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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걷기 여행/안나푸르나 12박 13일의 기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13)

by 김형효 2008. 4. 2.
- 고도 5000미터를 오르며 희망이 되고 절망이 되고 고통이 되었던 사람들 생각......,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길을 갔다. 
그러다 조그만 다리구간에서 독일인 일행의 포터들과 만나 휴식을 취하던 도중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네 시 사십 분 쯤 출발해서 삼십 분 정도는 지난 듯하다. 
눈밭에 사람들의 깊이 패인 발자국을 밟으며 길을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고도에 대한 경계심은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아침이 오면서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하는 귀동냥 덕분에 가급적이면 빠른 걸음으로 위험구간을 지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백 미터 고도를 올리는 일이 고도가 낮을 때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였다. 숨이 막혀올 때는 주저없이 휴식을 청했다. 
다와는 그런 나를 이해해주었다. 숨이 막힐 때면 이제 익숙한 솜씨로 심호흡을 하며 몸 상태를 조절한다. 그리고 길을 간다. 
한 발짝 씩 발걸음을 옮겨 딛는 순간마다 깊은 사색에 잠긴다. 한걸음이 평생처럼 무겁다. 사람마다 자신이 살아온 우여곡절도 있을 것이고 삶의 희로애락 또한,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니 저마다 걸음을 옮겨 딛을 때의 무게감도 다르리라. 

프랑스인들과 앞서 걷고 있던 독일인이 고용한 네팔인 포터들과 함께 가운데는 나의 가이드 다와(달)이란 뜻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거두어들여야 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긴장은 순간순간 한걸음 걸음걸이조차 정돈된 자세를 유지하게 한다. 절제된 삶을 살았던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았던 지금 순간에는 오직 절제된 동작만이 필요하다. 

바람이 불며 눈보라가 치는 모습이 저 멀리 안나푸르나 산봉우리 가까이에서 목격된다. 
잠시 내가 걷고 있는 지근거리에서도 눈발이 날린다. 다행히 눈이 길을 거칠게 하지 않는다. 폭설이라도 내린다면 얼마나 버거운 일이겠는가? 아니 함박눈이 내린다 해도 걱정이다. 
어느 순간 어떻게 변화를 가져와 내 갈 길을 불안하게 할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동물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새벽길이기도 해서 그런 흔적이 없기도 하겠지만, 만년설에 안나푸르나 기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산양들도 우리가 걸어온 저 아래 4800미터 근방에서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길을 가다 멈추었다 반복해가며 한참을 올랐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서부터 어둠의 허물을 벗는다. 
마치 뱀이 껍질을 벗듯이 서서히 서서히 흰 눈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향해 송곳날을 세우듯 솟아오른다. 
그 뒤를 이어 햇빛이 들어온다. 이미 어둠을 벗은 안나푸르나 멀리 아래쪽 계곡에는 어둠이 한없이 짙어진다. 우리가 오르는 산등성이 고개 가 동녘이다. 
그러니 반대편인 계곡의 어둠이 일시적으로 짙어질 수밖에 잠시 후 서녘에도 햇빛이 들면서 밝아져오는 산하가 찬란하다.   

 

 

포터들이 메마른 땅을 걷고 있다. 자신들의 몸집보다도 훨씬 큰 짐을 지고 험한 산을 오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그 자체로 성자의 모습이다.

수 천 년을 이렇게 어둠을 밝히고 수 천 년을 내린 눈들이 녹아 저 산줄기를 이루며 강하를 이루었으리라. 각양각색의 무늬를 만들며 흐르고 흘렀으리라. 흐르며 계곡이 만들어졌고 계곡을 흐르던 물줄기들은 돌과 흙을 저 아래로 아래로 실어 나르며 산기슭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네팔사람들의 주춧돌을 대고 생활의 터전이 되었으리라. 
어떤 이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 흐름을 안고 새로운 삶을 살았으리라. 살고 있으리라. 
막연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몸을 가누기 힘들다. 잠시 휴식을 위해 심호흡을 하며 멀리 산봉우리 끝을 보았다. 

빛의 섬광 같은 것이 일어난다. 
바람이 회오리치며 눈보라를 만들고 그 눈보라가 아침 햇살에 비추며 연출되는 찬란함이다. 그 틈틈이 흰 구름이 산의 꼭지점을 타고 솟아오른다. 마치 살풀이춤을 보는 듯하다. 
안나푸르나는 미동도 없지만, 그 거대한 몸을 휘감아 도는 거센 바람과 눈보라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는 듯하다. 

5,000미터가 넘는 곳에 돋아 있는 생명(식물), 경이로움을 주었다. 눈이 안고 있다.

막대지팡이에 몸을 부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오르고 또 오르고 한없이 오르고 있지만, 그 기약이 어느 만큼인지 알 길이 없다. 물론 수치적으로야 5416미터를 오르면 된다. 그러나 그 기약은 내 몸과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다. 거칠게 나의 의지와 몸 상태는 5416미터를 오르기 힘들다며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여기서 포기하는 길보다 이 길을 넘어서는 길이 훨씬 수월한 일이다. 그렇게 믿으며 힘을 내서 걷기로 했다.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 같아 그냥 막대 지팡이에 몸을 부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오르고 또 오른다. 
5000미터는 어렴풋이 넘어섰을 법한데 이 고지에도 작은 나무들이 자란다. 신기하다. 저 식물의 생로병사는 어떤 것일까? 
잠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아프다. 여전히 숨도 가쁘고......, 독일인들이 고용한 네팔인 포터들이 앞서 걷고 있었다. 얼 만큼 앞선 걸음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허덕이며 겨우 걸음을 옮겨 딛고 있는 신세지만, 저 멀리 바라보이는 안나푸르나를 보면 그저 평온한 마음이 든다. 

햇살이 잡히는 순간이다. 안나푸르나에 고봉을 햇살이 휘감고 있다.

무심(無心)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생각에 잠겨든다. 
걷고 걸으며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엷어지는 길이로 생각은 한없이 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듯 이런 저런 생각들이 우러난다. 
사람 생각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리워지는 사람들......, 40여년을 살아온 인생 동안 내게 충고가 되고 희망이 되고 절망이 되고 고통이 되었던 사람들 생각......, 
사람이니 사람 속에서 보내는 일상이 많은 것이고 그 속에서 길을 내고 길을 찾고 그리고 그 속에서 절망하고 그 속에서 방황하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조차 사람 속을 산책하는 일이리라.

등록일 : 2008-04-01 |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