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7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예빠토리야! 저녁 9시 10분 차에 올라 새벽에 도착했다. 이미 이곳 시간 새벽 4시는 날이 밝은 시간이다. 도착할 때 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창문 밖을 바라볼 수가 없다.
날이 밝았는데도 그 안개에 휩싸여 운전기사의 안전운전이 걱정되는 승객이다. 잠시 그렇게 20여분을 가고 난 후 곧 해가 떠오른다는 신호를 보내오듯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온다. 광활한 느낌의 바다가 펼쳐진다. 얼마 만에 보는 바다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가닿을 수 있는 바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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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빠토리야 가는 버스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내렸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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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간에 도착했지만, 아침처럼 밝다. 이른 시간이라서 근처 바닷가를 바라보며 내가 만나야할 사람을 기다렸다. 정말 멋지다.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해안선과 맑고 짙푸른 바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듯 둘러보던 바닷가를 등지고 버스터미널 근처의 노상 카페로 옮겨 시간을 보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하지만, 7~8월은 이곳이 천혜의 관광지로 명성이 있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여느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이 아침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 난 그 중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다는 율랴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이었다. 나는 터미널 근처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만날 고려인에게 첫 만남의 인사를 위해 꽃 한 다발을 사서 기다리고 있었다. 곁에 앉은 율랴에게 말을 건넸고 그녀는 영어가 다른 우크라이나인들보다 유창했다. 내가 알아듣기 좋은 발음은 서툰 콩글리쉬(?)의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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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빠토리야에서 만난 모스크바의 여인 율랴! 모스크바에서 휴가온 율랴다. 그녀 일행은 곧 모스크바로 돌아간다고 했다. 꽃은 내가 만날 고려인에게 주려고 샀던 것인데 그냥 들고 찍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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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곧 그녀의 다른 일행이 와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데는 낯선 이와의 거침없는 질문도 대화도 좋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전화가 걸려와서 꽃 가게 근처에 있다고 말했다. 꽃 가게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고려인(?)과 한국인! 불리는 이름은 달라도 한 핏줄의 형제임을 생김새를 통해서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를 나누었다. 러시아말이다.
곧장 이어지는 러시아어로 하는 질문과 답! 한국말을 할 줄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안내를 따라 길을 갔다. 잠시 후 터미널 안에 중년의 우리 동네 형님 같은 분이 안녕하십니까?(ДОБРЫИ ДЕНЬ!) 나도 따라 안녕하십니까? 영어로 말하자면 낮 인사다. 그의 승용차를 탔다. 내가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그러면서 형님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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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오르기 형님 부인 스베따 49세 여지없는 한국의 여인이다. 게오르기 형님은 내가 스베따를 뭐라고 부르는가? 물어서 아내, 부인, 마누라 등으로 알려주었다. 곧 게오르기 형님은 아내라고 불러보았다. 서로 밝게 웃었다. 난 마음 깊은 곳에서 샘처럼 눈물이 솟아났다. 지금도 울고 있다. 형수님이 웃고 있는 곳은 식당 주방 안이다. 게오르기 형님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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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게오르기(54세) 한국 성씨 나씨다. 그는 자꾸 한국말을 묻는다. 나는 계속 가르쳐준다. 이곳에서 산지가 41년이란다.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다시 이주해온 것이다. 그 역사는 아직 모른다. 나중에 다 물어서 알고 싶다.
그 형님은 자꾸 본이 나가다. 성씨와 본을 헛갈리는 거다. 알고 보니 본은 모른다. 차차 함께 지내면 찾아주고 싶다. 가능하면 한국의 나씨 종친회에서 찾아주면 좋으련만, 그리고 나를 안내하기 위해 나타났던 중년 여성은 김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곧 누님이라고 부르며 한국어로 누님과 형님의 뜻을 알려주었다. 나는 동생이라고 했더니, 게오르기 형님도,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누님도 김동생, 김형효 동생이라고 말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뒤틀리며 조국에서 떠나야했던, 그리고 낯선 나라 정부의 조치에 의해 낯선 곳에 버려져야했던 그 세월처럼 뒤틀린 혀로는 편안하게 내 나라 내 말이 되어 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이미 내 나라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 옛날의 전설 같은 나라이야기라고 해야 할 지, 막막한 현실처럼 혀도 막막하게 곧 그 말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한 나절을 보내며 내가 살 집을 찾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두 곳을 살펴본 후 어느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는 또 다른 누님이 한 분 있었다. 제법 세련된 자태였지만, 이곳에서의 세련미다. 우리네 60년대의 신여성만큼도 안되는 느낌이지만, 그것을 가려뭐하겠는가? 그녀는 이곳 고려인들을 위한 영어 선생이란다. 영어를 곧잘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발음상의 차이가 크다. 사실 영어는 미국식과 영국식의 차이가 크다.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은 모르겠는데 나같이 서툰 사람은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이곳 러시아 발음과 섞인 영국식 영어는 더 어렵다. 중심지를 쩬트루(미국식 CENTER, 영국식 CENTURE, 러시아 ЦЕНТРУ)라고 한다. 센터, 센트르, 쩬트루 그러니까 쎈트루에서 오는 영어를 쩬트루라고 하는 사람들이니 하나의 예로 이해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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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빠토리야에서 만난 고려인들 좌로부터 게오르기(54세), 김 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오른쪽 뒤 게오르기(60세), 그 앞은 함께 눈시울을 붉혔던 이랴(59세)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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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러시아의 다양한 변형은 이 사람들의 다양한 발음이 우리에게는 한계처럼 느껴진다. 이곳에는 'ㅇ'발음이 없다. 우리의 받침에 오는 'ㅇ'을 정확히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형님과 누님이 '형효'라는 발음을 하기가 어렵다. 표기도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 하시는 그분과 나의 영어도 소통이 쉽지 않다. 발음을 서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분들과의 만남! 그리고 다른 고려인과의 만남도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나누었던 이리나(59세)와의 대화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할 말이 많아졌다. 오늘 그 이야기를 다 전하기는 벅차다. 끝으로 게오르기 형님의 딸(레나, 영어식 헬레나 26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발음하기 좋고 나름에 푸른 소나무의 고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바란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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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나! 이제 저는 나송아 입니다. 예빠토리야에 가서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게오르기 형님의 딸 레나(26세)다. 저는 나송아 입니다. |
ⓒ 김형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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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형님이 나씨이니까? 나송아(羅松芽)! 저는 나송아입니다. 게오르기 형님은 흡족한 웃음을 웃었다. 나는 앞으로 예빠토리야에 살고 있는 모든 러시아 이름을 가진 한국인,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로 이름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혹여 오마이뉴스 독자분들께서 이런 이름 좋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분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협력자로 모시고 싶습니다. 사실 저처럼 서툰 마음만으로 할 일은 아닌 듯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순수 우리말 이름을 함께 지어주는 운동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면서 그런 이름들을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해, 달, 구름, 맑음, 얼, 그렇게 우리말을 찾아가려는 이곳 고려인들과 함께 저는 저 먼 고대의 고려인들을 찾아가서 인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