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단순하고, 소박하게, 좀 천천히, 아름답게 사는

by 김형효 2007. 9. 15.
단순하고, 소박하게, 좀 천천히, 아름답게 사는
마음은 벌써 귀농한 읽새 박정서
이민숙 기자     
웹 검색하다 발견한 나의 인연 지금은 귀농한 곳에서 잘 살고 있겠지......,

  "책임져요. 내 인생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작아」가 책임지란 말에요!"
  
  이크! 또 걸리고 말았다. 오늘은 이 소리 안 듣고 지나가나 했더니 결국 또 듣고 말았다. 사는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다가 이야기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그이는 늘 「작아」 보고 책임지란다.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살던 자신에게 자연을 좋아하게 하고, 귀농을 준비하게 만들었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액자 아저씨와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다.
  
  

△참 화끈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돌려가며 꾸며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가게인지, 길인지 조차 헷갈리는 세운상가. '액자 아저씨' 가게를 찾아가는 법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길을 나섰건만 얽히고 설킨 상가에서 또 길을 잃고 말았다. 반대편 골목길에서 멈추는 버스에서 내려 이리저리 방향감각을 되살려 보았건만 역시나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맛있는 곱창에 소주 한 잔 사 줄게요. 꼭 와요."
  
  동대문에서 맛있는 곱창을 사주겠다는 이 이야기도 「작아」가 책임지라는 말만큼이나 수없이 들었다. 수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곱창일까. 꼭 가겠노라는 약속만 번번이 하다가 오늘은 정말 곱창을 얻어먹는 '뜻깊은' 날인데 길을 잃고 말았으니…. 물건과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곳, 예전 기억을 더듬어 청계천 방향으로 무작정 걷다보니 '현대액자' 박정서(37세)씨의 가게가 수많은 가게 중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한 수영복 차림의 외국 여배우 사진을 액자에다 넣는 작업에 열중이었다. 여기도 여인, 저기도 여인, 늘씬한 미녀들이 다 그이의 애인이란다. 가게 벽면과 안, 바깥도 모자라 길 건너편에도 가득한 액자 더미를 비집고 앉았다.
  
  벌써 세 번째 방문, 가만, 「작아」와 박정서 씨가 어쩌다가 이렇게 인연이 깊어졌지? 따뜻한 녹차 잔을 어루만지며 더듬더듬 서로 옛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때 양복을 잘 차려입은 김형효 씨가 들어왔다. "맞다, 김형효 씨 덕분이었지." 거참 묘한 인연도 다 있다. 때맞춰 정확하게 나타나다니…,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군, 함께 껄껄 웃었다. 보험영업을 새로 시작했다는 김형효 씨, 만나는 사람마다 「작아」를 소개하고 책을 쥐어주면서 그 빼어난 말솜씨로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마당발 그이는 신수가 더 훤해졌다.
  
  삼 년 전인가, 시집을 내고 시화전을 준비하던 시인 김형효 씨가 세운상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박정서 씨를 만나 액자 주문을 하면서 읽고있던 「작아」를 건네준 것이 첫 인연이었다. 마침 「작아」에서도 박영 화백의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액자작업이 필요해서 도움을 받았고, 그 뒤 박정서 씨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에게 구독선물을 해 주었는가 하면, 함께 술잔도 기울이고, 액자가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그이를 애타게 찾곤 했다.
  
  "장터 소식지가 아직 안 왔어요. 올 때 소식지 하나 갖다 줘요. 수고!"
  
  녹색연합 회원이 되어 책과 장터 소식지를 따로 받는 그이, 소식지가 이번엔 좀 늦어서 기다린 모양이었다. 액자 제작을 가르쳐 주고 일손이 바쁠 때 도와주실 분을 찾는다고 등록한 그이는 장터에서 활약도 대단하다. 무료로 만들어준 액자는 이미 수를 헤아릴 수도 없고, 덕분에 그이는 전국 곳곳의 사람들과 만나 귀농과 농사정보도 얻었다. 지난달에는 장애인들이 사는 곳에다 살림살이를 한 트럭으로 실어 옮겨준 적도 있는데 늘 봉사를 하고 싶었노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왜 저렇게 많이 만들까?
  
