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걷기 여행/안나푸르나 12박 13일의 기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4)

by 김형효 2008. 4. 5.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4)
정상을 향한 멈추지 않는 질주! 무섭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 길을 열어왔는가? 
어쩌면 내가 견뎌내어야 할 업이 이리 많은 것이어서 나는 이 길을 나서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만이 바르게 쓰임을 하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것은 나를 위한 쓰임이 아니라 빚진 나를 갚아나가는 길이리라. 내가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빚진 것들을 갚아내기 위해 그런 과정이 필요한 일이리라. 
그것이 현재의 일이든 전생의 일이든지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은 분명 내가 갚아야할 그런 업들로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미치는 것은 그만한 업이 내게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이겨가야 할 것인가? 히말라야에서도 두 번째로 높다는 안나푸르나 정상을 바라보며 나를 정화해내고 저 세속의 공간을 향해 저 토롱-라 파스를 넘어서야 하리라. 그리고 다시 이 길을 찾을 때가 있다면 좀 더 차분하게 넘어서리라. 

정상이 보인다. 
토롱-라 파스 정상에는 조그만 오두막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정상의 움막을 보고나서 제자리에 멈춰 섰다. 불과 10여 미터 전방이지만, 더 발걸음을 옮겨 딛을 수가 없었다. 
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지나온 세월을 다 씻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하염없이 하염없이 저 깊디깊은 심연 속을 다 뒤집어엎기라도 할 것처럼 깊이 맺힌 눈물을 소리 내어 울었다. 
앞서 걷던 다와가 긴장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놀란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없이 그냥 막대지팡이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소리내어 울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 딛기 시작했다. 
앞서 걷던 포터들이 토롱-라 정상 움막 안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미 정상에 올라 움막 안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움막 앞에 배낭을 부려두고 잠시 불을 쪼였다. 5416미터 토롱-라 파스를 알리는 알림판을 보는 순간 내내 날 괴롭히던 어지럼증이 일시에 가신다. 

바람이 세차다. 
앞뒤 좌우로 세찬 바람이 정상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정상을 향해 달음질쳐 오는 듯하다. 정상을 향한 멈추지 않는 질주! 무섭다. 
세속에서 그리도 힘겨운 것들이 모두 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들이었는데, 이 깊은 산중, 높은 산봉우리에서 조차 다시 그런 모습과 대면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세상의 모든 기운들이 정상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세속적인 승부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 고독한 산봉우리 세찬 눈보라와 바람 속에서 홀로 의연히 서서 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로 그 모든 기운들이 날 비우는 맑음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아! 얼마나 냉랭한 희열인가? 정신이 바짝 오금을 당겨오는 듯하다. 그때 전날 함께 어울렸던 미국인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깊은 사색을 잠재워버린 것이다. 

 

 

토롱-라 패스 정상(5416미터)에 선 필자, 불과 5분에서 10분여 머물렀던가? 멀리 바라보이는 고산의 기운을 받아안고 내리막길을 나섰다.

나는 그의 디지털 카메라를 받아들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도 한 장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가 사진 찍어달라는 청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으리라. 그 정상에 모습을......, 
사실 하이캠프에 오르기 전날부터 전기가 이틀 동안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가급적 촬영을 자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산 풍경을 놓치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댄 탓에 배터리 손실이 많았던 모양이다. 내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에는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미국인의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이다. 가이드 다와와 하산 길에 찍었다.
일주일을 걸어온 토롱-라의 기억을 위해 한 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그와 나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이메일로 받기로 한 것이다. 
함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은 토롱-라 정상이다. 이 공간에 체취를 가득안고 길을 나서고 싶다. 
이곳을 오르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겪어야 했던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오래 머물고 있다 해서 그런 아쉬움을 지울 수 있으랴. 인생이란 끝없는 아쉬움을 쌓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루하루 숱한 아쉬움 덩어리를 쌓아올리느라고 일상이 바쁜 것은 아닐까? 
      
이제 깎아지르듯 경사진 길을 가야한다. 
토롱-라에 오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생각 같으면 참 한심한 가이드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관습에만 의지한 인식태도다. 그들대로라면 이왕 겪을 일이고 닥치면 알게 될 일을 굳이 미리 이야기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묵디낫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이다.
,
묵디낫은 성지다. 저 멀리 성지가 보인다. 그 앞에 돌담은 목초지로 영역을 표시하는 담이라고 했다. 묵디낫은 불교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나,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 모두가 성지순례를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등록일 : 2008-04-02 |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