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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글>오늘은 아무래도 한 잔은 마셔야 하겠습니다

by 김형효 2010. 5. 24.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 노무현을 좋아했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부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비판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이해해주지 않던 벗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벗들에게만 비판했지요.

그런 비판은 자아비판 성격이었지만,

정치인을 좋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딴나라당, 혹은 쿠테타 세력들은 싫다 할 수 있었지만......, 

 

제 비판을 인정하지 않던 노빠들에게 저는 못된 지지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가 간 후 노빠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노빠였지만, 이제 다시 노빠가 되렵니다.

그의 이름은 민주, 평화, 통일로 바뀌었으니까요?

 

우크라이나에도 슬픔의 비가 내립니다

 

대통령님을 추모하려는 시를 쓰려고 하다 5월 23일을 맞았습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그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시는 오간데 없고 한탄과 푸념만 넘쳐납니다.

지난 해 당신이 가신 자리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낯선 나라에 새벽을 홀로 지새며 한탄과 푸념으로 울어내기만 했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당신의 이름은 민주, 평화, 통일로 바꾸어 부릅니다.

그러나 민주도 평화도 통일도 모두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용서하신다면 오늘은 한탄과 푸념이라도 하려 합니다.

 

오늘은 우크라이나에도 비가 내립니다.

제 마음도 따라 제 영혼까지 슬픔의 비로 적십니다.

어렵고 어렵게 5월 23일이 왔습니다.

몇 년처럼, 수십 년 세월처럼 5월 23일이 왔습니다.

우리들의 세월은 더디고 더디기만 합니다.

2000년 6월 15일을 지나서 2009년 5월 23일 전날까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설마 설마하며

좌절 같고 희망 같은 촛불의 파도에 몸을 얹고

촛불의 파도를 보며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라도 살아야했습니다.

 

 

 

  
▲ 1주기를 맞아 다시 향을 피웁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에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니꼴라예프에서 오늘은 예파토리야에서 동포와 만나며 지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 김형효
다시 향을 피웁니다.

봉하산 산마루에서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지 못하고

떠나신 당신을 보았으면서도

지난 세월 우리의 다짐들은

아직 남아 살아있다고 위로하며

서로를 촛불처럼 바라보았고

그렇게 희망의 끈을 만들었습니다.

희망을 섞고 불안을 넘어서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2010년 5월 23일

결정적 근거가 1번이라며 거기에 

많은 것을 담아 우리를 짓누르는 저들을 보면

저들의 영혼까지 가엾어집니다.

저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땅도 서럽습니다.

삽질로 모든 혈관을 다 뜯어내려는 저들의 악령이

땅에서 이제 동족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시대 남북관계 보고 계십니까?

낯선 나라에 새벽 당신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임종을 못한 자식처럼 아리고 아픈 마음으로

당신의 영정을 만들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아픔은 더욱 깊은 상처를 확인하며 아파옵니다.

저들의 조롱이 우리의 조롱이 되지않게

6월 초입에 대한민국의 하늘, 땅에서는

당신이 그토록 소원하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당신의 말씀을 따라 함께이기를 소원합니다.

잘 조직된 힘을 발휘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낯선 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조롱합니다.

"왜, 아직도 통일을 못하는가?

남한에서 왔느냐? 북한에서 왔느냐?"

임기응변으로 답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남쪽엄마, 북쪽엄마가 있느냐?

남한과 북한은 그냥 하나다.

다시 묻습니다.

코큰 이방인이 비웃음을 담고 묻습니다.

"왜, 아직도 통일을 못하는가?"

다시 답합니다.

"덩치 큰 놈들이 우리가 하나 되면

자신들의 이익이 모자랄까 겁을 먹고 방해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이방인을 이해합니다.

아픈 것은 그것이 아니라,

조국을 잃고 낯선 나라에서

나그네처럼 살아온 나의 동족들이 묻습니다.

"왜, 남한과 북한은 아직도 통일을 못하는가?"

마찬가지로 답을 하고

속으로는 한없이 궁색해서

볼 낯이 없이 속으로 낯이 두껍습니다.

 

이미 아픈 나와 상관없는 동족도 이방인도

즐거운 구경거리처럼 우리를 바라봅니다.

강자도 약자도 싸움 구경은 재미가 난 모양입니다.

강자도 약자도 만만하고 만만하게

우리를 가엾이 바라보며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왜 철없는 정권은

그렇게 만만한 자리로만 우리를 몰고 갈까요?

이 철없는 정권은

악다구니 같은 날카로운 힘자랑으로 철없이 그렇게 가더라도

임기 내내 독기만 품고 불장난 같은 그런 일을 하더라도

죽음을 모르는 불사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생각됩니다.

절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어쩌라고, 국민은 어쩌라고

절로 한탄만 깊고 깊습니다.

 

  
▲ 오늘 본 우크라이나의 낮 하늘입니다. 지상은 혼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붉은 빛으로 낭자합니다. 희고 흰 빛의 구름이 지상의 난잡함을 살피는 것인가 싶습니다. 상처로 멍든 핏자국으로 가득한 지상입니다. 영면하소서!
ⓒ 김형효
오늘 본 하늘입니다.

저들의 야만과 폭거가 대낮에도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우리의 삶은 죽임 당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름은 이제 시대의 주검이 되었습니다.

민족이 시대의 주검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통일국시가 되어 민족과 국민을

영혼전쟁 시대로 몰아세우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당신에게 한 개비 담배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그들의 겁박은 겁박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설마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후회합니다.

우리들의 어설픈 믿음이 조롱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역행할 수 없다고

이제는 통일로 가는 길을 되돌릴 수도 없다고"

우리가 믿었던 그 어설픈 믿음들이 조롱받고 있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라 그 조롱과 함께

우리를 무덤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산송장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이제야 촛불과 함께 타오르지 못한 그날이 외롭습니다.

 

우리의 비무장지대, 우리의 아픔을 이겨내며

서로를 사랑하고 살리며 살아서 넘었던

임수경의 분단선,

문익환 목사의 분단선,

소떼를 끌고 넘었던 분단선,

김대중 대통령이 하늘 길을 열었던 분단선,

그리고 당신이 걸었던 지상의 분단선,

이제 이명박 정권이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결정적 근거 1번을 들고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족을 다시 죽이는 전장의 길을 만들려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 길은 모두를 죽이는 길임을......,

 

하여 오늘은 술잔을 들 여력도 없이

서글픈 눈물만 가슴 안으로 가는 빗물처럼 스며듭니다.

다시 바람이 분다고 노래합니다.

꼭 그렇게 바람이 불어서

한 개비 담배를 물고

당신의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온전한 그날,

우리들의 해가 뜨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온전한 날, 우리는 비로소 하나였습니다.

6월 15일이 그랬고 10월 4일이 그랬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의 주검이 현실이었던 그날,

우리가 왜 그토록 슬펐던 것인지

우리가 왜 그토록 아팠던 것인지

당신이 가고 몸이 반쪽은 잘려나간 것 같다던

노구의 김대중 대통령도 가시고

이제 우리에게는 몸통이 전부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바람 속에서 우리를 살리려 합니다.

다시 부는 바람 속에 당신과 우리의 사랑이 자랍니다.

그 바람 속에 우리의 길을 내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우리의 사랑과 희망 한 자락

당신과 함께 노래 불러 보는 것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슬며시 인터넷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피우지 않는 담배 한 개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못 마시는 술잔을 기울여봅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한 잔을 올려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한 잔은 마셔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다시 올 1년, 2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6월 2일의 승리가 6.15와 10.4를 살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