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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안나푸르나 12박 13일의 기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1)

by 김형효 2008. 4. 2.
- 막연한 사색의 시간, 야크의 풍경소리에 귀가 멈춘다.

극도로 심한 두통증세에 시달리며 네 시간여 동안 밤길을 걸어야했던 전날 밤의 피로가 늦은 아침 발걸음이지만, 너무나 버겁다. 
한발 짝 두발 짝 발걸음을 옮겨 딛을 때마다 고통스럽다. 숨이 가빠 견뎌내기 힘들 정도의 힘겨움이다. 
첫 경험이다. 한 걸음을 내딛고 거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걸음을 옮겨 딛는다. 
용기를 내어 힘을 모아 두 세 걸음씩 걷기 시작한다. 대신 거칠게 심호흡을 하면서 걸었다. 
무난하다. 나는 힘이 들고 숨이 막힐 때면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거친 심호흡을 하면서 길을 낸다. 그것이 산소가 희박한 고산에서의 생존방식인가? 
고산에서의 생존방식을 나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을 수 있었다. 
마치 인공호흡을 할 때처럼 깊이 들이마신 숨을 한참 동안 나누어 내쉬는 방식으로 길을 걸었다.

전날 마낭에서 고산증세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곳은 옛마낭이다. 수많은 벽돌들로 담이 쌓아져 있었고 미로같은 곳이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고산증세란 고지 부적응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며칠 동안의 걸음걸이에 체력소모와 극심한 추위가 겹쳐서 오는 문제가 아닐까? 
더구나 침낭과 이불을 두 개씩이나 겹쳐 덮고도 이겨낼 수 없는 추위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했다. 

4,200미터의 고도에 추위가 피로와 겹쳐져 참으로 힘들고 지치게 했다. 
오늘, 그리고 내일이 지나면 이 고행은 멈추는가? 아주 오랜 삶 동안 준비되어 있을 인생의 고행 말고 이번 트레킹 기간 동안에 있을 고행 말이다. 
어쩌면 이 길이 새로운 고행의 시작이련가? 토롱-라 파스 5416미터를 내일 아침 8시경에는 넘어서야 한다. 그러니 이 고통을 오늘과 내일만 참으면 되는 것인가? 
아무튼 나의 가이드 다와의 이야기대로라면 예정은 그렇다. 

이겨보자! 칠일 째 걸음을 걷는다. 
내 일생에서 언제 이렇게 오랜 시간 걸어보았던가? 
막연한 사색의 시간이다. 무작정 길을 걷다 방목되고 있는 야크의 풍경소리에 귀가 멈춘다. 따라서 발걸음도 멈추고 그 소리를 듣는다. 
고마운 야크 주인이다. 어쩌면 매몰찬 느낌도 없지는 않다. 

이 깊은, 그리고 높은 산봉우리에서 누가 야크를 잡아들인다고 야크 목에 풍경을 달았는가? 
하지만 그 덕분에 또 이 고상한 풍경소리에 취해본다. 마치 연주하듯 바람소리와 새소리, 안나푸르나 설산에 눈이 녹아 흘러내리며 내는 물소리, 야크 울음소리와 야크 목에 걸려 있는 풍경소리가 뒤섞인 채 울려 퍼지는 소리 참 좋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다. 급경사를 오르는 길이 멀기만 하다. 급경사와 평지를 반복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4550미터가 되는 페디(Phedi)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새롭게 조성된 기도 공간에서 네팔의 산골 아이가 기원을 하며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 가는 길은 4800미터 하이캠프를 향하여 걷는 것이다. 
가는 길이 험하기도 하지만, 추위와 급경사에 지친다. 
어렵사리 오른 페디는 조그만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잠시 머무르며 몇 사람은 묵어갈만한 자리가 있었다. 
그냥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인상 좋은 쉐르파 가족이 살고 있었다. 포터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누가 손님인지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한 느낌을 주었다. 

야크 한 마리가 배낭을 뒤적이려는 자세로 배낭에 코를 들이댄다. 
모두가 웃으며 그 모습을 본다. 독일인, 영국인 그리고 나와 다와 쉐르파..., 간단하게 찌아를 한 잔 마시고 긴 휴식을 취했다. 
너무나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어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안나푸르나만 쳐다본다. 네팔인들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이방인들은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옛 마낭 우리네 당산나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본 새로운 마낭 모습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가던 길을 멈추고 거친 심호흡을 하며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길을 간다.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듯 경사진 비탈길을 걸었다. 
설산의 체온이 느껴지는 계곡에 눈들이 뾰족 뾰족 돋은 모습이 마치 펭귄모양이다. 
앞서가던 독일인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있는 내게 서두르라고 신호를 보낸다. 
나는 왜 그러는 줄도 몰랐다. 나중에 살펴보니 내가 걷는 불안한 길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돌덩이 흙덩이들이 비탈을 이룬 채 위에서 무너져 내릴 기세다. 

나와 가이드 다와는 금세 두려움을 느끼며 잰걸음을 하여야 했다. 
나는 길 가기가 너무 힘이 들어 머뭇거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직접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훈련이란 것 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몸은 지치고 음식물을 먹기는 힘들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더딘 걸음을 걸어 힘겹게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 십오 분이다.  

 

 

앞서가는 독일인들, 방송국에서 다큐멘타리 제작을 위해 왔다고 했다. 맨 뒤가 필자.
하이캠프는 한적한 여가를 즐길만한 공간으로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그럴 뿐, 호흡이 힘든 상태에서 머리가 아파오고 더구나 잠시 바깥 구경을 하려고하면 금세 세찬 바람이 불호령을 한다.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꼼짝없이 하이캠프  레스토랑 안에 갇히는 신세다. 
물론 숙소는 정해졌지만 잠들기에는 아까운 시간이기에 레스토랑에서 머물며 창밖으로 안나푸르나와 그 주변 산 풍경을 구경하며 외국인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순간 나는 하이캠프 아래 굽이져 올라온 길을 보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는 듯하다. 그 길 저 멀리 높이 솟아오른 안나푸르나의 만년설을 보면 그 아픔의 순간도 찰나적으로 잊고 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머리 아픈 증세를 견디지 못하던 나는 한참을 말없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다와가 깨워서야 잠에서 깨었다. 

등록일 : 2008-03-27 |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