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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구/이런 저런 사진 이야기

[스크랩] ** 서시 / 윤동주 **

by 김형효 2009. 6. 8.

** 서시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설]
이 시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 준다.
앞의 두 행에서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말한다.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자신 역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를 알 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이다.

그것은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욱이 삶 자체가 치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식민지의 상황 아래서 그것은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윤동주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로서 답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괴로움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난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서

 부끄러움이란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시가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는 것은 여기에 다음의 넉 줄이 이어짐으로써이다.

밤 하늘의 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담담한 결의는, 자칫 무모한 번민에 그칠 수도 있는 양심적 자각을

성숙한 삶의 의지로 거두어 들인다.

그것은 극히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와 태도를 느끼게 한다.
별도의 연으로 따로 떨어진 마지막 행은 이와 같은 결의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이미지이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을 때, 이 별의 암시적 의미는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에 해당한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이성의 상징이다.

바로 이 한 줄이 덧붙여짐으로써 양심의 결백함에 대한 그의 외로운 의지는

 어두운 밤 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이라는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서시' 윤동주 시인 장례식 사진 

 

독립기념관, 3.1절에 특별전... 나운규 간도 명동학교 시절 모습도

 

 

윤동주의 장례식 광경 일제의 고문에 의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광경(1945년 3월 6일 용정 자택)
명동학교 시절의 나운규 1918년 명동학교에 입학한 나운규의 교복 입은 모습.
'서시'의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모습,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의 명동학교 시절, 그리고,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의 간도 은진학교 시절의 사진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이 여든 여섯 번째 3·1절을 맞아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독립기념관은 3월 1일 낮 12시30분 제1전시관(민족전통관)에서 특별전 개막식을 연 뒤 4월 29일까지 2개월 가량 전시한다. 이날 개막식에는 자료기증자 김재홍씨와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문 목사의 아들 영화배우인 문성근씨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특별전시회에서 공개되는 사진자료 가운데는 북간도 명동촌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을 비롯해 문재린과 그의 아들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장면, 명동학교 시절의 나운규 감독의 모습이 최초로 공개된다. 이와 함께 용정 3.13만세시위 당시 일본경찰이 발포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인 오층대 건물의 당시 모습도 함께 공개된다.

이 전시회는 명동촌의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의 증손인 김재홍씨의 기증에 의한 자료전이다. 독립기념관은 김씨가 20여년 동안 북간도 현지를 수십 차례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 수집한 300여점 가운데 북간도 독립운동과 이주한 조선 민중들의 삶이 잘 나타난 170여점을 선별해 전시한다.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은 독립운동가와 일제에 농토를 빼앗긴 민중들의 이주에 의해 조성된 항일독립운동의 기지였으며 명동학교를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이 설립돼 윤동주 시인 등을 길러냈다.

화보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

3.1절부터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될 '북간도 명동촌, 그 삶과 독립운동' 특별전시회의 일부 사진을 독립기념관 협조로 독자들에게 먼저 공개한다.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1930년대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 교복을 입은 윤동주(뒷줄 오른쪽)와 문익환(뒷줄 가운데) 모습.

김약연과 명동교회 교인들 명동교회의 1910년대 모습. 당시 명동교회의 교인들은 5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명동학교 제17회 졸업생 기념 촬영(1931. 3. 20)


김약연의 장례식 광경 명동촌 지도자였던 김약연 선생의 장례식(1942. 10). 기독교식 장례장면이 이채롭다.




오층대 건물 1919년 3.13 만세시위 당시 일본 총영사관을 향하던 조선 민중들을 향해 일본경찰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한 오층대 건물의 옛 모습.

명신여학교 수업 광경 1930년대 명신여학교의 가사 수업으로 재봉틀을 돌리는 학생들의 모습.

해방 후 명동학교 동창회 해방 이후 명동촌 출신 인사들이 동국대학교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모습. 정재면, 문재린, 문익환, 김기섭, 윤영춘, 윤영규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 풀잎새
글쓴이 : 풀잎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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