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떠난 12일간의 유럽여행 11] 루마니아에서 사람의 삶을 생각하다.
기차여행의 피로감을 안고 오라데아에 도착했다. 오라데아는 인구 20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다. 11세기경 헝가리 왕 라드슬라스가 건설한 도시라 한다. 체코보다는 헝가리와 더 가까운 루마니아 서부의 국경 도시이다. 1944년 루마니아, 러시아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을 때까지는 헝가리에 속해 있던 도시라 한다. 시내 외곽에 위치한 역에서 내려 20여분 걸었다. 비교적 깔끔하고 조용한 느낌의 시가지가 나타났는데 초행의 여행자에게는 평온한 느낌에 오래 머물러도 좋을 것처럼 느껴졌다.
차우세스쿠의 철권통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평온한 분위기는 정겨움을 더했다. 관광 안내책자에서 본 바에 의하면 오가는 여행자들이 많지 않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만했다. 그것은 알려진 곳을 찾는 여행객의 심리상 유명한 사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에 명상에 어울리는 도시라는 이름보다는 휴양소 같은 느낌이 많았다. 낯선 나라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라면 먼저 그 나라의 수도를 중심으로 여행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여행은 낯선 국경도시다.
무덤 위에는 정적만 감도는 것이라서 이처럼 조용할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처가 루마니아인의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으리라. 조용하고 한적한 루미나아 서부 도시, 혁명의 진원지였던 티미소아라와도 가까운 오라데아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유럽에 수많은 교회당의 첨탑들은 과거사에 상처의 흔적이 그만큼 깊다는 반증은 아닐까? 사실 오늘날 유럽의 성공 이면에는 수많은 피를 본 전쟁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오라데아 거리를 걷다가 한 공산주의자의 동상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60대 전후로 보이는 한 노인이 중국인인가 물어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북한이냐? 남한이냐? 묻는다. SOUTH KOREA라 말했더니 거긴 자본주의 국가 이잖은가? 반문한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동상의 주인공을 가르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는 루마니아의 최초의 공산주의지도자였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와 현재의 루미니아 정치와는 너무 먼 역사적 거리가 있다. 필자의 여러 노력에도 그의 흔적은 찾아내지는 못했으나 그가 초기 루마니아 공산주의 운동에 기여한 인물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니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자랑스런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품은 자랑으로 낯선 나라 여행객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역사는 전체적이면서 철저히 개별적이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현실에서 확연히 해석이 달라지니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동유럽과 우크라이나에서 본 진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비에트연합에의 향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라고 그들 나라의 현실이 자본주의의 물결 속으로 향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더욱 더 그리운 옛 고향 같은 아련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경험한 바 없는 그들의 시대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이 자랑스럽게 낯선 여행객에게 선전하려는 소비에트연합과 자신의 나라에서 있었던 "코뮨"의 역사! 우리에게는 위험한 역사적 궁금증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억할 자랑인 그것은 무엇일까?
21세기가 열렸고 더 활짝 열린 것은 자본주의 힘의 논리에 의한 시장의 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고르게 잘 사는 행복한 사회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 것일까? 불혹을 넘긴 나이에 깊은 사색이 반복되는 날들, 여행지에서도 그런 사색은 멈추지 않는다. 동유럽 국가들에서 그들이 버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적 시스템이후에도 그들에 불행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것들이 그들을 만족시켜 줄 것인가? 그들은 장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방인의 눈에 잡힌 그들은 불안한 채 혼잡한 네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같다.
마치 오래된 낡은 집을 부수는 데는 힘을 합쳐 없앴지만, 새로운 집을 지을 방법이 없는 상태와 같았다. 누구도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로 권력의 하수구에 서로 머리를 먼저 집어넣는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탐욕으로 가득한 자들의 미래에 청사진은 자신의 앞길을 닦는 것 그 이외에는 없는 듯하다. 그러니 성과 없는 집권의 반복이 이어지고 오래된 과거의 역사를 팔아 연명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유럽은 오래된 과거 역사를 파는 관광산업이 무너진다면 당장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 같다. 어찌 보면 신흥 산업 국가들인 아시아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보물단지 같이 느껴졌다. 여행지 어느 곳을 가도 아시아는 출렁이는 용처럼 보였다. 수많은 한국인들 그리고 중국인, 베트남 사람들이다. 한적한 시내를 걸으며 분위기 좋은 커피숍도 보았고 맥도날드 같은 음식점도 보았다.
사실 유럽이나 한국이나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다면 작은 도시는 아니다. 기본적인 유동인구가 있다는 반증이다. 많지 않은 여행객이 있다는 도시에도 호텔이나 멋진 갤러리가 있는 것을 보면 만만한 도시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다가 기타 줄을 튕기며 웃고 있는 중년의 루마니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곧 한 문구점으로 날 불렀다.
전혀 거리낌 없이 날 초대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곧 커피를 준비해 주었다. 동유럽에서 처음 경험한 환대다. 마치 한국의 한 거리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과 같았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타연주를 잘하는지 물었다. 그냥 친구와 어울려서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고 한다. 좋은 분위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들의 초대에 감사의 인사로 문구점에서 루마니아 전통 종이를 샀다. 그리고 이메일을 교환하고 나중에 그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다.
여행을 끝마친 지금 루마니아의 낯선 도시의 친구들과 두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들이 어떤 체제에서 살았던 내가 어떤 곳에서 살던,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독재자들과 권력자들은 같은 공통점 속에 산다. 사람들은 말한다. 차우세스쿠는 김일성을 배워 궁을 지었느니 체제를 공고히 했다고···.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모든 권력자들은 공통적으로 장기집권을 위해 헌신하고 권력의 세습을 기도한다. 필자는 권력자의 입으로 또 다른 권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짜르가 있었다. 처칠은 신사였을까? 모두 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강대국의 압제자 뿐 아니다. 그 시대는 그렇게 슬픈 시대였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이란 화두로 역사를 이끌려는 사람이 있다. 지금 그가 향하고 있는 것은 슬픔을 간직한 채 과거로 발걸음을 옮겨 딛고 있는 것과 같다.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에서 슬픈 혁명의 역사를 간직한 루마니아를 보았다. 사색하기 좋은 거리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하룻밤 이틀을 걷다가 그들의 수도인 부카레스트로 가기 위해 다시 밤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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