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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안나푸르나 12박 13일의 기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9)

by 김형효 2008. 3. 25.
- 늦은 밤 안나푸르나 산 아래 검문소에서 이방인과 검문 경찰의 대화

바람의 세기가 만만치 않게 거칠어질 때면 내일과 그리고 토롱-라 파스에 대한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수많은 산들의 조형 앞에서  절로 엄숙해지면서 긴장한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무심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많다. 
무작정 걸음에 집중하며 걷는다. 종아리에 알이 박히고 발가락에는 물집이 잡혔지만, 지금은 익숙한 일상이다. 벌써 며칠 동안 익숙한 일인 것이다. 첫날부터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다. 

야크 호텔(YAK HOTEL)에서 저녁을 먹고 난 풍경이다. 
프랑스인 친구가 오래된 영국의 종교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하였다. 다른 프랑스인 셋은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거기 가이드 한 사람은 연신 콧물을 훌쩍거리며 앉아 있다. 독일인 여섯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책없이 웃으며 떠들고 있다. 

네팔인 가이드와 포터들은 온기를 찾고 있다. 
자세히 바라보면 외국인들만 자유롭게 떠들며 놀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누구에 조국인가? 마치 그들 네팔인들만 이방에서 온 사람처럼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이국인처럼 낯선 그들은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옆에 앉아 있던 프랑스 여성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런 풍경들을 하나하나 호주머니에 주워 담기 하듯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 난롯가에 나란히 앉아있던 다와는 영문자로 된 저널을 읽고 있다.

 

처음으로 오르는 안나푸르나 주변 산행이다. 지금 모든 일정은 기록이다. 전문등반가가 아닌 내게 특별할 것은 없더라도 저 멀리 안나푸르나 설봉은 오랜 추억으로 남으리라.
난롯가에 한참을 그렇게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 시간이 10시는 넘어선 듯하다. 오늘 걸어온 길과 내일 걸어갈 길을 다와와 함께 이야기하다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가 아파온다. 
다시 책을 꺼내 읽으려고 애를 썼다. 까비르의 명상 시선집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명상 시선집을 읽는다고 고산증세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애를 쓰다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이제 홀로 길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고산증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전 지식은 있어서 그나마 대응책을 찾은 것이다. 그때 막 잠을 청하려던 다와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머리가 아파 견딜 수 없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려고 하니, 잠을 청하고 아침에 보자고 말했다. 시간은 밤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홀로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 바라보는 안나푸르나는 한밤중이었지만, 흰 눈에 쌓인 채 어둑한 밤길에 이정표라도 되는 것처럼 나그네를 설레게 했다. 
아픈 증세보다 더 찬란한 별빛이 맑은 밤길을 비추고 있었다. 밤 하늘 별이 저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금방 손을 뻗어 올리면 따낼 수 있을 것처럼 산등성이 가까이 있었다. 어떤 별들은 산보다 더 낮은 곳에서 나그네를 부르듯 반짝이고 있었다. 

별이 나그네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밤별이 찬란하게 빛나며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없이 그 밤하늘의 낯설음을 바라보며 길을 갔다.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듯해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안나푸르나의 설산은 그리고 별빛은 반짝였지만, 아득한 거리다. 느낌상으로는 청량한 산하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지만, 내가 걷는 길에 어둠을 거둘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헛걸음을 한 것이다. 내가 잘못 들어선 그 길은 곧바로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향하고 있었음을 길을 바로 잡고서야 알 수 있었다.

검문 경찰과 낮에 안면을 익히고 사진을 찍었다. 고산병이 있고 이 사진을 찍으면 나누었던 대화가 날 편하게 하산할 수 있게 했다.
길을 바로 잡아 걷기 시작했다. 
밤 정적이 바람 소리와 함께 살벌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낯선 이방인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도 했다. 고향 산하의 어스름 달빛과 별빛을 따라 홀로 밤길을 걷다가 제 걸음 소리에 놀라 한참을 뛰다가 뛰는 속도만큼씩 빨라지는 소리에 놀라 주저앉고 말았던 기억 말이다. 
내가 되돌아가 머물고자하는 머리 아픈 증세를 달래고자 하는 그곳은 앞서 이야기한 작은 공항이 있는 흠데(Humde)다. 그리고 여명이 시작되면 다시 되돌아와야 할 길이다. 우선은 확실한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간다. 

