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사는 세상/나의 여행기

상그릴라(SHANG RI-LA)의 땅, 네팔에서(56)

by 김형효 2012. 12. 29.

자연에 순응하며 걷는 사람들

 

어둠이 내려선 각배니 차가워진 몸을 달래는 데 안성맞춤인 것이 네팔 전통차인 찌아다.
찌아는 처음부터 차가운 물에 넣고 끓인다. 그냥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끓인 찌아는 갈로(검은)찌아, 블랙티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둗 찌아(Dudh, 우유)라고 하는데 물과 우유를 섞어 끓인 후 우유가 끓기 시작할 때, 찌아를 넣어 끓인 후 채로 걸러 마시는 방법과 처음부터 우유와 찌아, 물을 섞어 끓여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일행은 모든 일과를 마치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몸을 깨끗이 하였다. 다음날 하산을 준비하며 찌아를 마셨다.
그때 건띠(소방울)소리가 들린다. 양떼를 몰고 목동이 하루 일과를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수백 마리의 양떼가 각배니 마을 입구를 장악했다. 멋지다. 자연 속에 또 다른 자연을 만나는 느낌, 살아있는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급하게 일행에게 사진을 촬영하시라 전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양떼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닭장에 계란도 있었고, 염소도 소도 돼지도 있었다. 풍족한 살림이 아니라도 시골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모든 것이 대형화 되면서 전통적인 시골 풍경도 달라졌다.

야크 뿔을 집 앞에 걸어놓았다. 각종 기원의식에 쓰이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오래된 성곽을 따라 걷듯이 한 떼의 양떼가 지나갔다. 그리고 몇 차례 또 다른 양떼들이 그 길을 지났다. 각배니 인구의 몇 배는 되는 숫자의 양들이다. 각배니와 묵디낫, 좀솜 사이에 헐벗은 산에서 땅을 붙들고 낮은 포복을 하듯이 자라는 식물들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드높은 영혼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각배니 사람들의 삶이 곧 각배니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지만, 사막화된 산등성이 수많은 풀들이 점처럼 드넓게 퍼져있다. 그 산등성이 목초들은 놀라울만큼 진한 향기를 뿜는다.
기자는 쑥 향을 맡으면서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진하고 좋은 향을 느꼈다. 그 향기를 먹고 자란 염소와 야크 등은 네팔인들의 주식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들이 깊은 영혼을 담는 기원의식에 사용되는 제물이 되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 일행은 찌아도 마시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좀솜 공항에서 경비행기로 포카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도중에 마르파를 다녀올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각배니와 좀솜 사이에서 큰 난관에 부딪혔다. 전날 히말라야에 내린 강한 빗줄기로 협곡에 물이 불어 차가 오가던 길이 무너졌다. 사실 이틀 전 각배니를 향할 때도 그 길의 계곡을 건너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물이 더 불어나 골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다.

한참을 등산화를 신은 채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모두 허사였다. 하는 수없이 등산화를 벗고 어깨에 멨다. 세찬 물살을 가르고 건너다 등산화 끈이 풀려 하나가 떠내려갔다. 낭패다. 있는 힘을 다해 세찬 물속을 달려 다른 한 켤레를 손에 쥐었다.

수많은 양떼들이 산등성이 풀과 작은 나뭇잎들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묵디낫으로 가는 스님들도 갈길이 바쁘다. 그들도 자연에 순응하며 게곡을 건너기 위해 맨발을 하고 걷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물속의 파돌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 발바닥이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하나의 난관을 헤친 기분이다. 다소간에 안도감을 갖고 다른 여행자들의 모습을 살피며 휴식을 취했다.
멀리서 한 대의 차량에서 내린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틀 뒤 있을 묵디낫 사원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는 스님들이다. 그들도 하나같이 신발을 벗고 바랑을 메고 길을 재촉했다. 모든 여행자들이 자연의 움직임에 어쩔 수없이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움직였지만 물길하나 건너기 위해 애쓰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배도 고파왔다. 우리는 이틀 전 각배니와 좀솜 사이의 티벳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을 함께하는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김치를 꺼내고 참치 캔을 따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한 번 길들여진 우리네 음식의 위대함에 탄복하였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그 어느 곳에나 나름의 음식이 있고 그들 나름 전통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여행이다.

아스라한 길이다. 멀리서아지랑이라도 피어오를 듯 아련하다.


그러나 지치고 힘든 몸을 달래는 데는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입맛을 따르는 것도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일행은 수도승처럼 길을 따라 길에 승복하고 자연에 길을 따라 배우는 여정을 소화해내면 막 내려앉은 해저물녘에 좀솜 공항 인근에 숙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에서 일하다 온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어찌 알았는지 우리 일행 두 명이 전주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숙소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