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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히말라야 트레킹 안내

[트래블]네팔 트레킹-신의 거처 가까이 ‘인간의 길’

by 김형효 2007. 9. 20.
[트래블]네팔 트레킹-신의 거처 가까이 ‘인간의 길’
입력: 2007년 09월 20일 09:55:25
네팔을 처음 찾았을 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히말라야도 네팔 사람도 아니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네팔의 국토였다. 그 아름다움은 거대한 조형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수많은 네팔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얻어낸 거대한 조각품과 같은 것이었다. 네팔 사람의 희로애락이 신표(信標)처럼 웅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2004년 6월 이후로 지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9개월 동안 네팔에 머물렀다. 네팔(nepal)은 그 말 뜻 자체가 힌두교 성자를 칭하는 리시무니의 한 사람인 네(Ne)라는 사람의 이름과 보살핀다는 뜻의 빨뽀선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래한 팔(Pal)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 할 것 같지 않은 히말라야의 눈덮인 봉우리.

네팔에서 산이건 사람이건 간에 이런 신성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히말은 ‘눈의 거처’ 혹은 ‘신의 거처’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눈을 덮어쓴 만년설의 산줄기들을 히말라야라고 하는 것이다. 보통 산들은 뻐하드, 떠라이 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에베레스트는 네팔 사람들에게는 고대로부터 사가르마타라고 불려왔다. 바다라는 뜻의 ‘사가르’와 어머니 머리 최고란 뜻의 ‘마타’가 합쳐진 말이다. 하늘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눈 쌓인 높은 산이라고 해서 ‘자모롱모’라 부르기도 하는데 자모롱모는 티베트어에서 유래했다.

안나푸르나라는 뜻은 버펄로 머리 위에 많은 눈이 쌓인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이라는 뜻 외에도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거네스 히말은 코끼리 모양을 한 산, 마나까마나 히말은 마음으로부터의 기원이라는 의미다.

히말라야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경작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나의 가이드의 이름은 다와 셰르파였다. 사람들이 짐꾼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셰르파는 성씨다. 짐꾼이란 말은 버리야다. 다와는 달(Moon)이란 뜻이다. 도보 순례 중 만난 소녀는 꺼비타였는데 꺼비타는 시라는 뜻이다. 신성한 히말라야 산기슭에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도 신과 천지 자연에 대한 이름들을 붙여온 것이다. 여행 중 머물렀던 안나푸르나 기슭의 산장 줄루피크의 ‘풀 마야’는 꽃사랑이란 의미다. 네팔인 친구의 이름 디네스는 하루를 관장하는 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아까스는 하늘이라는 뜻인데 많은 네팔 사람들이 이 이름을 쓴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열 마리 곰’, ‘새 걷어차기’,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등과 같은 이름을 쓰는 인디언들과 다름없이 네팔인들 또한 자연적 서정의 순수를 그대로 안고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가 하나의 신성(神聖)처럼 나를 자극했고 끌어당겼다. 그들의 인생은 고단했지만, 자기장에 끌림 현상처럼 그들의 일상에 나도 모르게 휘말려들고 있었다. 그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방랑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가까워졌다. 네팔을 처음 찾았을 때, 처음 대면한 네팔의 어린이들이 내가 가르쳐준 아리랑을 곧잘 따라 부를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멀리 비행기 창에서 바라다보이던 산꼭대기 집들이 허름한 몰골로 살붙이 없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비탈진 산기슭과 오롯이 솟은 산등성이에 솟아난 철근들을 보면서 폐허를 연상했다. 그렇게 조성된 집과 집들이 절벽처럼 위태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낯선 고대 유적을 찾아오는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했다. 또한 동남아를 휘돌다 다가선 네팔을 가로지른 강줄기들도 그들의 삶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의 선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지상에 선 순간, 허상세계처럼 현실의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특히 안나푸르나 산기슭을 걸을 때는 더했다. 자기 몸무게보다 더해 보이는 돌덩이를 망치를 이용해 쪼개고 있는 어린 아이의 감당하기 힘든 노동을 보았을 때는 더 할 수 없는 허상임을 믿기로 했다.

우리네 미소와 닮은 네팔 여인의 미소.
그들의 심성 안에는 똬리 틀 듯이 자리 잡고 있는 희망의 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이 붙든 신이 바로 희망이다. 힌두 신화 ‘라마야나’에서처럼 수수만년 왕의 자리에서 통치자의 권위를 지키다가 통치력이 한계에 미칠 때 스스로 왕위를 물려주고 고행(Taphas)을 자청하는 수행 길을 떠난다. 그런 신화적 전통을 이어 받은 그들이라서 그런 것인가? 그들은 흔들림 없이 고행을 이겨내는 수행자처럼 살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믿는 신의 힘이라면 믿어주어도 되리라. 그것을 확인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여전히 하늘을 쳐들고 있는 산과 밭과 논들은 틀림없이 거대한 신의 성전(聖殿)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자유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나 또한 권좌에서 물러난 왕이라도 된 것처럼 한 번쯤은 고행을 이겨내는 수행자처럼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깨를 걸어 보고자 한다. 그들의 무한한 사랑을 자유롭게 받아 안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