  고층빌딩 사이로 어김없이 해는 저물고,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 왔다. 작은 액자라도 함께 옮기면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 거들었더니 말 그대로 가만 서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액자를 옮기는 법칙과 질서가 있어서 그이가 몇 번 움직이고 나니 그 많던 액자가 몽땅 가게 안으로 얌전히 들어가 앉았다. 전문가의 손길, 이래서 전문가는 다르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군.
  
  당면과 파, 야채에 뒤섞여 곱창이 자글자글 익으면서 노릇노릇 기름이 적당히 배어 나왔다. 등산용품과 옷 수선점, 해장국, 곱창집이 늘어선 동대문도 그이가 머무는 세운상가만큼이나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몸뚱이 하나가 전재산인 사람들, 몸을 부지런히 놀려야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서민들의 세상 그 중심에 앉았다. 이 액자작업을 내년까지만 하고 귀농할 생각이라는 박정서 씨. 채우는 족족 술잔을 시원하게 비운다. 먹고 사는 일에 꼭 필요한 일만 하기에도 바쁜 세상에,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액자는 그만 만들 생각이란다.
  
  
△새로 길이 나면서 손님은 부쩍 늘었지만 할 일은 태산같은 액자 작업. 오늘은 유명 화가의 복사한 작품을 멋진 액자에 넣는 일이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십 년 전 즈음 그이는 오디오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값비싼 기계를 그냥 놀릴 수 없으니 밤이고 낮이고 돌려서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오디오가 만들어지는데 어느 날 문득 '왜 저렇게 많이 만들까? 지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필요한 만큼만 만들지 않고 많이 만들어서 팔고 남으면 그냥 버리는 이 자본주의 구조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고 틈틈이 강연도 찾아 들으며 생산과 소비에 얽힌 실타래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이가 들었던 강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우리는 열탕 속 개구리입니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개구리가 뛰어들면 뜨겁다고 펄쩍펄쩍 뛰지만 처음엔 차갑다가 서서히 데워지면 뜨겁다고 느끼지 못한 채 앉아 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우리 모습이 바로 열탕속 개구리와 같습니다. 환경이 천천히, 조금씩조금씩 나빠지니 지금 우리는 도시가 얼마나 나쁜지 느끼지 못한 채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귀농학교 이병철 님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이 복잡하고 문제 많은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사는 길이요, 이 복잡한 곳에서 나 하나라도 빠져 주는 것이 도움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귀농 준비를 더 서둘렀다. 내년이면 녹색대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경남 함양 생태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아버지께서 먼저 내려가셔서 임대한 논에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가을이면 땀흘려 농사지은 쌀을 먹을 수 있다니 가만 앉아서 생각만 해도 기쁘단다. 마음이 벌써 함양에 가 있어서 그런지 액자 가게에 손님이 부쩍 줄었다.
  
  한다면 바로 한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두 번째로 액자가게에 들렀을 때 박정서 씨가 매운탕을 사준 적이 있었다. 어른 팔뚝보다 굵은 물고기가 펄쩍펄쩍 물을 튀기는 수족관 옆에서 매운탕을 안주로 소주를 들이키면서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기에 전국귀농운동본부와 먼저 귀농한 괴산 김용달 씨를 소개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아직 쓴 소주 여운이 남아 속이 알딸딸한데 박정서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 강좌를 신청했고, 괴산 김용달 씨 댁에 방문하기로 약속도 잡았단다. '한다면 한다'가 아니라 그이는 '한다면 바로 한다'. 참 화끈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돌려가며 꾸며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귀농에 관해서 심각하게 머리 싸매고 고심하거나 이리재고 저리재고 망설이지 않는 그이의 시원시원함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천성이기도 하지만 작년, 딸 서연이를 낳으면서 느낀 점이 많았던 까닭도 있다.
  
