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의 아침이라 해를 볼 수도 없었다. 앞산을 빗겨서 흘러드는 빛살이 밝혀주는 것으로 아침이 왔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밤늦게 게스트하우스(산장) 뒷산에 불이 나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모두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불구경들을 하였다. 400미터 정도는 더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불길이 잔풀들을 태우고 있으니 겁이 났다. 그런데 네팔 사람들의 느긋함에 이상한 생각만 하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침에 할 수 있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 불길은 다 사그라들고 생각만큼 불길이 번진 것도 아니다. 그 불길도 고소증(?)에 걸린 것일까?
그와 대화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많이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는 일일이 응답하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피상적인 질문과 의례적인 인사치레 정도의 대화에 머물렀다. 아무튼 그의 산장은 제법 규모도 있고 손님들도 많은 듯했다. 많은 네팔사람들이 한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것은 그런 성공 모델들이 있기 때문이다. 샤브르벤시 건너편의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들어간다. 사실 전에 걸었던 안나푸르나 토롱라(5,416미터)코스나 포카라를 거쳐 묵디낫(3,800미터)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경로다. 그러나 낯선 고지의 산행은 초보등반자로서는 항상 부담스러운 것이다. 앞서 언급한 토롱라는 15박 16일 일정이고, 묵디낫은 8일일정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며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머물렀던 산장 뒷산으로 꾸불꾸불 산허리를 감고 오르는 뱀처럼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길에 대해서 혼자 생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길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도 있었구나. 우리가 그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을 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자각과 함께 다음 시편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길 1 돈의 힘을 믿고 길이 있었네. 깊은 골짝과 그처럼 길에 선 사람이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며 사람을 믿고
숨찬 일상은 네팔 사람만의 삶도 아니고 또 그 외의 어느 나라이거나 어느 계층에 것만도 아니다는 생각이다. 거기 뱀이 휘감고 오르는 듯한 산길을 오가는 버스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렇게 상존한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길처럼 그 위험한 일상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성취라는 명목만을 내세우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혹한 삶 자체가 천길낭떠러지와 같은 위험 속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일 수 있음을 현대인들은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여유를 잃은 삶이란 삶이라기보다 죽음에 가깝다. 육신은 시한부이다. 그 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육신을 자기 소유라고 해서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만 하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히말을 걷는 여인들이나 아이들 그들이 바쁘다고 그 걸음만 재촉하거나 도망치려고만 한다면 그들의 생존은 막막할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히말라야를 닮아야 가능한 것이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품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만 그 고산지대에서의 생존은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저런 사색은 산행을 하면서 갖는 특권이다. 입산의 의미란 그 산과 호흡하며 그 산을 벗하며 사는 사람들을 배우는 것이고 어쩌면 그 산에 주인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과 이해가 아닐까? 그렇게 생뚱맞은 나그네의 정신 차리기 걸음으로 컹짐(khangjim 1,800미터)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이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작은 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쉬면서 찌아를 주문하고 주인이 먹어보라고 준 보리로 만든 빵을 먹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런 친절과 우리네 동네 형님같이 닮은 티벳계 네팔인들을 보면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아쉬운 만남이라고 해야하나? 헤어짐이라고 해야하나? 살아서 다시한번 찾을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여행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의 걷기 여행 > 랑탕 히말라야 6박 7일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4) (0) | 2008.02.21 |
---|---|
랑탕(rangtang) 히말라야를 가다.(3) (0) | 2008.02.19 |
신성의 땅, 네팔에 가다(7)-랑탕 히말라야를 걷다. (0) | 2008.02.15 |
[스크랩] 기원하는 사람들의 땅, 랑탕 히말라야! 티벳에서 떠나온 사람들의 땅. (0) | 2007.04.28 |
[스크랩] 거네스 히말라야와 코사이 쿤드 그리고 랑탕 히말라야의 모습 (0) | 2007.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