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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구/이런 저런 사진 이야기

어제 오후 고향집으로 왔다.

by 김형효 2008. 10. 25.

 

무안읍내 5일장이 열렸다.

오일장이 펼쳐지는 곳은 아직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 나름 생각해본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이겠는가마는

사람 살냄새 풍겨도 싫어하지 않는 서로 보듬어주는 그런 곳이다.

낯선 사람의 카메라를 바라보시는 어른의 모습도 멋지다.

 

맨 앞에 고구마다.

그 다음 당근 그 다음 무

고구마는 무안의 주산품 중의 하나다.

고구마가 익어가던 여름 장마 후

가을 초입은 넉넉했던 기억이 난다.

소낙비와 가랑비 사이의 계절에는 풋풋한 인심이 넘쳐났다.

 

 

 

버스승강장이란다.

저 하늘을 받친 듯한 조형물은 무안의 주산품 중의 하나인 양파를 형상화한 조명등이다.

밤이면 양파등이 무안을 밝힌다.

무안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준 것처럼......,

 

 

저 들녘은 나 어릴때 바닷물이 출렁였다.

지금은 빼앗긴 땅,

나의 유년은 어디에서 찾아올까?

나와 동무들과의 기억속에서만 아련하다.

바닷물이 넘실넘실 거리던 원둑을 걸으며 사색하던 그때

그때의 그리움을 안고 벗들은 지금 고만한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아가고 있겠지.

 

고향 마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님도 아우들도 모두 저 보금자리에서 꽃이 되어 피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간의 꽃을 피운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꽃으로 보아야 한다.

꽃의 향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사람의 향기를 외면하는 것은 재앙이다.

사람이 꽃이다.

 

어머니의 장독대!

어머니의 화단!

어머니의 아버지의 마당!

어머니의 아버지의 하늘!

 

감이 익은 계절에는 고향도 익는다.

 

저 그림자는 나의 모습이다.

저 흙에 파뿌리에

그리고 저 트인 들과 하늘에

용서받을 수 있는 내가 되자.

나의 그림자에 책임질 수 있는 내가 되자.

 

 

잘 익은 석류가 절정을 보게 한다.

황홀하다.

 

 

 마당가에 핀 꽃들......,

내가 나이가 들어 터 잡고 살겠다고 다짐한 오래된 집.

지금은 빈 집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다.

내가 어려서 처음으로 사람의 주검을 목격한 집이다.

바가지를 엎어놓고 문지방에서 널로 박살을 내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주 오랫동안 남의 집으로만 알았던 그 집은 아버지께서 우리보다 어려운 분을 위해 상으로 주셨더란다.

나이 40이 넘어서야 그 집과 땅이 우리 것임을 알았다.

나도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학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도 그 사실 꼭 드러내지 않고 지키시던 집터와 땅을

이제는 내게 주신단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저 집에서는 바다가 바로 보이고 열린 하늘이 목포 앞바다까지 늘어져 보이고

무안이 다 보인다하면 지나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