  보다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고 기르기 위해 자료를 찾고,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들으며 많은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으러 간 병원은 산모에게 분만촉진제와 항생제 주사를 놓으려고 하고 제대로 진통도 하지 않았는데 수술을 권했다. 폭력 없는 출산을 원했던 그이는 의사와 긴 줄다리기 끝에 어렵게 아이를 얻었는데 서연이는 심한 아토피성 피부염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자연요법을 찾게 되었고,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건강한 농사를 지으며 아이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뭘 먹고 살든 잘 살 자신이 있는 그이지만 막상 귀농 계획이 하나하나 현실로 드러나자 제일 걱정되는 것이 교육과 의료였다. 아내와 함께 의논한 것은 부모와 동네어른들이 선생님이 되는 가정학습, 녹색대학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분들이 사회경험도 많고 모두 존경할만한 분이라 교육 걱정은 덜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였다. 강연을 듣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서연이가 열이 막 올라 자지러지게 울 때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당황스러웠다. 자식의 열도 내릴 수 없다니 헛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 그이는 민간요법과 자연요법을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배워서 귀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 모양에 딱 어울리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 박정서 씨의 또다른 재산인 셈. ⓒ작은것이 아름답다

 그이의 손전화가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얼굴 어느 곳 하나 성한 곳 없이 진물이 나오던 서연이를 풍욕과 냉온욕으로 다스려 이제 다 나았는가 싶었는데 며칠 전부터 또 진물이 나와 아내는 병원을 가야할까 망설이고 있단다. 그이는 괜찮다고 더 열심히 해 보자고 다독였다. 귀농도 그렇고, 아이 치료도 그렇고 자신의 이야기라면 묵묵히 따라주는 아내가 무척 고맙기만 하다.
  
  회사 직원 중에서 가장 까다롭고 새침해서 동료들조차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한 여인을 그이 표현대로 어렵게어렵게 꼬셔서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가진 것 없고 나이도 여덟 살이나 많은 그이를 장모님이 심하게 반대하셨다. 결국 집으로 찾아가 딸을 달라고 벌렁 드러누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경찰이 몰려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범죄자 신세가 된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장가 하나는 참 잘 간 것 같다. 그이가 메고 출근하는 가방은 두 개다. 장사하면서 필요한 것을 넣는 작은 가방과 카메라 가방이다. 웬 카메라 가방이냐고, 사진 배우냐고 했더니 도시락이 들어 있단다. 아내가 따끈따끈하게 싸준 도시락을 넣기에 안성맞춤이라 들고 다니는데 남들이 가끔 '작가선생'으로 본단다.
  
  내년에 귀농하면 딱 먹고 살 만큼만 농사지어서 아주 소박하게 살고 싶다. 가끔 찾아오는 귀한 손님들과 나눌 수 있는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도 없이 살다가 가고 싶지만 아이만큼은 힘 닿는 데까지 낳고 싶다. 아이 키우는 재미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니 직접 낳아서 키워보란다. 둘째 아이를 가질 때는 단식하고,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채식도 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뒤에 건강한 아이를 낳을 계획이다. 그리고 장사하느라 날마다 실랑이를 벌이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싸우고 살았는데 이제는 모나지 않게 살고 싶다. 흐르는 물에, 흐르는 세월에 닳아 둥글둥글해진 조약돌처럼 둥글게 살고 싶다.
  
  전생에 얼마나 빚을 졌길래
  
  "「작아」가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아세요? 힘들고 어려워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주세요. 힘들게 환경운동하는 녹색연합 식구들에게 다른 것 못해 주어도 곱창하고 소주 한 잔은 사줄 테니까 언제라도 전화주세요."
  
  함양에서 곧 새집을 지을 계획인데 방 한 칸을 더 지어서 항상 비워 둘 테니 아무 때고 와서 지친 몸 쉬어 가란다. 소주병이 하나둘 자리에 눕고 두 번째 곱창이 익어가자 그이의 얼굴도 보기 좋게 달아올랐다. 잠시 전생이야기를 나눴다. 자식 때문에 이렇게 애를 끓이고 힘이 들다가도 아기얼굴만 보면 마음이 환해지니 전생에 큰 빚을 진 사람이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이도 우리에게 전생에 빚을 진 모양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꾸 베풀어주고, 챙겨 주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자꾸 책임지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위 내용은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2년 6월호 창간 여섯돌 기념호에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