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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쓰는 시

세브첸코 생가에서......,

by 김형효 2009. 4. 6.

 

 

 

하늘이 맑다.

-우크라이나의 시인 세브첸코를 추념하며

 

말없이 세월이 간다.

마치 다툼으로 일관한 세월 같다.

꿈도 꿔 본 적 없는 세월처럼

구름이 흘러가듯이

어디선가 바람은 불어왔다.

 

가는 세월을 탓 할 것은 없다.

푸른 하늘의 안부는 내 것이 아니다.

저 달 건너 아랫녘 멀리에 살고 있는 내 고향 사람들처럼

길고 먼 세월 건너 세브첸코가 울었던 세월이 있었다.

마치 내 조국이 울었던 세월처럼,

 

오두막 같이 짓고 살았던 아픔 같은

세브첸코의 눈물이 아직도 비에 젖어 있다.

눈발이 되어 정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 암울한 흐느낌 같은 바람과 비와 눈은

세브첸코의 눈물이었던가?

냉혹한 얼음장을 얹어둔 하늘같은,

 

깃발이 흔들리는 대지에는

아직도 흉허물 없는 이야기 소리 들리지 않고

흔들리는 바람에 깃발이 답을 하고 있다.

그 바람 건너 시베리아의 날선 바람이 찾아왔던

짜르의 안녕은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은 내가 흔들릴 때라고

아직은 나의 조국이 안심하지 못하니까?

그렇게라도 심장소리를 듣게 하리라고,

 

안절부절 하는 밤에는 저 깊고 멀고 먼 하늘도

나의 동무라고 말하는 세브첸코의 영전에서

사람들이 꽃노래를 부르고 있다.

세브첸코여! 안심하라고, 이제는 안심하라고,

 

그러나 세브첸코는 한 걸음 물러서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네.

아직도 짜르는 죽지 않았다고 명상하고 있네.

신이 폴란드 왕족에게 농락당했듯

아메리카 사람에게 러시아 사람에게 농락당할까?

아직도 안절부절이라네.

 

하늘은 깊고 멀어도

명상이 깊은 날에는 지척의 친구라네.

잉태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평온한 하늘이라네.

고통의 그늘에 멀고 지루한 것은 사라지고

드네프르 강변의 착한 바람만 내 가슴을 흔드네.

아! 세브첸코여!

우크라이나의 십자가여!

 

*나는 몰랐다. 세브첸코와 우크라이나를......,

마치 뒤늦게 철들어가는 아이처럼 세브첸코에 빠져들고 우크라이나의 아픔에 젖어들고 있다.

아픈 사람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세월이 저 달 건너의 세월이건 바로 지척의 세월이건

시인의 영혼이 가닿는 곳이라 믿는다.

진정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사실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아픔은 내 할아버지의 세월 너머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 할아버지 시대의 아픔이 내 조국의 아픔의 잔재인 것처럼,

우크라이나의 아픔 또한 그렇다고 느낄 때, 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아픈 사람들과 그 아픔을 이겨내려던 사람의 의지에 경배하지 않을 수도 없다.

 

오늘 나는 세브첸코의 종족이다.

시인은 또 하나의 민족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나는 그와 한 민족이거나, 최소한 한 통속이다.

그에게 경배하며 그가 겪은 아픔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선전하고자 한다.

그를 해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그것을 외면하지 말라고 나에게 또 다른 눈을 주었을 것이다.

시인의 눈, 아픈 영혼을 바라보는 눈, 그 눈을 밝혀 세상을 살아가리라!

 

2009년 키예프의 밤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