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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국도 24호선 천리길을 걷다. 12박 13일의 기록

[스크랩] 국도24호선 도보순례! 팔일째날...,

by 김형효 2007. 12. 30.

안의면에서 어렵게 숙소를 정했다.

두 곳 뿐인 모텔 중에서 한 군데는 이미 손님이 다 들어찼다.

 

오늘 아침도 어제 축구경기를 보느라 늦잠을 잤다.

아침 10시에 길을 나섰으니, 길 떠나 여행자의 신분을 망각한 듯하다.

모텔을 빠져나와 멀지 않은 곳에 안의면 향교가 있었다.

면소재지 외곽을 돌며 안의면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안의면 외곽을 두르고 있는 산의 형세로 보아

아주 큰 도시가 자리 잡아도 좋을 법하다는 생각을 한다.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줄기와 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걸까?

 

어쩌면 사람의 삶은 강물이 흐르듯

산에 기대어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안의면 외곽도로인 24번 국도는 안의면 사람들의 주요 교통로이다.

외곽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유소에 폐가전제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주유소 근처에 숙박시설도 함께 운영되었던 듯한데,

지금은 을씨년스럽게도 폐가전제품만 가득하고 주변에는 인적이 없다.



산의 지형을 따라 고갯길을 걸었다.

산바람이 겨울을 실감나게 했다.

하지만 모처럼 밝은 햇살은 나그네의 등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도

바람결에 다독여주는 듯도 하다.

고갯길을 넘어 내리막길이다.


함양군 안의면에서 거창군 마리면에 들어선 것이다.

걸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도24호선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면단위의 중심을 가로질러 가던 길들이

이제는 면 외곽을 돌아가며 속도감을 더한 도로가 된 것이다.

길을 걸으며 계속 생각했었다.


국도가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구나!

그러나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길과 사람이 가깝고 멀고에는 여러 상황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렇듯 속도감을 더하는 국도24호선이라면,

지역적인 소통의 빠르기를 더해서

영호남의 물적교류, 인적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점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심리적인 거리도 가깝게 하리라는 생각이다.

 

한참 길을 걸어 내리막길이다.

멀리 빈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를 보았다.

빈 들판에 허수아비가 외로운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그 허수아비가 외로움을 달래주기라도 할 듯한 모습이다.

외로운 사람이 외로움을 볼 수 있다던가?

어느새 나도 모를 외로움이 나를 감싸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빈 들판에 허수아비가 애처롭기만하다.

참 엉뚱맞다.


 

아마도 88고속도로 이후 국도24호선의 이용자는 많이 줄어들었으리라.

국도주변에 빈집들과 빈 상점들이 길가는 여행자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저 빈집의 주인과 빈 상점의 주인은 지금 어느 곳에서 낙엽처럼 떠돌까?

아니면 저렇듯 공허롭게 비어버린 집을 두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단 말인가?

 

마리면을 지나며 마리삼거리에서 찐빵에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산과 산이 마주잡고 선 듯이 손을 뻗어 산과 산이 부여잡을 듯 가깝다.

계곡의 넓이만큼 거리를 유지한 산들 사이로 24호선 길은 쭈욱 이어졌다.

안의면에서 마리구간, 마리에서 거창 등 여러 구간에서 공사중이었다.

특히 거창 구간에서는 터널공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안의면에서 출발해 14KM를 걸어 거창에 도착했다.

요즘 한창 AI바이러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계탕 집을 찾았다.

식사를 하면서 내내 이상했다.

한창 점심 식사 시간인데 식사중인 사람이 나그네 혼자뿐이다.

꽤 규모 있는 식당이었는데, 하도 이상해서 왜 이렇게 손님이 없답니까?

주인의 입을 통해 AI바이러스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이해했다.



거창읍 외곽을 돌아나가는 길을 따라간다.

거창사건이라는 이정표가 시대의 질곡을 겪었던 거창을 다시 이해하게 한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어느 곳에도 있는 아픔의 흔적들이지만,

여전히 내 발길이 머문 곳에 아픔을 생각하며 가슴 시리다.

읍내에서 20KM나 떨어져 있는 사건현장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오늘은 도보순례의 방법을 바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도24호선의 의미를 더하는 것은 발로 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라,

24호선의 주변에 사적인 현장이나 주요관광지를 둘러보고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며 길을 걷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의 길가기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효과적인 길가기가 필요할 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도보와 버스를 이용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

 

거창읍 끝자락에서 인터넷방을 찾았다.

다음 행선지 정보를 알아볼 요량이다.

낯선 여행지라서 어느 곳에 가야 숙소를 정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며칠간 경험한 노하우로 이제 머물 곳을 앞서 정하고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국도정보는 검색을 통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는 수없이 거창군 문화관광과를 검색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길을 나섰다.


