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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가을 밤에는 시를 읽자~!

by 김형효 2008. 10. 16.

연변자치주의 가요

 

엄마 곱니 아빠 곱니 누가 누가 더 곱니

엄마 없던 하루 세 끼 비빔밥만 먹었구요

아빠 없던 날 밤새도록 도깨비 꿈만 꾸었대요

엄마야 아빠야 우리 우리 함께 살자

해도 있고 달도 있는 푸른 하늘집처럼

 

*이 가요는 태어나면서부터 시대의 변화를 겪는 연변의 동포들이 애환을 보여주는 노래다.

<해도 있고 달도 있는 푸른 하늘집처럼>을 읽다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 아빠가 집 떠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 연변 동포 아이들의 모습이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엄마 아빠를 그리는 아이의 마음을 너무나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노래다.

거기 슬픈의 그늘이 싸늘하게 등골을 적신다.

한국에 와 있는 동포들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자.

우리의 아픈 역사의 그늘이 깊다.

 

두만강 둔치에 모형으로 선 두만강 고향집......,

 

북극성의 고향으로.

 

                         박영희 시인의 시(메모)-

                         작가동맹의 박영희 시인이 아니라 현재 생존한 전남 무안 태생이며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 시인임

                         박영희 시인께서 보내주신 -만주를 가다-를 읽고 이 시는 박영희 시인이 만주를 가다에서 발췌한 시이다.

                         앞의 가요도 아래 일본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책을 읽다 사색하며 <나는>이란 시를 적는다. 사람이 사람을 낳듯 시가 시를 낳은 것이다. 

 

 

먼 곳으로부터 불빛 한 점 걸어온다

춥고 외로운 걸음이다

 

어둠의 자식으로 태어난 저 별은

서럽지도 않은가

별은 어쩌자고 눈빛이 저리도 초롱초롱하단 말인가

 

그대를 붙들기 전 저 별을 붙들었어야 했다

 

 

*만주를 걸으며 나도 한 번쯤 글을 남기고 싶었다.

한 동안 오마이뉴스에 연변을 걷던 나의 기록을 열심히 연재를 하던 날도 있었다.

연변 동포 시인들을 생각하며 동포 문학인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고

재일동포 시인들의 시 해설과 재중교포 문학인 그리고 북한 시인들의 시해설을 쓰며

오랜 시간 동안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데 동향의 박영희 시인께서 차곡차곡 알곡을 쟁여 담듯 담아낸 -만주를 가다-

촘촘히 읽으며 행복에 젖는다.

 

 

 

저 먼 곳으로부터 불빛 한 점 걸어온다.

만주를 가다라는 책 속의 위인들이 역사의 문을 열고 내게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모자란 내 가슴 한켠을 민족심으로 일으켜 세운다.

 

이 짧은 밤에 이육사, 이상화, 윤동주 등등의 지사 정신으로 시를 써온 시인들을 생각한다.

이 짧은 밤에 윤봉길, 김구, 안중근, 이봉창, 나석주 등등의 지사로 살다간 지사를 생각한다.

부끄럽다.

개인사를 핑계로 살며 조국(할아버지 나라)가 반동강이가 난 채 이질적 이민족의 발아래 깔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들의 응락을 기다려가며 통일의 미래를 설계해야하는 조국을 위해

지사정신이 담긴 시 한 편, 지사의 삶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사는 내 철면피한 목숨을 보며

나의 영혼의 가엾음에 쓸쓸해진다.

 

 

코코아 한 잔

(이시카와 다쿠보쿠, 일본 시인, 19911년 창작)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그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그것은 성실하고 열성적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이고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시고 사체도 찾지 못한 불귀의 객인 채

떠도는 구천의 영혼이 되었지만, 안중근 의사님께서는 행복하실까?

 

그는 죽으며 동양평화론을 주창했었다.

그 적국의 시인이 아프게 쓴 시를 보며

아국의 의사 안중근을 노래하지 못한

초라한 시인의 등골이 시리다.

 

나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을 보며

빈 라덴을 옹호한 시인이다.

그렇게라도 적국의 시인이 아국의 의사 안중근을 따뜻하게 바라본 시선을

두루뭉실 이해한답시고 깝쳐볼까? 마치 무임승차한 못난 승객처럼......,

양심의 그늘이 아무리 깊어도 진실은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몸을 감싼 남양시 북녘땅, 발아래 두만강 건너 남양시의 모습이다.

 

나는

 

                                                     김형효

 

머언 태곳적 세대의 미래였고

머언 태곳적 사람의 자손이다.

 

나는 지금 머언 태곳적 사람의 자손이며 현재의 길을 가는 사람

나는 그렇게 현재의 사람이고 나는 미래를 낳는 현재의 사람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미래를 낳는 미래의 조상이자 그들의 선조이고

나는 지금 죽어 사라져도 미래를 낳은 장본인이자 그들의 선조이다.

 

사람은 원치 않던 원하던 하나의 우주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낳고 시대를 낳는 사랑의 주인인 이유다. 

 

*나는 지난 세월의 자식임을 자각한다.

나는 현재의 내가 현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나는 미래를 낳은 선조가 되리니, 한 순간이라도 떠넘기지 말자.

삶의 한 순간 한 순간 나는 빼고 세상을 비난하지 말자.

우리나라 사람은 안 돼! 그 말을 제일 싫어한다.

그 말은 나는 안된다는 자기 부정이다.

 

이제 살자.

당당하고 성실한 테러리스트로 살자.

나를 향하여 가혹한 테러리스트가 되자.

 

저 물 건너 반쪽 할아버지 나라땅 북녘,

아니 어쩌면 내가 딛고서 사진 찍었던 땅도 내 할아버지들의 땅이었지!

 

 

두만강에 두고 온 작은 배

- 김규동 (1925~ )


가고 있을까
나의 작은 배
두만강에

반백년
비바람에
너 홀로

백두산 줄기
그 강가에
한줌 흙이 된 작은 배


*슬프다. 노시인의 가슴속에 흐르는 작은 배. 반백년이 흐른 지금도 탈 수 없는 배.

남으로 떠난 주인을 기다리다가 이제는 한줌 흙이 된 기다림의 배.

그 배를 그리워하는 이는 이제 노시인 한 사람뿐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 배를 타고 두만강을 노 저어 갈 날 있으리.
----해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