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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갑자기 우크라이나인 알렉세이가 날 위해 노래를 하겠단다.

by 김형효 2009. 7. 17.

  
▲ 뿌쉬킨의 집 전경 한참 동안 집 전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다. 어제는 날을 잡아 찍었다. 뿌쉬킨이 유배 당시 4년여를 머물렀던 집 전경이다.
ⓒ 김형효
뿌쉬킨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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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날들이다. 한국에서 봄이 시작되던 3월 3일 출국해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찾아온 우크라이나! 함박눈이 주먹만한 크기로 내릴 때는 그런 겨울만 존재할 것처럼 느껴졌다.

 

살을 에는 추위도 기대(?)했었다. 사실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추운 날은 계속되었고 4월 중순부터 잎이 돋아날 때는 자연이 환상적인 묘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꽃이 찬란한 봄날이 지나고 잎이 무성한 한철의 여름날이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길가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가게들도 간간히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 모습이 눈에 띈다. 이곳 니꼴라예프는 인구 50만의 도시다. 지난번 보름 동안의 현지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와서 머물렀던 타샤네 가족들도 지금은 얄타 인근의 바다로 바캉스를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이 아이들의 방학과 함께 보통은 한 달의 긴 하계휴가를 떠난다. 우리로서는 정말 부러운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다. 누가 이들에게 가난하다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고 하겠는가? 이들이 누리고 사는 이 여유와 풍요로운 자유를 보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 야외 라이브 레스토랑에서 춤추는 우크라이나인 여성들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두 여성. 난 흔쾌히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 답례로 그들의 이메일로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사진을 받은 후 고맙다는 짧은 답장을 받았다.
ⓒ 김형효
나미브 강변 라이브 레스토랑

 

며칠 전 나미브(러시아어 НАМИВ: 영어 NAMIB)에 아제르바이잔에서 와서 개업한 아밀(АМИЛ)의 레스토랑에서 서로 경계심 없이 어울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보았다. 노천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흡사 한국의 마을잔치처럼 자연스러웠다. 라이브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음악에 맞춰 남녀노소 가족단위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자연스럽게 춤을 추웠다.

 

보는 사람도 흥이 날 정도로 그들의 춤은 정열적이었다. 나는 그저 홀로 흥을 주체하기 힘들어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한 테이블의 젊은 남성 둘이 내게 동석을 요청했고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알렉세이와 이반이다. 30대 초반의 그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알렉세이가 날 위해 노래를 하겠단다.

 

  
▲ 우크라이나인 알렉세이의 노래 선물 알렉세이가 나에게 노래를 불러준다며 라이브 가수의 시간을 허락받기 위해 돈을 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낯선 그의 인사가 고마운 인사가 되었다.
ⓒ 김형효
우크라이나인 알렉세이

 

FOR YOU! SINGING SONG! 정확한 영어인지는 모르지만, 날 위하여 노래를 불러준다는 의미로 들었다. 나는 알렉세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후 그에 대한 답가를 불렀다. 다소 뜻밖의 상황이라 조심스럽게 사장인 아밀에게 내가 노래를 불러도 되는가 물었다. 아밀이 괜찮다고 하여 나는 그들과 맥주를 마시다가 15분쯤 지나서 <아리랑>을 부르고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부르며 어울렸다.

 

모처럼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불러서는 아닐 테고, 그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몇 마디 그들이 통하는 인사를 건네서 반갑게 맞아준 것이겠지만, 노래가 끝나고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들과 어울렸다. 난 그날 처음으로 해가 어두워진 저녁 10시를 넘겨서 집에 돌아왔다. 안전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늦은 시간에는 외출을 하지 않았으나, 처음으로 저녁 10시를 넘긴 것이다.

 

  
▲ 알렉세이와 필자 나는 마지막 인사로 그와 기념촬영을 했다. 연락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아직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김형효
우크라이나인 알렉세이

다음 날은 뿌쉬킨가를 찾았다. 전에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지 못했던 뿌쉬킨이 머물렀던 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리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인근 공원을 찾았다. 그곳에는 그림을 내다 파는 화상이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나와 있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한 화가 앞에 앉았다. 그는 마침 수호믈린스키 국립대학교에 다니는 화가지망생 카트리나(КАТРИНАБ 20세)였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카트리나의 남자친구가 기타를 메고 왔다갔고 나중에는 사샤(САША)라는 쉬꼴라에 다니는 학생이 관심을 갖고 그림이 다 완성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카트리나의 남자 친구인 콘스탄찐이 기타를 메고 포즈를 잡아보란다. 그리고 쉬꼴라에 다니는 사샤가 사진을 찍었다. 나름 낯설게 앉아서 시험 보는 느낌으로 모델이 되어 있던 나는 한결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 콘스탄찐과 필자 화가 지망생 카트리나의 남자 친구인 콘스탄찐이 내게 기타를 건네며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사진은 쉬꼴라에 다니는 어린 학생 사샤가 찍은 사진이다.
ⓒ 김형효
뿌쉬킨 거리에서 시인 김형효
  
화가 지망생 카트리나(20세)가 필자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옆에는 그림 그리는 모습을 관심깊게 바라보던 구경꾼 사샤(13세) 쉬꼴라 학생
ⓒ 김형효
화가 지망생 카트리나(20세)와 사샤(13세)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에 많은 시민들이 길을 걷다가 관심을 갖고 가격을 묻고 쳐다보고 하였다. 나로서는 한국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처음 하는 경험인데 참 모델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내 얼굴을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궁금증은 마치 시험을 치르면서 결과가 어찌 나올까 조마조마 하는 것과 같았다. 내 모습과 닮은 그림은 30분 정도 지나 완성되었다.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여유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체감한 하루였다. 이제 거리의 나뭇잎들이 연둣빛으로 바뀌어간다. 봄이 오고 가며 여름이 오고 친구처럼 가을이 오는 느낌이 든다. 이곳 사람들의 정열처럼 빠르게 온 봄, 여름, 그리고 쏜살같이 가을이 달려오는 느낌이 든다. 대형마트나 시장에 배추가 모습을 감춘 지 일주일이 지났다. 멋모르던 나는 이제 양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그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