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곡 위의 거센 바람과 함께 걷는 사람들의 미소
팡상(pangsang)게스트하우스를 떠나 다시 오르막길을 계속 걸었다.
한쪽은 코사이쿤드의 눈덮인 산등성이가 가까이 보였고 그 사이에는 천 길 낭떠러지의 협곡이 있었다.
반대편의 거네스(코끼리)히말라야의 만년설은 이제 자꾸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가끔씩 당나귀를 몰아 짐을 나르는 일행이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도 눈에 띄지 않는 한가로운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고요하다.
고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게 불지만, 낯선 이방인의 귀에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자연은 그처럼 고요한 영혼이 되어 우리 안에 스며드는 마력이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두차례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보았던 수많은 당나귀 행렬은 볼 수 없는가?
그렇다. 나중에야 그 궁금증은 서서히 풀렸다.
안나푸르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나 이곳 랑탕은 인구밀도가 낮다.
그러니 사람들의 행렬도 많지 않은 것이다.
림체 언덕(rimche danda 2,600미터)의 길고 긴 협곡 위를 아슬아슬 걷는다.
거대한 금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스라한 언덕길이다.
세찬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천 길 낭떠러지에 무덤을 짓고 말 것처럼 무시무시한 협곡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잊어버렸던 어린 날의 어머니와 시골 아낙들의 미소와 만났다.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논두렁 밭두렁 주변에 걸터앉아 자상한 미소를 짓던
맑은 눈빛의 아낙들의 미소는 이제 그리 흔한 미소는 아니다.
낯선 땅에서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는 엉뚱함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려운 일상이 나의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조국, 어린 시절의 고향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 바로 네팔 고산지대 사람과 자연이다.
세찬 바람과 만났다. 산모퉁이를 돌아가기 전 안정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티벳계(몽골리안)아낙들이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일상 서툴지 않게 주고받는 나의 회화 실력 덕분에 농을 걸기도 한다. 날보고 어디에서 온 사람이냐고 묻기에 네팔의 미개방지역인 무스탕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곧잘 네팔인들과 주고받는 농담이다. 그들은 다시 묻는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서 말은 배웠느냐고 묻는다. 나는 네팔의 산도 바람도 어린이도 어른들도 모두가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듣고 그들이 함께 웃음 짓는다. 히말라야 산처럼 맑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함께 길을 재촉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 나와 나의 가이드 단두가 얼만큼 갔을까? 그 아낙들의 뒷 꽁무니가 자취도 없다. 바람처럼 빠르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필자의 걸음도 제법 빠르다고 하는데 그들은 오간 곳 없이 멀어졌다.
오늘 머무르기로 한 곳은 라마호텔(2,400미터)이다. 우리 모두는 티벳의 정치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기억할 것이다. 라마는 스님을 뜻하는 티벳어이다. 지명이 라마호텔이다. 라마호텔이라는 지명 유래는 오래전에 이 지역에서 한 사람의 명망을 얻는 스님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 작은 손님방을 하나 만든 후에 라마호텔이라는 지명이 굳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트레킹을 시작한 지 8시간 만에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천천히 코사이쿤드 지역과 거친 협곡 그리고 거네스 히말라야를 살펴보며 온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라마호텔에 가까워졌다. 서서히 이어지던 내리막길 저 너머로 만년설의 산등성이 보인다. 그곳이 랑탕(스승의 가슴)히말라야라고 가이드 단두가 말했다. 우리는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다음 간단히 씻었다.
잠시 후 랑탕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라마호텔 뒤편 길을 올랐다. 산속 농부가 젖소를 키우는 축사가 있었다. 그가 아기 젖소를 아이를 안듯 안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두와 둘이서 사진 촬영을 반복하는 오후 5시 30분이 지나며 랑탕 히말라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산장 주인에게 물어서 자리를 잡고 랑탕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멋진 히말라야를 카메라에 담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하지만, 그 기대에 보답하지 않는 흰 구름과 검은 구름 서로 리듬을 맞추듯 엇박자를 놓는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기대했던 붉게 물든 히말라야를 담지는 못했다.
산장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주문해놓고 곧 티벳 사람들이 마시는 술을 주문했다. 밥보다 술이 먼저 준비되었다. 티벳 창이다. 우리네 막걸리와 흡사한 티벳 창은 막걸리보다는 좀 더 순하다. 술을 잘 못 마시는 필자도 편히 마실 수 있었다. 이어서 식사를 하였고 계속 창을 몇 잔 더 마셨다. 산장 안에 레스토랑은 같은 장소에 투숙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가 끝나고 내가 앉아있던 난롯가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나는 짧은 일본어지만 와따시와 강꼬꾸진데스라 답했다. 바로 그때 한 일본인 여성이 한국 노래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다 말하고 그들의 청을 받아 아리랑을 불렀다.
잠시 후 그 여성은 자신도 한국 노래를 할 수 있다면서 메들리송을 불렀다. 그가 부른 노래는 “사랑해”라는 노래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거대한 히말라야 아래 깊은 산중 계곡에서 악연의 일본사람에게서 듣는 내 조국의 노래는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어설픈 취기가 그 흥을 돋우고 있었다. 깊어가는 밤을 따라 밤하늘 별빛이 자기 자리를 찾느라 바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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