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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내가 만난 세상 이야기

지나온 길, 돌아갈 길을 생각한다

by 김형효 2010. 10. 22.

 

 에빠토리야 한글학교 남은 임기 4개월 15일

 

  
▲ 첫 발을 딛던 날 2009년 3월 4일 늦은 밤 우크라이나 보리스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만큼 모든 것이 막막했다.
ⓒ 김형효
첫 발을 딛던 날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일상이다. 그러나 그도 혼자만의 마음가짐이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우크라이나에 온지 어느덧 19개월 15일이 되었다. 이제 남은 활동은 4개월 15일이다. 그간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 마음과 정성으로 다한다고 한 일에 어떤 성과가 있는가? 사색이 깊은 가을이다.

 

오는 11월 중순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정규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정수리학교에서 한글 올림피아드가 열린다고 한다. 정수리학교는 이미 소개한바 있다.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예빠토리야 한글학교에서도 2명의 학생이 출전한다. 두려움이 아닌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노력에 비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는 특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 예빠토리야 제일학교에서 지난해 예빠토리야 제일학교에서 수업할 때 모습이다. 지금은 아련한 그리움이다. 저들의 열의를 키워주지 못한 자괴감도 깊다.
ⓒ 김형효
예빠토리야 제일학교에서

하지만 경쟁이 일상화된 한국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곳 아이들만의 특성상 심히 걱정할 일은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상처 받을 일은 없어 보여서다. 그러나 이곳에서 1년이 넘게 그들을 가르쳐온 필자로서 외부에서 처음 그 결과를 판정받는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다. 핑계거리라도 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일주일 고작 4시간의 수업으로 1년을 넘겼다. 거기다가 공식적으로 4개월의 방학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10개월 정도 수업을 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수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학생은 한 사람도 없다.

 

이들에게 없는 경쟁심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내 몸에 박힌 옹이처럼 못된 습성이 있다. 그것은 한국병일지도 모르는 '비교 평가'다. 그 안에 내재된 관성처럼 때로는 평가가 아니라 강요하는 습성이 문제다. 처음 20여 명이던 학생들이 이제 5명 정도다. 그도 이런 저런 이유로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 주말에도 그들 중 2명의 학생이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고 수업 자체가 한 주 미루어졌다. 안타까운 마음만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내 안타까움의 대상이 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민 손길만 무색한 일이 되고 만다.

 

  
▲ 수업을 마친 어느날 필자의 아파트 필자가 식사 초대를 해서 한국관련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머나먼 조국을 바라보고 있는 관심이 고맙다.
ⓒ 김형효
수업을 마친 어느날 필자의 아파트
  
▲ 지난 봄날이다. 수업을 마친 주말 화창한 들판에서 봄날의 기억을 담아두었다. 저들의 저 밝은 모습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김형효
지난 봄날이다.

이제 반환점을 돌고 돌아 모든 여정을 정리해야할 시점인 듯하다. 남은 4개월은 그동안 학습한 내용의 반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에게 한글 수업이 마치 흥미로운 하나의 놀이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그 흥미로운 놀이라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몰입해주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크다. 내게는 그런 능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는지 자괴감도 크다.

 

가끔씩 이들의 무성의한 수업 태도에 거리감을 느껴 귀국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곳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필자가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되는 것은 귀국을 고민할 때 아픈 마음의 기억 때문이다. 최근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까레야다 이후 수도 키예프에 일 때문에 2주간 머물렀다. 이곳 고려인과의 문화적 차이를 크게 느끼면서 우리가 이들 동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민족복원'이란 말을 혼자 떠올려 보았다.

 

 

 

  
▲ 흑해 바다 갈매기가 날고 있다. 저 바다 갈매기처럼 날고 싶다. 아니 사해의 동포들과 함께 모두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막연하고 막연한 꿈을 꾸고 싶다. 꿈을 꾸면 현실이 꿈이 될까?
ⓒ 김형효
흑해 바다 갈매기가 날고 있다.

지금 사해에 동포가 있다. 아주 먼 세월 저편에서 부랑자처럼 떠돌았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진정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민 뿐 나의 걸음이 내 기대대로 될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어렵다는 결론을 안고 내가 그들을 향해 갈 수 있는 한 걸음 걸어갈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일은 무엇일지 그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결국 그들만이 그들을 위해 선택하고 그들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세월은 바람처럼 무심히 잘도 흘러만 간다. 이제 그들과의 헤어짐에 마음이 무겁고 두렵다. 저 멀리서 어머니가 손사래치며 오라는지 가라는지 모를 그런 아련함이 내 앞에 길을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