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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남북 응원하던 고려인들도 바라던 한국 16강 진출!

by 김형효 2010. 6. 23.

 

 

나이지리아와 한국의 축구경기가 열린 6월 22일 밤 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에 크림지역 고려인 아이들이 모였다. 모임은 축구경기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유명한 휴양지인 이곳에 인근 농촌지역 고려인들이 바쁜 농사철이라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 고려인 협회장에게 아이들의 휴가를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아갔다. 고려인 아이들 중에는 필자와 구면인 아이들이 많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울려 배구를 하다가 축구공을 갖고 놀기도 했다. 초대받고 그들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했다. 나는 20여명의 아이들에게 "하나된 민족, 통일된 조국"이라는 붓글씨를 써서 선물로 가져갔다. 그들은 글씨를 읽지는 못하지만, 한글이란 사실은 알아보는 정도다. 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더니 서로 받으려고 다가섰다. 고마운 일이다.

 

 

 

  
▲ 크림지역 고려인 아이들 크림지역 고려인 아이들이 모였다. 필자에게 인사말을 권해서 빈손으로 갈수 없어 "하나된 민족, 통일된 조국"이라는 붓글씨를 선물로 전했다.
ⓒ 김형효
크림지역 고려인 아이들

대체 저 글씨가 뭐라고 하는 식의 반응이라면 참 멋쩍고 아쉬운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특별한 선물로 여기고 받아주었고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가 설명을 곁들여주었다. 나중에 한두 장 더 줄 수 없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다른 고려인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고 해서 건네주고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곧 그들에게 기념촬영을 청했다. 그곳에는 지난 노동절 행사 때 소수민족 행진 때 고려인대표로 행진을 함께했던 형제 류아르춈(61세)씨와 류알렉세이(56세)씨가 함께했다. 기념촬영 중에 모스크바에서 온 류알렉세이씨가 식사를 하자면 아이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식사를 위해 모두 둘러앉았다. 그 자리에서 월드컵 축구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 우크라이나 뼤르쉬예 텔레비전 경기 후 분석 우크라이나 공영방송인 뼤르쉬예 텔레비전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 경기 후 경기 분석을 하고 있다.
ⓒ 김형효
우크라이나 뼤르쉬예 텔레비전 경기 후 분석

  
▲ 월드컵 B조 16강 진출팀 월드컵 B조 16강 진출팀이 표로 보여지고 있다. 승점과 순위가 공개되며 박지성, 박주영 등의 이름이 몇 차례 거명되었다.
ⓒ 김형효
월드컵 B조 16강 진출팀

물론 필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르춈씨의 사위인 세르게이가 "북한 7:0, 남한 4:1 아이구 나는 인쟈 못 보우!"라고 말을 해서 안타까웠다. 지난 그리스와의 경기, 북한과 브라질 경기 결과를 이야기하며 자랑을 했었던 후로 나눈 이야기다. 그런데 필자는 그 이야기에 놀랐다. 그때만 해도 관심 밖의 일처럼 무관심했었기 때문이다.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도 서로 몰래 관심을 갖고 보았던 듯하다. 그런데 하필 크게 패한 경기였던 것이다. 알렉세이는 월드컵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는 모양으로 중국이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언뜻 꺼냈다. 그때 그의 형인 아르춈씨가 아니라고 나선다.

 

물론 세르게이도 함께 말을 이어간다. 그들의 표현을 옮기면 "한국도 북한도 아주 작은 땅에서 모두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며 마치 타인들에게 자랑하듯 자신들끼리 자부심을 보여주어 순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렉세이도 인정하며 즐거워했다.

 

우크라이나에 와서 처음으로 운동경기를 화제로 즐거움을 공유한 시간이다. 대화를 마칠 시간 속으로 오늘밤 꼭 이겨서 16강 진출 소식을 전하고 싶어 속으로 기원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고려인 동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 크림지역에 아이들 이름맞추기 게임중 크림지역에 아이들 이름맞추기 게임중이다. 뒤에는 20여명의 아이들이 호각을 든 채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호각을 분다.
ⓒ 김형효
크림지역에 아이들 이름맞추기 게임중

  
▲ 호각을 받아든 아이들 좋은 친선 게임 같다. 호각을 받아든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다.
ⓒ 김형효
호각을 받아든 아이들

특별한 행사를 갖는 것은 없었으나 저녁 식사 후 작은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씨가 필자를 소개하고 인사를 하라했다. 이미 행사 전 서로 인사를 나눈 상태다. 만나서 반갑다며 붓글씨에 쓴 의미를 전했다. 이어서 필자에게서 배운 한글학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한국어로 처음 만나 인사하는 법을 보여주었다. 행사를 시작하며 김플로리다 바실리예브나는 모두에게 피리나 호각을 나누어주었다.

 

왜 그것을 나누어주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잠시 후 해소되었다. 아이들 한두 명을 불러내어 등을 돌리고 서게 한 후, 등 뒤의 다른 아이들 이름을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서로 만남이 쉽지 않은 고려인 아이들이 나중에 서로 알고 지내게 하려고 이름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는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또 한 번 뭉클했다. 그들은 일주일을 함께 지내며 게임도 하고 해수욕도 즐긴다고 했다. 물론 예빠토리야 여행도 할 것이다.

 

멀고 먼 거리에 외롭게 서 있던 고려인들이 조금씩 조국을 인식할 길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오늘 16강 진출로 다시 한 번 그들과 웃으며 보게 되었다. 서울광장의 빛나는 응원전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고려인들이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며 또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갈 것 같아 더욱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