멋진 그의 시를 나중에 소개하고자 한다. 네팔의 자부가 될 시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김준태 시인, '감꽃' 

경제 활동에 인간의 삶이 저당 잡힌 듯한 경제구조 속의 세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나 비자본주의 할 것 없이 현대의 세계사의 한 측면이다.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며 살기보다 밥과 빵을 찾아 구걸하는 형국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쩌랴, 묘안이 없이 바라보는 세상이라도 사색 속에서나마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보자.

3
오, 약하디 약한 인간,
웃고 있는 사진보다
더 오래 살 수 없으니!

4
황제는 대대병력의 경호를 받지만,
가까운 인척에 의해 싹 쓸어 없어졌다.
온 가족이 통째로 뿌리 뽑히고 말았다.
끝내 누가 인간을 구할 수 있을까?
-네팔시인, 크리스나 쁘라싸이

네팔의 시인들과 한국의 시인들의 노력으로 빛을 본 시집이다. 그러나 많이 읽힌 시집은 아닌 듯하다. 기자는 네팔에서 한국문화센터를 열 생각이다. 그리고 거기 한국, 네팔 문학연구소를 열 계획도 하고 있다. 시인적 감성으로 네팔인들의 삶을 투영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의 심상을 네팔인들에게 전하고 싶다. 

가끔은 네팔 시인들에 대해, 또는 화가와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의 심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번 째로 이해해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