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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고려인 이름을 딴 거리 "울리짜 아나톨리 김아"(УЛ. А.КИМА)

by 김형효 2010. 6. 16.

 우크라이나 고려인을 만나다(1)

 

필자가 우크라이나에 온 지 15개월이 지났다. 가끔씩 기사를 쓰면서 한국과 우크라이나에 다른 점, 혹은 새로운 것들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신변잡기에 가까운 일기처럼 써가던 한글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고려인 이야기가 계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방학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영토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수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다.

 

이곳의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성씨를 말할 때, 애써 강조하는 것이 있다. "본이 김가이, 본이 이가이, 본이 강가이, 본이 유가이" 애써 자신의 성씨를 강조해 말할 때 하는 말이다. 김씨는 본이 김가이라 하고, 유씨는 본이 유가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정확히 본적에 대해 이해하는 분들은 연세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다.

 

  
▲ 왼쪽은 김플로리다, 김보바(53세)씨의 아들과 부인, 뒷줄 누이 동생 김보바 씨는 1남 3녀 중 둘째로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가 장녀이고 여동생이 둘이 있다. 그는 3남을 두고 있다. 규모있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업가이다.
ⓒ 김형효
김보바 씨 가족

최근 필자는 예빠토리야를 찾은 고려인을 만났다. 그는 크림 인근의 헤르손이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김보바(53) 남성이다. 얼마 전 먼 거리에서 친척집을 찾아온 학생 김보바가 한글학교 수업을 받으러 와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김보바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이다.

 

일요일 수업을 마친 후 필자의 아파트에 초대해 함께 찻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 일요일 연이어 수업을 마친 후인데, 평일을 맞아 자신의 집에 갈 것인지 물어왔다. 헤르손은 예빠토리야에서 350km 정도 떨어진 인근 도농복합도시이다. 한국 같으면 목포에서 서울, 부산에서 서울거리와 맞먹는 먼 거리다.

 

알고 보니 그는 예빠토리야 고려인 협회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56)의 동생이다. 월요일 아침 필자에게 다시 갈 것인지 질문해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 거절했다가 그의 승용차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응했다. 정말 고마운 여행이었다. 그는 헤르손까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에 고려인들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 중 송인수(83) 할머니와의 만남은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 송인수 할머니(83세) "우리는 살만 하우! 받으시오. 어렵지 않소. 살만 하우! 고려인이오. 고려인!" 송인수 할머니가 우즈베키스탄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달라면서 웃고 있다.
ⓒ 김형효
송인수 할머니(83세)

할머니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직도 한국말을 곧잘 하셨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더듬으며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경로를 일러주셨다. 하얼빈, 블라디보스톡,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우크라이나 라즈돌로느이까지 어쩌면 할머니의 80평생을 간략하게 설명한 지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 삶의 흔적이다.

 

할머니는 지금 아들 송알레그(52)씨와 그의 부인 타냐(50, 벨라루스) 여성 사이에 손자와 함께 에빠토리야 인근의 라즈돌로노이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아들인 송알레그씨는 의사이며 지역에서도 알려진 유지라고 그와 친구라는 김보바씨가 전한다.

 

할머니의 모습을 담으려는데 할머니께서 더 적극적이시다. 머나먼 고국에서 왔다는 소식에 참으로 반가워하신다. 알아야 반가운 것이구나? 낯선 곳에서 익숙하게 반겨주는 분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그래도 아는 사람이다. 동족의 피가 더 뜨거운 것도 조국과 세월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같은 동족이라도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진을 몇 장 찍어드렸더니 우즈베키스탄 전통의상을 입고 올테니 또 찍어줄 거냐고 묻는다. 그렇게 하겠다고 응하고 나서 다시 한복은 없구나? 나홀로 물음없이 답했다.

 

할머니는 벨라루스 출신 며느리가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필자에게 거금 100그리브나(한화 14000원 정도)를 손에 쥐어주신다.

 

"우리는 살만 하우! 받으시오. 어렵지 않소. 살만 하우! 고려인이오. 고려인!"

 

송인수(83) 할머니 말씀이다. 고려인이오. 고려인이라고 말씀하신 뜻은 우리 문화가 그렇다는 말씀으로 들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눈물이 핑돌았다. 문밖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시는 할머니와의 헤어짐이 아쉽다. 곧 한 번 찾아뵐 생각이다. 이번에는 한복을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어드릴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한복을 한 벌 전해드리고 싶다.

 

 

 

  
▲ <아나톨리 김아 21>번지라 쓰여있다. 주소번지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다. 아나톨리 김거리의 21번지를 뜻하는 표시다.
ⓒ 김형효
<아나톨리 김아 21>번지라 쓰여있다.

그리고 할머니가 사시는 마을 인근의 거리를 지나치는데 김보바씨가 고려인의 이름을 딴 거리 울리짜 아나톨리 김마(УЛ. А.КИМА)란 거리를 소개해 주었다. 몇 개월 전 필자는 크림자치국의 수도인 심페로폴에서 발견한 한 거리의 이름에 고무되어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은 '김거리'였다. 물론 나중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실망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확인된 거리의 이름을 소개한다. 우리 동포 김아나톨리의 이름을 딴 "울리짜 아나톨리 김마"(УЛ. А.КИМА)란 거리다. 러시아어로 울리짜란 거리를 뜻한다. 대로는 쁘로스빽트, 그 다음 규모가 울리짜다.

 

  
▲ 거리에서 만나 고려인에게 길을 묻는 김보바 씨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고려인에게 길을 묻고 있다. 알고보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분의 딸 집을 찾는 것이어서 함께 동행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 김형효
거리에서 만나 고려인에게 길을 묻는 김보바 씨

사실 여러 차례 현지 고려인의 안내를 받아 여행을 하고 싶었으나, 쉽지가 않았다. 이번 여행도 초대받아 함께 가는 것일 뿐, 본격적으로 부탁해서 취재를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전적으로 김보바씨의 배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가 고려인들을 만나고자 하는 것을 그가 알아채고 그가 직접 운전해가면서 소개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나톨리 김"이 고려인인 것은 확실하나, 아나톨리 김이란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김보바씨도 그의 행적을 모른다고 했다. 후일 필자가 가능하면 송인수(83) 할머니를 다시 찾아뵙고 그의 아들을 만나게 되면 자세히 알아볼 생각이다.

 

예빠토리야에서 오후 1시에 길을 나서 늦은 저녁 9시까지 김보바씨의 안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