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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하나님은 일곱색깔 무지개빛이다.

by 김형효 2007. 12. 26.
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어디로 갔나?
하나님은 정의로운 평화를 사랑하시는가?
 
김형효
 
어린 시절 동화 속 같은 하나님은 이런 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박애주의자다. 그것은 진리인가? 허상인가? 나는 진리라 믿었었는데, 그것은 교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농촌에서 살던 어린이로서 대단한 대상을 알게 된 계기였다.
 
아마도 그 시절 대부분의 농촌 지역이 다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살던 곳에도 면 이름 다음에 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던 교회가 있었다.
 
면소재지에나 가야 존재하던 그 시절 교회의 이미지는 존엄하고 근엄했었던 것이다. 그저 모계의 종교인 불교를 가깝게 여기며 살다가 내가 처음으로 중앙교회에 가게 된 것은 지금 내 기억으로는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것은 신에 가르침을 이해했다기 보다 내가 좋아하던 여자 친구가 중앙교회에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친척 여동생이 그 교회를 나가고 있었으며 그 여동생과 내가 좋아했던 여자 친구가 친한 사이여서 그곳에 가면 그를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 그 말씀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박애에 바탕을 둔 말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여지껏 내 마음 속에 면소재지의 중앙교회는 어린 시절의 동화 속 같다. 그렇게 평화롭게 정감이 넘치는 공간으로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말씀이 끝나고 모자처럼 생긴 헌금바구니에 놀라고 부담스러워 그 좋은 말씀을 외면하고 교회를 멀리했던 아니 멀리 했다기 보다 가까이 하지 못한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부담도 지우고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그 시절의 하나님은 박애를 표방한 동화 속의 하나님이시다.
 
 20대, 나의 하나님은 속박의 하나님이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에 배웠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보았다. 특별히 종교적 관념이 결여된 시골 촌뜨기로서 신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별히 신을 찾을 만큼 사색이 깊었던 것도 아니다. 모태의 신앙인 불교를 가깝게 접하고 살면서도 부처님과 하나님을 특별히 구분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은 죽었던지 없었던지 내게는 그런 상태였던 듯하다. 오로지 나에게 먹거리를 풍성하게 해주시기 위해 밤낮을 고생하신 부모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었고 유일한 부처님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었던 신 중에 엄연한 신의 존재가 하나님이었고 부처님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성장해서 중학교,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나갈 때 마다 내게 하나님은 부담스러워졌다.
 
세상의 문을 열고 한발짝 한발짝 세상속으로 발길을 옮겨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은 두려운 존재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행스런 것은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오롯이 어린 시절의 모습의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서다.

하나님 경력 5년, 그 후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은 순전히 나의 요구에 의해서다. 철저히 이기적인 나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을 찾았다. 매사에 정적인 그러면서 애달픈 유년시절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기댈 곳이 필요했었다.
 
그 시절 나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샘솟는 기쁨"까지는 아니라도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내게 위안이 될 듯 했다.
 
지금 그때를 기억하기에는 헌금에 대한 부담보다는 정신적 위안과 목사님의 교훈적인 말씀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하나님을 경험한 유일한 선물은 교회에서의 표현대로그런 말씀의 충만함이었나보다.
 
하지만, 그때부터 실천력의 결여에서 오는 갈등이 너무도 자신을 힘들게 했다. 잘못을 행한 나란 존재 뒤에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용서하신다는 이야기가 내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철학적인 관념이었던 듯하다.
 
아마도 지금, 5년 동안 교회에 다녔던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머물게 된 주 요인,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회계하면 용서하신다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지 않으셔서 구원하지 않으셨나보다.
 
과연 하나님은 용서만 하시는가?
그렇다면 왜 용서 하시는가?
 
정의롭지 못한 법을 법이라 한 소크라테스를 거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말을 노망든 노인의 망령된 말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는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살면서 그것은 그처럼 맹목을 추구하는 자들의 필요에 의한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이다.
 
용서만 하시는 하나님도 이해하지 못하며 전두환을 용서하고 부시를 용서하는 하나님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한 하나님, 왜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머무시는가?
 
내가 하나님 경력 5년을 숨기고 아니 특별히 숨기지는 않았다. 대학<참고로 필자는 방송대학을 마쳤다>에 다닐 때 동아리에서 엠티를 가거나 주요 행사가 있을 때 이상하게 생각했던 하나님이다.
 
그것도 필자가 늦깍이 26세의 나이에 학교에 다니던 방송대 초기 그러니까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95년 이전까지는 그런 현상이 없어서 더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 일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갑자기 엠티에 빠지거나 주요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가 교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란 소리를 듣게 되면서 부터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어느때나 내 안에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유독 일요일에는 교회 안에만 계시는가? 참 이상한 하나님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간혹 주요 임원 중에 그런 이유로 엠티나 주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던 것을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때부터 내게 하나님의 속박의 하나님임을 사실은 하나님의 잘못이라기 보다 내 생각에는 그 교회 목회자의 잘못 혹은 속박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지금도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잘못이 아닌 목회자의 잘못된 해석과 그 오류가 수많은 비신앙인에게 속박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지금, 나의 하나님은 일곱색깔 무지개다.
 