거창읍 외곽 논바닥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서 무엇 하는가 물었다.

읍내에 있는 청남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실습중이란다.

논두렁가를 흐르는 실개천에서 한 아이가 미꾸라지를 발견한 모양이다.

야! 미꾸라지다. 미꾸라지...,

도농복합지역인 이곳에 아이들이

어쩌면 도시의 아이들 못지않은 혜택을 보고 있는 것 중 하나를 발견한 듯하다.

거창읍을 빠져나오는 길가에도 어김없이 한미FTA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거창읍을 빠져나오며 남하면이 나왔다.

남하면 소재지는 정말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면소재지보다도 작았다.

일주일 동안 걸어오면서 보았던 풍경들 중에

작은 읍이나 면소재지라도 우체국 택배물건들은 가득했다는 것이다.

길 떠난 자식들을 위해 애지중지 마련한 농산물이 대부분이리라.


길 가에 남새밭에서 서리 맞은 배추를 뽑으며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시는 할머니가 보였다.

앞 산에 산그늘이 내려오고 있다.

저 멀리 반대편 산 위로 흰 낮 반달이

흰머리를 한 할머니를 바라보듯 떠오른다.

 

남하면을 걸으며 계속 이어지는 강둑 길,

강둑으로 쭈욱 이어지는 남하면을 보면서

이곳이 안빈낙도하기 좋은 산세를 가졌구나 생각해본다.

사람의 삶도 저렇듯 산세처럼 지세처럼 저 흐르는 강물처럼

무언가를 보여주는 품세를 갖고 있으려니...,

생각이 여기 미치자...,

내 마음 켜켜이 날 둘러싼 것들로 생각의 끈이 이어진다.

조심조심..., 살얼음 같은 것들이 날 부여잡는다.

그때 거창 방면을 다시한번 둘러본다.

멀리 거창을 둘러싼 아름다운 산들의 품세가 눈에 들어온다.

안녕이다.

석우교를 지나고 석양노을이 독기를 뺀 채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도 저렇듯 나이가 들며

자기 나이테에 맞게 굵고 선명한 나이테를 간직해야하리.

벼이삭이 익어 낱알로 실하게 맺히듯이 사람도 열정을 다하여 살아낸 후,

저 노을처럼 온종일 자신의 열정을 다한 후,

자신을 불태워 온 세상을 적시며 하루의 독기를 다 빼고 저물지 않는가?

그래 그렇게 저물며 함께 세상을 논할 친구는 어디 없는가?

저처럼 느낌으로 가득한 채 저물어갈 세상을 살아낼 친구는 어디 없는가?

아니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저런 노을의 느낌을 이어주고 건네주고 갈 길은 어디란 말인가?


멀리서 두 사람이 내리막길을 걸어오고 나는 오르막길을 걸어간다.

가까이 다가서자 등산객이겠거니 생각하고 인사를 건넸다.

뜻밖에도 그들은 대구에서 광주까지 도보순례중이란다.

나처럼 특정한 호선을 정하고 가는 길이 아니라

가까운 길을 선택해서 간다고 했다.

그들은 대구에서 전날 출발해서 75KM를 걸어왔다고 했다.

사람의 삶에는 이런 인연도 있구나?

그 중 한 명이 날 알아본다.

작년 가을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렸던 시노래 콘서트 때 보았다는 것이다.

내 시에 곡이 붙여져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가 있었다.

물론 전부가 나의 시는 아니었고, 박노해, 이외수, 류시화 등

8명이었는지 10명이었는지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시인들에 시에 진우라는 대구에 사는 가수가 곡을 붙여 콘서트를 열었다.

 

그는 방송국 PD라고 했다.

그와 그의 일행은 영남대 국문과를 함께 다녔는데,

그는 광주가 집이고 대구의 친구와 함께 도보순례 중이라고 했다.

즐거운 만남이었고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으나 서로 갈 길이 달랐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좋은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그 숱한 발걸음을 생각하면 더없이 귀중한 만남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길로 걸어왔건만

그 낯선 초행의 길가에서 그 어떤 인연의 끈이 우릴 만나도록 했을까?

우리는 서로 안녕을 빌며...,

 

이미 어두워진 밤 길을 재촉했다.

나는 늦은 밤길을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걸어야했다.

한참 길을 걷다가 거친 걸음을 끝내고 싶었다.

어둔 산중 밤길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욕심이다.

때마침 지나던 버스가 있었고 나는 곧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40KM를 넘게 걸었다.

또한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8KM 단축한 셈이다.


출처 : 흰머리산하늘연못(http://www.sisarang.com)님의 플래
글쓴이 : 흰머리산하늘연못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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