밤길을 걷는 것은 보통 걸음보다 훨씬 빠르다. 
그런데 이 낯선 길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찬바람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약간의 긴장이 더욱 즐겁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한다. 
세계에서 몇 번째 높다는 안나푸르나를 곁에 두고 아니 그 품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은 두려움을 많이 없애주는 느낌이다. 

마낭으로 가는 길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스며있다. 라사의 라마승려의 거처처럼 산에 몸을 부린 주택들이다.
어머니 품속에서 용기백배 재롱을 부리는 아이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렇게 낯선 초행길을 무사히 걸어갔다. 이윽고 낮에 통과했던 검문소가 임박했다. 
설마 총을 쏘지는 않겠지.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검문소를 막 통과하려는데, 검문 경찰이 꼬 호? 누구요? 라고 단호하게 묻는다. 
머 꼬리연 꺼비 호! 머라이 떠빠이 타처. 떠빠이 타차이너? 나는 한국 시인인데, 나는 당신을 아는데, 당신은 나 몰라? 
늦은 밤 안나푸르나 산 아래 검문소에서 이방인과 검문 경찰이 익숙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다. 그는 먼저 헤드렌턴에 불을 끄라고 했다. 나는 불을 껐다. 
그는 후레쉬를 비춰 확인한 후, 머 뻐니 떠빠이 라이 타처! 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도 당신을 알겠다. 라는 네팔 말이다. 약간의 희열 같은 것을 느끼며 무사히 검문소를 막 통과하려는 데, 키너? 왜?라고 다시 말을 걸어왔다. 머라이 데레이 데레이 헤데이크. 라고 말했다. 
네팔어가 익숙하지 않을 때는 급한 대로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다. 나는 매우 매우 머리가 아프다. 그는 알았다고 말하고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이제 더 내려가기는 힘들다. 더 내려간다면, 하루 코스를 줄여 일정을 조절해야 한다. 나는 그냥 이곳에서 머물기로 하고 게스트 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낮에 잠시 머물렀던 줄루피크(Julu peak)라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 질러 주인장을 부르는 것이다. 
사우지! 사우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다른 집을 찾아 역시 사우지! 사우지! 하고 불러 보았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낮에 안면을 터두었으니 좀 더 안심이다 싶어 줄루피크 앞에서 여러 차례 사우지! 사우지! 하고 애원하듯 불렀다. 역시 안나푸르나의 깊은 밤 깊은 잠을 청한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이제 포기해야겠다 싶어 나는 검문소를 향했다. 검문 경찰들과도 안면이 있으니 그들과 차라도 마시며 아침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도 허사였다. 그들도 이제 아무 대답이 없다.

짙은 밤길을 걸어내려오며 저 안나푸르나를 향해 직선으로 걸어가다 멈추었다. 그때 길을 잃고 멈추지 못했다면 어려운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런 글을 쓸 수도 없으리라.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줄루피크에 와서 이제는 주인장 이름을 불렀다. 풀 마야! 풀 마야! 그러니 우리말로 하자면 꽃 사랑! 꽃 사랑! 하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길을 지나던 사람이나 다른 네팔 사람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한참을 웃었을 것만 같다. 

우리네 깊은 산골에서 어떤 나그네가 꽃 사랑! 꽃 사랑! 하고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하지만, 그 생각에는 미칠 여력도 없이 난감한 밤이다. 
한참을 그렇게 불러도 소용이 없어 체념하듯 안나푸르나를 바라본다. 

마음이 좀 불안해져서 그냥 헤드렌턴을 끈 채, 한참 동안 안나푸르나와 밤하늘 별빛을 바라본다. 
절묘한 고독이다. 절묘한 난감함이다. 뭐 이런 이상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다시금 헤드랜턴을 켜고 머 꼬리연 호. 사우지! 풀 마야! 그렇게 한참을 불러대다 다시금 막연한 대기상태로 안나푸르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