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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을 느낄 수 없는 계곡에서 새벽별을 보았다. 새벽별들이 잠에서 깨어나 반짝이며 여명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무수하고 찬란한 별을 밟으면 그 별 밭에 눈밭을 밟으면 발이 빠져들듯이 발이 빠져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나는 아무도 잠깨지 않은 아침에 히말라야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어두컴컴한 계곡의 밤은 찬란한 햇살은 비추지 않았다. 해가 뜨면서 대류의 작용으로 안개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돌며 랑탕히말라야를 휘감고 있었다. 햇살을 바라보지 못하고 밝아오는 산중이다. 나의 가이드 단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와 너무나 닮은 게스트 하우스 사장인 쉐르파 형님이 끓여주는 찌아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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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 사색에 잠기며 히말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단두가 일어났다. 우리는 전날 해질 무렵 사진을 찍으려고 갔던 장소에 가서 다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만년설로 가득 덮힌 랑탕 히말라야의 당당한 모습은 천년만년 지고지순한 자연의 경이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장의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한 후 우리를 곧 아침 식사를 청했다. 가이드 단두는 달밧(달은 죽이나 국물과 흡사하고 밧은 밥을 말한다)을 주문했고 필자는 로띠와 버섯스프를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 다시 찌아를 마셨다. 그들의 주방에는 티벳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면서 정치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사진과 함께 기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는 보통의 티벳계 네팔인들 특히 고산지대 사람들의 주방이나 가게 등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에게 유일한 존재의 근원인 듯하다. 과거 우리가 암울한 시기 상해임시정부를 세웠을 때 우리의 모습이 그랬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티벳인의 고통과 이를 극복하기위한 티벳망명객들의 네팔에서의 삶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네팔에서 살면서 네팔 정부에 내는 세금보다 망명정부에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라마호텔 사장부부도 월수입에 5%는 네팔 정부에 세금을 내고 10%는 티벳망명정부에 지원금으로 내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일제시대 우리 국민들이 냈던 독립자금과 같은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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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국, 빼앗긴 조국, 그런 티벳 사람들에게 깊은 산중에 달라이라마의 미소는 그들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유일한 희망의 불씨이리라! 더구나 티벳과 등을 맞대고 있는 랑탕 히말라야이고 보면 더욱 마음이 아린 일이다. 랑탕 히말라야의 하늘은 하나다. 저 하늘을 수놓는 구름과 솔개떼들은 서로 너나들이 하듯 넘나들며 그들의 조국 티벳땅을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색 속에서 그들이 신성의 땅 네팔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산과 들에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던 솔개와 독수리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솔개와 독수리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조장(鳥葬)을 한다는 티벳의 장례풍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조상들은 이미 저 하늘의 솔개의 영혼이 되고 독수리의 영혼이 되어 자신들의 조국과 자신들의 후손들을 굽어보고 랑탕 히말라야를 넘나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길을 가다 멈추다 반복된 휴식과 반복되는 걸음걸이다. 한참을 걷다가 넓은 평지에 좌판을 벌인 작은 산장에서 찌아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2,769미터의 강변산장이다. 여지없이 그곳에도 오방천이 만국기처럼 날리고 있었다. 영혼을 신에게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영혼이 신의 영혼처럼 맑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히말의 신비를 벗하고 길가는 나그네의 영혼도 절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하늘도 산도 지상의 모든 것과 하늘을 나는 새도 달도 별도 온통 신비속인 히말라야 계곡이다. 마치 신의 맑은 영혼의 쉼터인 듯하다. 지난해 겨울 엄청난 눈이 내린 이곳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쓰러져 길에 터널을 만들며 쓰러져 있다. 오래된 나무들을 감싸고 있는 이끼 그리고 그 이끼 위에서 싹을 틔운 식물들, 화초들 어찌보면 절망처럼 엉킨 것 같기도 하지만, 처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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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이 녹고 있다. 하늘을 향해 실오라기 같은 구름이 피어오른다. 저 멀리 앞산은 중국의 산들처럼 수많은 봉우리들로 하늘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숲이 우거진 산들은 3,000미터 전후의 산들이다. 그러니 저 건너편도 내가 걷고 있는 이곳도 3,000미터 전후라고 보면 된다. 산이 높으니 계곡도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줄기 탓에 계곡이 더욱 깊어지리라. 그런 깊이와 높이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그들은 신성을 보게 되고 자신도 그런 깊이가 되고 높이가 되어가는 것이리라. 계곡을 벗어나 고다다벨라(ghodatabela, 말의 쉼터, 2,992미터)에 다다랐다. 다시 단두와 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산장의 주인은 타망족이었다. 산중에서 타망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타망족은 지금도 일처다부제를 유지하고 있는 종족이다. 그들은 한 여성이 네 명 다섯 명의 남성과 결혼을 한다. 대개의 경우는 제산을 지키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도시의 타망족들도 모두 그런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지금도 네팔의 특정 지역과 특정 종족은 그런 결혼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라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평범한 산장을 운영하는 그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질문을 하진 않았다. 산장지기 딸과 아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궁금해졌다. 대개의 네팔에 산중 사람들처럼 그들도 이미 큰딸과 아들은 카트만두에서 공부를 하고 잇다고 했다. 필자가 샤브르배시에서 이틀째 걸어온 길이니 그들이 카트만두까지 가려면 최소 3일이 걸린다. 그들은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와서 산장지기로 있는 부모님을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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