 내가 볼 때, 한국의 교회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은 일곱색깔 무지개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주고 있음을 그들이 부인한다거나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나서서 굳이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의 주장에 반하는 즉 하나님을 옹호한답시고 하나님을 신성시한다면서 맹목을 강요하는 주장을 하면서 살기를 띠는 목회자의 모습을 볼 때, 나는 사탄의 얼굴이 저렇겠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꿈 속 같고, 동화 속 같은 어린 시절의 박애주의 하나님은 어디로 간 것일까? 믿거나 믿지 않거나, 교회에 문을 넘었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것 없이 존경하던 숫자에 의미와 상관없이 존엄하던 그런 하나님이 나의 어린 시절에 하나님이다.
 
지금 나에게 그런 하나님은 돋보기 그것도 성능 좋은 돋보기 들고 찾아야만 가능한 대한민국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어쩌면 그것이 교회의 위기가 아닐까?
 
나는교회 신자가 아니다. 크리스찬도 예수쟁이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종교에 대해 이 시대 아니 어느 시대에라도 힘없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고 뒷동산에 고목나무처럼 위안을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하나님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다. 이념성에서도 정치성에서도 사실 하나님을 말하면서 정치성이나 이념성을 말하게 되리라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불경스러움이다.
 
크리스찬이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그들의 손잡아주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갈라진 것은 손잡게 하는 원수를 원수로만 보지 않고 박애로서 품어주는 그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나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건전한 종교가 건전한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살기가 가득한 얼굴의 목회자의 모습 그리고 그를 추종하거나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볼 때 거룩하신 하나님은 없다.
 
민족은 하나다. 이것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보통명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외쳐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요. 우리 민족의 처지다. 그런데 거기 종교까지 나서서 외치고 있는 나라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인가? 우리가 이스라엘 야곱에 땅을 딛고 이 대지를 걸어야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신단 말인가?
 
내 가슴 속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시며 말씀 하시건데 "너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에 하나님은 너를 평화케 하리라!"
 
다름아닌 같은 종족인 민족은 하나라고 외치는 것을 두고서도 우리의 하나님을 아수라백작의 얼굴로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참으로 무자비한 크리스찬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실까?
 
필자는 특정 교회에 나가 예배에 함께 참석한 적이 있다. 명동의 <ㅎ>교회다. 그곳에서 나는 평화를 얻는다. 그곳에서는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이며,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 서 계시는 하나님이 있다.
 
그곳의 목회자나 그곳의 신도들에게서 형제애를 느끼는 것은 내게 있어서 여간 큰 행복이 아니다. 내가 멀리 네팔을 여행 중에 그곳 교회의 목사님에 이메일을 받았다.
 
처음 참석했던 나그네 신도, 아니 한 푼의 헌금도 한 적 없고 그들의 하나님 정신이 너무도 좋아 홀로 충만했던 내게 그 이메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신 같은 느낌이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이야기들이 있다.  요즘 들어 그 말은 모든 교회나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한 이야기란 생각이다. 박애를 떠나 서로를 믿는 사회 분위기 헐벗은 동족을 사랑으로 감싸안는 정신은 평화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때, 하나님은 과연 그들에게 칼을 들라 하겠는가?
 
나는 하나님 신도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동화 속 어린 시절의 나의 하나님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북녘의 동포와 체제에 대해 독설과 험상궂은 말로 칼질을 하는 그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설하시리라 믿는다.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외친 시인이 있다.
 
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을 보았다라는 시인은 어떤 하나님을 보았을까? 간증을 통한 하느님이거나 하나님이 아니다.  
 
김준태 시인이 보았다는 하느님은 휴머니티가 극에 달한 인간을 통해서다. 우리가 현실문제에 벗어나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휴머니티란 기독교적 윤리에서도 벗어남 없는 진리일 것 같다.
 
시인은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중략…/아아 통곡뿐인 남도의/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중에서) 시인 김준태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그가 ‘영원한 청춘의 도시’라고 노래했던 광주는 비탄에 잠겨 있을 때 수많은 하나님의 사제들은 침묵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분열없는 민족과 인간이 살아가는 나라를 위해 기독교적 윤리관에서 보아도 벗어남 없는 길에 모든 기독교인이 함께 나서야 하리라 믿는다. 그것은 우리의 이념을 하나님,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기를 바라는 바다.
 
하나님의 사제가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거나 그 길에 나서 인간과 인간을 폭압이나 폭력에 복무하게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국가와 민족을 분열적 상황으로 내몰아서도 안된다.
 
기독교 원리주의란 그런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미국의 부시나 네온콘들 중에 상당수가 기독교 원리주의자라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교 파괴주의자란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순교적인 박애의 상징으로서 존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크리스찬은 원리적 입장에 하나님 박애를 지키는 하나님 정신을 회복하길 바란다.   
 
그것이 동화처럼 기억하는 하나님을 지키는 길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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